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다시 라이칸으로
웨어비스트의 수도 라이칸은 그 어느 때보다 삼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성벽에는 평상시보다 두 배 이상의 병력이 몰렸고, 성문의 검문·검색 또한 극도로 강화되었다.
거리마다 가득한 병사들이 성지 순례를 하러 온 수인족들의 신분까지 철저히 검사하는 건 물론,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는 자들은 모두 불시에 검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수도의 시민들은 볼멘소리를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왕이 갑작스러운 암습으로 인해 서거한 지 불과 1년 만에 그 후계마저 테러를 당해 사망했으니, 웨어비스트 역사상 전례 없는 재앙이 벌어졌다는 걸 모두가 실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살벌한 경계의 와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성벽 부근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수시로 활을 겨누는 병사들과 소수의 마법사들이었다.
그것은 지난번에 벌어진 재앙 이후로 퍼지고 있는 소문과 관련이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재앙이 후계를 죽였다.
후계가 악마추종자여서 천벌이 내린 것이다.
웨어비스트의 수뇌부가 단속을 하고 있긴 했지만, 은밀하게 퍼지는 소문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포함된 사실 일부는 그들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으니.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늑대의 궁 일부를 폭파시키고 후계를 죽였다.
전설로 전해지는 대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소규모로 구현된 것 같은 형태였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사망했기에 전후 사정을 아무도 모르는 데다, 당시 범인을 쫓아 내달렸던 왕실 대제사장 우란 누드마저도 그 정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온 상황이었으니.
자연스레 그들은 하늘의 습격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근데, 늑대의 궁의 경계 마법으로도 못 잡은 걸 이렇게 해서 잡을 수가 있나?”
“머릿수에는 장사 없어.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해.”
“아니, 상식적으로 이미 목적을 이룬 습격자가 다시 오겠냐고.”
그야말로 구름밖에 없는 푸른 하늘을 향해 주기적으로 활을 겨누는 병사들 중에는 회의적인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무의미해 보이는 경계 태세가 실제로 ‘상식적이지 않은’ 습격자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낮에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는데…….”
라이칸이 멀리 보이는 근교의 숲속.
타이니가 라이칸의 경계 태세를 내다보며 혀를 차자, 옆에 있던 라프탄이 바로 딴지를 걸었다.
“너, 그림자 숨기인가 뭔가 된다고 하지 않았어? 내 그림자에 숨어서 같이 들어가면 되잖아.”
“그랬다간 내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상으로 피를 토하며 튀어나올 거다. 난 잠깐밖에 못 해.”
“그 여자는 네 정령 그림자에도 아주 편안하게 숨어서 따라오던데?”
“……난 루나가 아니니까.”
루나가 있었으면 정말 일이 훨씬 쉬워졌을 것이다. 저번 일도 그렇게 요란스럽게 처리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새삼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없어.’
반제국파 놈들도 생각이 있다면 실버 팽을 당장 처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지.’
경험상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웨어비스트를 잃더라도 실버 팽은 구해야 하니까.
그렇게 타이니가 재차 결심을 다지고 있는데.
“그럼 나 먼저 들어가?”
그 말과 함께 몸과 장비 모두 기대어 있던 나무와 비슷한 질감으로 변하기 시작한 라프탄의 모습이 보였다.
“참 언제 봐도…….”
“대단하지?”
“그래, 인정.”
실로 대단한 재주고, 실로 특이한 정령사였다.
사자인 주제에 의태, 거대화, 허세(Fear) 능력을 각성한 겁쟁이 정령도 그렇고, 그런 정령과 계약했으면서도 깡 하나만큼은 초인급인 정령사도 평범하진 않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영혼의 반려에게서 바로 반응이 왔다.
– 컹!
어? 아, 반대되는 성향에 더 끌릴 수도 있다고?
– 컹!
너처럼?
‘……근데 네가 나랑 뭐가 반대인데? 못 느끼겠는데?’
– ……킁.
그래, 네가 늑대 중에 천재라는 건 알아. 근데 뭐?
……야, 너 설마?
“아놔, 이씨……!?”
순간적으로 욱해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는데.
“왜, 왜!?”
월랑이 아닌 다른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가, 갑자기 왜 인마?”
“……아, 아니다. 월랑 때문에.”
“아씨, 깜짝 놀랐네!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정령사가 가끔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잖아! 좀 속으로 생각해! 어!?”
“처음 듣는 소린데?”
“……있어. 그런 말이.”
“너…… 지금 나 미친놈이라고 욕한 거지?”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라프탄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리더니 이내 그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에이, 무슨 소리야. 당장 눈앞의 일에나 집중하자고. 저기 라이칸! 어떻게, 나 먼저 들어가냐고?”
하…….
그렇게 슬금슬금 뒷걸음질까지 치는 것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또 헛웃음이 나왔다.
‘이 새끼, 진짜 또라이인가?’
이 상황에선 못 때릴 걸 알아서 들이박고 본 건가, 아니면 그냥 본능적으로 개긴 건가.
계산이건 본능이건, 하나는 확실했다.
‘하여간 깡 하나는…….’
누군가와는 다르게 담은 참 크다.
문득 그와 정반대 성향을 지닌 전생의 동료를 떠올린 타이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부탁한다. 각별히 조심하고, 실버 팽 상태 좀 알아봐. 난 일단 여기 있을 테니까.”
그 말에 멈칫하는 라프탄.
“……나 혼자 가?”
“네가 실버 팽의 위치와 상태를 알아 오면 그다음에는 내가 한다. 그때부터 넌 빠져도 돼.”
“그게 하루 이틀 안에는 안 될 거 같은데? 지난번보다 경계도 심해졌을 테고.”
“우란 누드가 우리에 대해 입을 열진 않은 것 같으니, 라미가 돌아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야. 아니, 혹시 모르니 아예 라미도 의태 능력을 쓴 채로 돌아다녀. 둘이 같이.”
웬만한 마법에는 걸리지 않는 정령술, 은신에 가까운 의태 능력.
어떻게 보면 라프탄과 라미만큼 잠입 및 정보 수집에 특화된 조합도 없을 것이다.
물론 루나 같은 경우를 제외했을 때의 얘기지만.
‘아니, 아니지.’
수인어도 할 줄 알고, 라미와 나뉘어서 동시에 두 방향으로 탐색이 가능한 것을 생각하면 루나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
특히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적격.
그런데 본인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너도 정령 있잖아?!”
“내가 빙의해서 잠입해 봤자 수인어를 못 알아듣잖아. 더구나 월랑은 이미 거대화한 것도 본 사람이 있을걸? 너 구할 때.”
“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지. 그러니 부탁한다.”
라프탄의 타당한 항변은 그렇게 바로 기각되었고, 이내 그는 의태 능력으로 우울한 표정을 감춘 채 초원의 환경 일부에 녹아들어 라이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흘 후.
생각보다 늦게 돌아온 라프탄이 전해 온 말은 타이니의 예측과 상당수 맞아떨어졌다.
* * *
“……실버 팽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그래. 결계 내부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왕의 구역 에르켐천의 지하 감옥에. 경계 병력이 너무 많다 보니 혹시라도 들킬까 봐 더 이상은 접근하지 못했어. 정확한 위치는…….”
라프탄의 말에 타이니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나마 최악 중 최악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반란을 주도한 놈들은?”
“그게, 조금 의외야. 1군단장 갈색 바위, 2군단장 잿빛 번개, 5군단장 푸른 주먹. 전부 실버 팽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던 군단장들이야. 더구나 외부에는 여전히 문나이트를 자신들의 수장이라 공표하고 있어.”
그런 것 따위야 이상하지도 않다. 애초에 배신하려고 작정했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사전에 접했던 정보와 다른 점이 신경 쓰였다.
“5군단장? 수도에 집결한 건 1~3군단 아니었어? 수도 근방에 위치한?”
“어. 그게 또 이상한 게, 3군단장 회색 이빨을 유폐시킨 다음에 5군단장만 빠르게 부른 모양이야. 그때까지는 실버 팽과 그 측근들이 왕성을 장악한 모습이 맞았는데…….”
“5군단장이 오고 나서 바뀌었다고?”
“어. 그게 좀 찜찜해. 배신하려고 했으면 그 전에 해도 됐을 텐데…….”
“뭐가 찜찜해? 둘이서는 불안했나 보지. 아니면 그 5군단장 놈이 충동질을 했거나, 무언가 다른 계기가 있었을 수도 있고.”
어두운 표정의 라프탄과는 달리, 타이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누군가가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사상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정말 많이 봤지.’
너무 충격적인 경험을 하거나, 아니면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득이 눈앞에 있다면 굳은 신념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사람이 가장 크게 변하는 건 권력이라는 이득이 연관되었을 때였다. 자신이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마약보다 더한 것이 권력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아니, 전부 십수 년간 실버 팽의 측근으로 있었던 장군들이라는데, 셋이 동시에 배신할 수가 있나 싶어서. 모두 실버 팽을 옹호하고 체베르를 반대하던 자들이잖아.”
“어…….”
“차라리 둘이나 혼자 한 짓이라면 이해를 했을 거야. 근데 셋 이 함께?”
“그건…… 확실히 좀 그렇네.”
라프탄의 말도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타이니는 굳이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 친구가 배신당해 감옥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일단 구해 내고 봐야지.”
“음…….”
라프탄은 침음성을 흘리며, 목구멍까지 근질근질하게 차오르는 말을 삼켰다.
‘혹시 이거 함정 아닐까?’
감옥에 갇혔다는 실버 팽의 상태까지 확인하고 왔어야 했나?
하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는 검은 눈동자를 눈앞에 둔 지금,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이해가 안 되네.’
타이니의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은 알고 있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별개인 신뢰의 문제다.
대체 왜 문나이트를 믿는 걸까?
‘막말로, 원래 적국의 대장군이었던 자잖아?’
함정이 아니라 쳐도, 왜 굳이 이만한 위험을 무릅쓰고 구하려 하는 걸까? 이미 말룸도 거의 처리했다면서.
“……역시 짝친구인가.”
“뭐?”
“아, 아니야.”
황급히 변명하면서도 라프탄은 머리를 팽팽 굴렸다.
짝우정으로 목숨까지 거나?
설마 이 새끼 남자, 아니 늑대를 좋아하는 건가? 생각해 보면 정령도 늑대고…….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의심들을 종합해 보자면.
‘수컷 늑대 성애자?’
세상에 무슨 그런 변태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왜 그딴 눈으로 보는 거냐? 왠지 굉장히 불쾌한데?”
“아, 아냐. 내가 무슨…….”
“……수상한데.”
“절대. 결코.”
타이니의 미심쩍은 시선이 그의 전신을 훑었지만, 라프탄은 기어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사실이건 아니건, 이런 생각을 들켰을 때의 대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행히 그 노력이 먹혀들었는지, 타이니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이내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고생했고, 이제 넌 다시 제이한테 가라. 거기도 돌아갈 때 고생할 것 같으니까.”
“……혼자 괜찮겠어?”
피식.
“지금 그거 나한테 하는 말이냐?”
우우웅.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과 함께 담담히 내보이는 기세는 순간적으로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두운 숲속에서 서서히 활동을 시작하려던 야생 동물과 벌레들마저 일순간 숨을 죽이게 하며 사방을 장악하는 마나.
그것조차 전력이 아니라는 것은 타이니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으니, 라프탄으로서는 그 저력의 밑바닥이 가늠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더하여.
“돌아가면 이번에 고생한 것만큼 챙겨 주마. 기대해도 좋아.”
검제가 말이야.
생략된 말을 라프탄이 알 수는 없겠지만, 천하의 광휘의 기사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 알았어.”
“그래, 가라.”
대답을 듣자마자 하늘 위로 슝, 하고 사라지는 타이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만한 것 이상으로 정말 강한 놈이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싶으면서도.
‘불안한데…….’
웨어비스트의 상황이 너무 이상한 게 마음에 걸렸다.
물론 설령 녀석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은 처맞은 기억밖에 없으니 꼬시다는 생각이 들 거 같기도 한데.
‘그래도 내겐 저 녀석이 필요해.’
기껏 야인이나 수배범 신세에서 벗어나 발렌티아 가문의 실세가 될 수 있는 줄을 잡았는데.
“에이씨…….”
그래. 저 녀석이 말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면, 일단 본인이 무사히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자신의 예감은 찜찜하기만 하니.
‘따라가 봐야겠어.’
혹시나 하는 사태를 대비해서 최소한의 대책은 마련해 두는 것이 ‘동료’로서 할 일이 아닐까.
‘어차피 그 괴물 제사장만 아니면 내 은신을 간파할 사람은 저기 없어.’
그렇게 결심한 라프탄은 이내 몸을 주변의 환경과 동화시키고는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