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brother ever RAW novel - Chapter 420
사상 최강의 오빠 424화
종막 (1)
시온이 손을 앞으로 뻗자, 그의 앞 에 무수한 나무창이 떠올랐다.
신살의 기운을 품은 목창(木槍), 롱기누스였다.
시온이 검지로 라온을 가리키자, 병대처럼 절도있게 도열한 나무창의 군세가 그를 향해 진군했다. 창의 파도가 하늘을 물들이며 자신 에게 쏟아지는 걸 본 라온이 중얼거 렸다.
“오라, 아이기스.”
갈색 가죽 방패가 성벽처럼 라온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위로 쏟아지는 창의 비가 방패 를 찢어발겼으나, 새로운 방패가 찢 겨 나간 방패의 빈자리를 빈틈없이 채웠다.
300, 500, 1,000.
분 단위로 소모되는 아이기스의 비 축량을 가늠한 라온이 검은 눈동자 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그드라실.”
라온의 부름에 반투명한 메시지창 이 응답했다.
-어떻게 할까요?
기다렸다는 듯한 그녀의 대답에 라 온이 말했다.
“하늘을 열어.”
-알겠습니다.
이그드라실과 대화를 하는 그 순간 에도 아이기스의 비축량은 빠른 속 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급기야 남은 방패의 비축량이 바닥 을 드러낼 무렵, 라플레시아의 푸른 하늘이 좌우로 쫙 갈라지며 우주의 밑창이 드러났다.
쿠르르릉.
심상치 않은 파동을 느낀 시온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갈라진 바다의 속살이 드러난 것처 럼, 갈라진 푸른 하늘 사이엔 우주 의 피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그드라실?”
이그드라실이 ‘세계 조작’을 하고 있다는 걸 시온이 알아차리기 무섭 게, 우주가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메스꺼움을 느낀 인간의 울대처럼 꿀렁거리는 우주의 표면을 본 시온 이 눈을 치켜떴다. 라온이 무엇을 노리는 지 알아차린 것이다.
“정신 나간 놈 같으니… 너. 이곳 을 통째로 날려 버릴 심산이더냐?”
처음에는 동그란 진주와 같았던 그 것은 우주가 꿀렁거릴수록 급속도로 크기를 키우더니, 별의 바다를 자신 의 덩치로 가리며 하늘을 가득 채웠 다.
달.
라플레시아의 하늘을 수놓던 위성 이 하늘을 찢고 지상을 향해 강하하 고 있었다.
라온이 흐릿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날려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 습니까만… 의미 없는 일이겠지요.”
저 정도로는 시온을 어쩔 수 없다 는 걸 라온은 알고 있었다.
뿐이랴?
달이 가까워지면 범람해야 할 바다 는 잠잠하기 짝이 없었다.
보이드가 바다를 집어삼킨 지금.
천리(天理)에 따라 움직여야 할 시 스템이 망가진 것이다.
이것은 보이드에 잠식당한 아우터 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중 거였으나, 상관없었다. 이 순간, 그에게 제일 중요한 건 눈앞의 사내였으니.
쿠르르.
달을 토해내는 우주의 목구멍을 본 시온의 눈이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눈동자 표면을 초록 글자의 물결이 빈틈없이 채웠고, 동시에 그 의 세계가 변모하며 땅, 하늘, 대기, 그 모든 것이 코드로 바뀌었다.
사실 그의 권능, 투영과 관찰은 어 빌리티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오히려 프로그래머가 프로그 램의 코드를 관찰하는 행위에 가깝 다 보는 게 정확하리라. 이 세계에서 오직 그만이 이 거짓 된 세계의 유일한 진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고, 파헤칠 수 있었으 니까.
투영과 관찰로 달의 코드를 확인한 시온이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스르륵.
그러자 언제 하늘을 자신의 존재감 으로 꽉 채웠냐는 듯, 달이 순식간 에 사라졌다.
시온이 달의 코드를 눈으로 확인한 뒤, 마스터 코드의 권한으로 삭제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행위는 실로 간 단해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설사 라온이 마스터 코드를 손에 넣었어도, 달의 코드를 확인하고 삭 제하는 건 분 단위는커녕, 시간 단 위의 여유가 있어도 모자랐기 때문 이다.
하나, 시온에겐 손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늘, 땅, 바다. 심지어 땅에 핀 꽃 과 풀 한 포기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것 은 단 하나도 없었고, 그것들의 코 드는 그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애초에 라온에게 승산은 없었다.
피조물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조물주 앞에선 벌레나 마찬가지였으 니까.
하나, 그럼에도 라온의 얼굴은 평 온했다.
“이상하시지요? 달이 가까이 왔음 에도 바다가 범람하지 않았으니까 요.”
라온의 말에 시온이 미간을 찌푸렸 다.
“…시스템이 제구실을 못 하고 있 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게냐?”
“얼마 버티지 못 할 겁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빨리 너를 제압 하고… 외부로 나가 시스템을 점검 하는 게 좋겠다.”
라온이 달을 소환한 건 시온을 어 찌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저 그는 잠깐의 틈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 그의 약점을 손안에 넣을 틈 말이다.
“이래도… 말입니까?”
어느새 김세정들의 근처로 간 라온 이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중년 여 인의 목을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 박 정숙이라는 걸 알아차린 시온이 차 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이냐?”
“네. 진심입니다.”
“그분은 너를 누구보다 예뻐하고, 아껴주셨다. 네… 할머니란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 지요.”
시온이 그늘진 얼굴로 고개를 저으 며 대답했다.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아버지 아들인데 오죽하겠습니까?” 시온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물었다.
“원하는 게 뭐냐?”
“아우터의 해방.”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더냐? 봐라. 내가 그리 발 악했음에도 인류는 항상 멸망했다. 마치… 결말이 예정되어 있는 것처 럼.”
“시뮬레이션은 시뮬레이션일 뿐입 니다.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이곳 은 현실이 아닙니다. 현실에서라면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단 말 입니다.”
“아우터는 현실을 99프로 반영했 어. 의미 있는 과정이었고, 연구였 다. 그러니… 이대로라면 우리는 결 코 멸망을 피하지 못할 거다.”
“설人}, 멸망한다 하더라도… 그것 이 순리라면, 자연의 섭리라면 따르 는 게 맞습니다. 그걸 아버지 개인 이 멋대로 판단할 권한도, 자격도 없단 말입니다…!”
라온의 말에 분개한 시온이 목청이 찢어지라 소리쳤다.
“그걸 누가 정했지? 순리, 섭리. 이딴 걸 누가 정했느냔 말이다! 우 리의 멸종. 우리의 자멸. 이딴 걸 누가 정했지? 아니, 정했다면 우리 가 그걸 따라야 할 의무가 있나? 의미가 있나?”
“따라야 할 의무와 의미가 없다…. 네.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런 건 아버지 혼자서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 모두가 판단하고, 선 택을 해야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근 데 아버지가 뭐라고! 대체 무슨 자 격이 있다고 그들에게 목줄을 채운 채 자신의 선택을 강요한단 말입니 까?!”
“내가 그들을 구했으니까! 그들을 구원했으니까! 내가 인류를 존속시 켰으니까! 그러니 마땅히 그들에게 권리를 요구할 수 있고, 대가를 받 아낼 자격이 있으니까!”
라온이 격분하며 소리쳤다.
“당신은 그들을 위해서 구원한 게 아니잖아! 자기 자신을 위해서 구원 한 거잖아. 자신의 혈육을 위해, 자 신의 친우를 위해. 자기 자신을 위 해 구한 거잖아!”
“시작은 그랬을지 몰라도…! 나중 에는 천명으로 받아들였으며, 내 사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다 면 세정이가 그 꼴이 되는 것도, 그 리고 내 연인이 죽을지도 모를 미래 를 감수하면서 그딴 짓을 벌이지 않 았어!”
라온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 다.
“대가를 받는 건 거래지. 천명이고, 사명이 아냐! 하지만 당신은 그들이 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제멋대로 구 했잖아! 그런 주제에 대가를 요구하 는 거잖아. 자신에게 복종하라며, 자 신의 노예로 살라며, 자신에게 데이 터를 내놓으라며! 그들의 답은 들을 생각도 없이 희생을 요구하잖아!”
“나는一!”
쿠르르릉.
시온의 감정에 감응하듯, 마른하늘 에 천둥 벼락이 쳤고, 부자(父子)는 핏발 선 눈동자로 서로를 노려보았 다.
“나는 내가 구한 세상이! 내 핏줄 이… 내가 사랑하는 너희들이 살아 갈 세상이 안전했으면 했다. 그래. 수만 년간 멀쩡했다고? 오냐, 겉보 기로 보기엔 제법 긴 세월이지. 하 나, 우리가 연구한 사례 중에는 불 과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만에 멸 망한 사례도 있었어! 그런데 어떻 게… 어떻게 너희를 그딴 곳에서 살 게 할 수 있을까!”
그 말에 라온은 잠시간 답하지 못 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오아시스 같 은 적막.
덕분에 과열된 주전자처럼, 끓어올 랐던 둘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았 고, 라온 또한 평정심을 되찾았다.
라온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 했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 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버지 의 목표와 신념이 변질된 건 변함없 지요. 그러지 않았다면… 어머니를 재우지 않으셨을 테니까.”
치부. 혹은 역린.
억겁의 세월에 함몰돼 버린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처를 라온이 쑤시자, 시온이 눈을 질끈 감으며 뇌까렸다.
“에일린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사사건건 내 게 간섭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해를 끼치진 않았어. 모든 일이 다 끝나면… 그러면 잠에서 깨워줄 생 각이었다. 그럼 아무 문제 없었어.”
라온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시온을 비웃었다.
“답이 정해져 있는 대화는 더 이상 대화가 아니며, 결과가 나와 있는 의논은 기만에 불과할 뿐이지요. 아 버지. 인정하세요. 처음부터… 누가 말리든, 본인의 뜻을 관철할 속셈이 셨잖습니까?”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시온.
라온은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기 위 해 애쓰며 말을 이어나갔다.
“예전의 아버지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아우터를 완성하기 전의 당신이라면, 아우터를 만들고 나서 순수하게 그들을 위해 발 벗고 뛰던 그때의 당신이라면…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요? 대화를 청하는 어머니 를 감금하고, 영면에 들게 했을까 요?”
시온이 짙은 한숨과 함께 모래처럼 까끌까끌해진 목소리를 뱉었다.
“됐다…. 아무래도, 더 이상 대화를 나눠봤자 무의미하겠구나. 그래. 너 는 이해하지 못하겠지. 어쩌면… 내 잘못일지 모르겠다. 누나나, 너나… 이 무게를 짊어지기엔 너무 여리다 는 걸 내가 생각지 못했으니. 그러 니….”
시온이 눈을 섬뜩하게 빛내며 말했 다.
“한숨 자거라. 그러면 내가 이 모 든 일을 수습해 놓으마. 네가 안전 하고, 편안하게 살 세상을 내가 구 축해놓으마.”
라온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저도 어머니처럼 재우실 생각이십 니까?”
이제 와선 거리낄 것도 없다는 듯 시온이 단호히 말했다.
“그래. 이제 와선 네 요구 때문에 너를 리셋시키지 않은 게 후회되는 구나. 너처럼 여린 아이에게 시간 은… 고문일 따름일 진데.”
광기로 번들거리는 시온의 눈을 보 며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잠들지 않습니다. 그리 고 아버지. 잊으셨나 본데, 지금 칼 자루를 쥔 건 아버지가 아니라… 저 입니다.”
시온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들아. 네가 칼자루를 쥔 적은 한 번도 없단다. 예전이나, 지금이 나, 내 허락 없이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시온의 눈동자가 초록빛으로 빛나 자, 박정숙의 몸 위로 반투명한 실 드가 떠올랐다.
자신의 손을 순식간에 밀어낸 실드 를 본 라온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 그랬지요. 당신은 고모와 할머 니에게 보안을 걸어두었었죠.” 라온의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 랐다.
[대상에게 간섭할 권한이 없습니 다. C0de N0. Zero / C0de Name : Sion.]이 보안 시스템이 과거, 김세훈이 미래시를 얻었음에도 김세정의 미래 를 볼 수 없었던 이유였다.
혹여라도 다른 신들이 자신의 가족 에게 무분별한 개입을 할까 저어한 시온이 보안을 걸어둔 것이다. 허공으로 떠오른 박정숙의 육신이 시온의 품 안으로 날아갔다.
시온이 박정숙의 볼을 검지로 부드 럽게 훑자, 박정숙이 시온의 품 안 에서 눈을 떴다.
어어어.… 0j*** ”
실어증에 걸린 탓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박정숙이 손으로 시온 의 얼굴을 더듬었다.
그간,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꿈에서나 볼 수 있던 아들의 얼굴 이 눈앞에 있었다.
박정숙이 눈물을 흘리며 시온의 가 슴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을 느낀 시온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의 가슴 속 깊이 파묻혀 있던 김세훈의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오르 며, 혼란스러울 만치 심장을 방이질 쳤다.
“네. 접니다. 어머니. 이제 괜찮습 니다. 다 괜찮으니 울지 마세요.”
문득, 시온은 생각했다.
이 감정이 너무도 낯설다고.
수백만 년이었다.
그간, 그는 일부러 가족들과 거리 를 뒀었다.
김세정과 말을 섞지 않았고, 박정 숙도 보지 않았다.
세계의 관리자인 그에게 감정은 불 필요한 것을 넘어, 우환이 될 수 있 는 요소였던 탓이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집어삼킨 김세훈의 감정이 가슴을 뒤흔든 탓일까?
새삼스레 가슴 한편이 시큰해졌다.
u어어…* 어어…三w
시온의 볼을 쓰다듬던 박정숙이 돌 연 마른기침을 뱉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피와 함께 튀 어나온 기침이 그녀의 입가를 붉게 물들였다.
“어머니…?”
“아….”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냉정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인사를 나눌 시간도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슬픔을 느낄 사이도 없 다. 그저 잔인한 이별이 허망하고, 허무할 뿐.
“어머니!” 시온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자신 을 올려다보던 박정숙의 고개가 밑 으로 서서히 기울어지는 걸 망연히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보안은 완벽할 터였다.
그런데도, 박정숙은 죽어버렸다.
까마득한 과거.
그 시절 아버지가 그의 곁을 떠난 것처럼 급작스럽게.
울부짖지도, 차마 말을 잇지도 못 한 채 넋이 나가 있는 시온에게 라 온이 말했다.
“아버지의 보안은 완벽했습니다. 하나… 아셔야 했습니다. 보이드 앞 에 보안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라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온이 이별을 준비할 새가 없던 반면, 그는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그녀가 자신의 할머니라는 것도 알 았고, 그녀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추 억도 온전했으며, 자신의 손으로 직 접 그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걸 알 고 있었다.
라온이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은 독에 중독된 것처럼 거 무튀튀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보이드에 감염돼 있었다는 걸.”
라온은 무수한 세월을 보이드에 막 기 위해 애써왔다.
그는 분명 뛰어났고, 보이드에 관 한 저항력도 뛰어났으나, 그래 봤자 일개 인간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찌 그 세월 간 보이드 앞에서 성할 수 있으랴?
결국, 끝에 와서 그는 보이드에 감 염되었고, 일정 주기마다 발작하는 보이드에 저항하기 위해 발버둥 쳤 다.
그렇기에 그는 아내를 유리관에 넣 고 멀리한 것이다. 혹여라도, 그녀가 보이드에 감염당할까 싶어서.
그렇게 라온은 왼손의 보이드로 시 온의 보안을 뚫고, 아직까진 보이드 에 중독되지 않은 오른손으로 박정 숙에게 독을 심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시온의 품 안에서 그녀가 숨을 거 두기를.
그래야만, 그에게 최대한 큰 충격 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시온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내 어머니였고, 네 할머니였다. 네 혈육이었고, 네가 보살펴야 할 분이 었다.”
라온은 시온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 지 않은 채 제 할 말만 했다.
“아버지. 혹여라도 기대하지 마셨 으면 합니다. 아시지요? 천계는 없 어졌습니다. 윤회 시스템은 이제 없 고, 메인 프레임은 보이드에 감염됐 습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비로소 온 전한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라온….”
라온의 눈물로 얼룩진 입가가 호선 을 그렸다.
악어의 눈물로 물든 미소.
그것은 미소라기엔 이미 너무 기괴 했다.
“아버지.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죽 음을 기만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에… 당신께선 더 이상 어머니를 볼 수 없으며… 저 또한, 할머니를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 명 남았습니다.”
라온의 시선이 망연자실해선 바닥 에 주저앉아 있는 김세정으로 향했 다.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시온이 울부짖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는 누군가를 잃 어본 적이 없었다. 있다 해도 그것 은 자신의 선택이었고, 언제든지 되 돌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하나, 죽음의 본질을 마주한 시온 은 깨달았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왔을지라 도, 이별엔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을.
라온이 되뇌었다.
‘사람들을 사육하고 조롱한 신. 그 리고, 혈육을 잡아먹는 패륜아. 큭 큭…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과 연 누가 옳고 누가 나쁜가? 아니… 과연 정답은 있는가?’
선악의 기준은 없어진 지 오래였 고, 그 기준 또한 누가 세우고, 누 구에게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종막을 향해 치달아가는 지 금.
끝이 어찌 될지는 라온도 알 수 없었다.
하나, 그럼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 았다.
이제 와서 멈추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기에.
‘김세훈. 당신이 막아야 합니다. 나 를, 아버지를… 우리를 막아야 합니 다. 그러니… 빨리 더 늦기 전에 막 아주세요. 그러지 않는다면, 되돌릴 수 없게 될 겁니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제발… 그 전에… 끝내주세요.’
라온이 눈물로 얼룩진 볼을 훔치 며, 상처 입은 맹수처럼 이성을 잃 은 시온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