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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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낭야의 개새끼
노승은 내가 여기 떨어져서 만난 첫 번째 인연이었다. 더군다나 나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이 양반한테서 얻을 만한 정보는 다 얻어내야겠다.
어설프게 돌아다니다가는 낭패를 보고 말 테니. 나는 노승의 소매를 잡고 대웅전의 뒤편으로 이끌었다. 노승은 낭야의 개새끼 발언에 대한 혹형을 내리는 줄 알고 잔뜩 겁에 질린 모양새였다.
노승이라면 이 절의 주지쯤은 됐을 테고 이 난세의 절간에 황금 불상이 떡하니 있는 걸로 보아 세와 명성이 제법 있는 절간일 텐데, 이 정도의 승려가 벌벌 떨 정도라면 위세가 굉장하긴 굉장한 모양이었다.
나는 우선 그를 안정시켰다.
“스님, 저는 지금 스님을 어쩌자고 이러는 게 아니니까 안심하시고요.”
“네… 네네……”
아이고, 딱해 죽겠다. 이 낭야의 개새끼는 대체 스님을 어떻게 굴렸기에 이 노인네가 절절 매는 거야.
“제가 꿈에서 부처님을 뵀거든요. 근데 꿈에서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제부터 새로이 태어났으니 처음 만나는 사람을 은인으로 삼고 그 입으로 하여금 너의 이름과 너의 모든 것들을 얘기하게 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성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받들어 오늘부터 스님을 은인으로 받들려고요.”
“저… 정말입니까……?”
“네, 정말.”
“……”
스님은 뭐라 말해야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기야, 원체 개똥밭에 굴러먹던 놈이라면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붙여 그를 재차 핍박할 수 있으니.
내 쪽에서 최대한 그 이미지를 희석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최대한 상냥한 어투로 말했다.
“첫째, 내 이름은?”
스님은 얼떨떨해 하면서도 부처님이 그리하라고 했다니 순순히 말을 따라주었다.
“제, 제갈찬(諸葛贊)……”
제갈찬? 제갈씨라고?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이 대책 없는 퍼즐을 나름대로 채워 넣었다. 우선 낭야가 제갈씨의 근거인 것은 맞다.
우리가 익히 아는 제갈량도, 그의 형 제갈근도, 훗날 위나라에서 종사하다가 난을 일으키는 제갈탄도 낭야국이 고향이다. 이를 테면 이곳 낭야는 제갈씨의 본가인 것.
그렇다면 제갈씨의 가문인 것이 대충 수긍이 간다.
“둘째, 내 부친은?”
“함자를 현(玄)이라 일컬으며 천자로부터 예장태수에 명받아 임지로 나가계십니다……”
이거, 센세이션이다. 제갈현은 노승이 말했듯 저 남쪽 예장군이란 곳의 태수로 나가있고, 중요한 것은 제갈량이 일찍이 양친을 여의고 지금 노승이 나의 부친이라고 말한 제갈현의 슬하에 있다.
정작 자식인 나는 왜 낭야에 남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기야, 나 같아도 이런 개망나니는 자식으로 거두고 싶지도 않겠다.
더군다나 비교대상이 제갈공명이라니 말 다 했지. 일군의 태수를 부친으로 두고 있다면, 낭야에서 떵떵거리는 개새끼로 명성을 떨칠 환경이 충분하겠다.
최소한 여기서는 금수저를 물게 됐구나.
“셋째, 지금은 몇 년인가?”
“초평(初平) 4년입니다.”
초평은 한나라 헌제의 첫 번째 연호다. 원년은 서기 190년, 그러니까 지금은 서기 193년이라는 뜻이다. 193년이라…… 삼국지를 즐겨 읽고 이것저것 많이 알아본 내 식견에 의하면 193년은, 한마디로 개판이다.
각지에서 제후와 토호들이 할거하는 개판 중의 상개판이다. 이 시점의 낭야는 그야말로 무주공산, 사방 제후들의 표적이 되는 곳이다. 낭야는 서주에 속한다.
이 당시의 서주자사는 도겸. 연의에서는 백성들을 아끼는 호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 속의 그는 간교하고 흉악한 양아치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가 왜곡되어 서술됐을 가능성도 다분하니 나는 일단 성급한 평가는 보류하기로 했, 지만 역시나 좋은 인상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가 형식상의 통치자이기는 했지만 그의 영향력이 닿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고, 북방의 원소와 접하기도 했고 서방의 조조 등과도 접해 있어 자칫하다가는 분쟁에 휘말리기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사실 이 시대의 대륙 전역이 전쟁터였으니까 구태여 불만을 토로할 일은 아니었다. 이것저것을 더 물어보려는 찰나, 절의 산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노승은 그쪽을 바라보더니 나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부리나케 산문을 향해 달려갔다. 나도 미간을 좁히며 그쪽으로 어슬렁어슬렁 향했다.
산문 앞에는 무장한 사내들이 바글바글했다. 노승은 그들 중 한 사람 앞의 앞에 엎드렸다.
“노아(盧兒) 장군! 어찌 기별도 없이……”
노아라고 불린 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번에도 한바탕 싸움을 하며 살생을 많이 했으니 부처님께 용서를 빌려고 왔소.”
노아는 상당한 장골이었다.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것이 전형적인 무장의 상이었다. 나름 명망가의 도련님인 나를 제쳐두고 그에게 한달음에 달려간 것으로 보아 세를 떨치는 집단의 수장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괜히 나서서 분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나는 화평의 내림말씀을 받은 몸. 이널 피쓰, 이널 피쓰…… 나는 노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꺾었다.
“노아 장군, 처음 뵙겠습니다… 제갈찬이라 합니다.”
“뭐어……?”
노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봐, 낭야구자(琅琊狗子)께서 어찌 시정잡배에게 허리를 접나? 뭘 잘못 먹은 거 아냐? 그리고 뭘 처음 봬. 어제도 내 얼굴에 침을 뱉었으면서.”
엥, 낭야구자라니. 나는 잠깐 고심하다가 짧게 탄식했다. 그냥 낭야의 개새끼를 한문으로 고상한 체 이르는 말이구나. 아니 대체 낭야의 개새끼 악명은 어디까지 퍼져 있는 거지.
노아와는 초면이 아닌데다가 심지어 어제는 침까지… 뱉었구나. 기가 막히다. 나는 서둘러 둘러댔다.
“장군, 이 몸은 오늘부로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새로 태어났습니다. 앞으로는 낭야구자가 아니라 낭야군자로 살려고요.”
노아는 얼굴을 해괴하게 일그러뜨리며 노승을 바라봤다. 노승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실없는 웃음으로 무마하고자 했다.
그렇게 어색한 대치를 이어나가는데, 뒤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더 몰려왔다. 노아와 유사한 차림의 장수 두 명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노아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이봐 영자(嬰子), 암노(黯奴), 제갈찬이 미쳤어.”
영자와 암노라고 불린 사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자라고 불린 이는 노아나 암노보다 한참 연하로 보였다. 체격도 왜소하고 얼굴도 앳되었다. 다만 눈빛에는 단단한 결기가 돋보였다.
암노라고 불린 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건장한 체격이 다부졌다. 영자가 실실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미치다니. 낭야구자가 이 이상 미칠 수가 있나?”
암노도 낄낄거렸다.
“제갈찬이 여기서 더 미치면 천하가 더 혼탁해질걸?”
이렇게 평가가 일관되다니 나름대로 인물이라면 인물이다. 그런데 나는 이들이 궁금했다. 제갈씨 가문이라면 상당한 명망가인데 노승이 이를 제쳐두고 이들에게 알랑방귀를 뀐다.
허면 이들도 제법 이름 좀 날리던 이들이라는 뜻인데 노아, 영자, 암노라니. 도통 들어본 바가 없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걸치며 녹음기처럼 아까 외웠던 소리를 그대로 읊었다.
“부처님께 계시를 받아서……”
영자는 내 말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내 얼굴을 한참 응시하더니 픽 웃었다.
“미치긴 미쳤나보네. 낭야구자가 이렇게 순한 얼굴을 한 건 처음 보는데. 왜 이렇게 귀여워졌어?”
“그러니까 부처님의 계시를……”
다시 똑같이 말하려다가 짧은 한숨과 함께 관두기로 했다.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영자가 까무라치듯 놀랐다.
“낭야구자가 존댓말을 했어!”
암노도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존댓말을 했어……”
영자는 그렇다 쳐도 노아와 암노는 누가 봐도 아버지뻘이다. 그런데 존댓말을 썼다고 저렇게 놀라다니. 나름 낭야에서 방귀 좀 뀌는 가문이라고 이런 장골들을 앞에다 두고 침을 뱉고 반말을 찍찍 했다는 말인가. 소름 끼치는 배짱이다.
“오늘부로 온전히 다른 사람이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영자는 킥킥 웃으면서 내 볼을 잡아당겼다. 나는 왈칵 성을 낼 뻔 했으나 이내 참았다. 화평, 화평, 이널피쓰, 이널피쓰……
“허허……”
나는 분노 대신 웃었다. 그러자 영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몸서리쳤다.
“이렇게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구나……”
노숙이 여몽이 며칠 만에 사람이 바뀐 것을 두고 괄목상대라고 했는데, 이제 그 고사의 유래가 바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