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79
웰컴 투 NBA 179화
#179. Legacy (1)
Apr 7. 2018
AT&T Center, San Antonio Texas
[경기 전 인터뷰]To. 그렉 포포비치
Q. 클리퍼스전, 레이커스전의 2연패로 20년 연속 50승, 6할 승률이라는 대기록이 깨졌는데. 기록이 깨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33경기를 졌으니까.
Q. 네?
A. 간단한 거 아닌가? 82경기 중 33경기를 졌으니까 50승 달성이 불가능해졌지. 간단하지?
Q. 그런 의미로 드린 질문은 아닙니다만.
A. 물론 아니겠지. (웃음) 이번 시즌은 불운한 일이 너무 많았어. 주전 선수들의 장기 부상이 있었고, 토니와 마누는 작년보다 1살 더 나이를 먹었지. 그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주었네. 기록이 깨진 소감이 어떻냐고? 20년이면 충분히 오래 해 먹었잖아, 이젠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To. 마누 지노빌리
Q. 작년에도 은퇴를 진지하게 고심하셨다고 들었는데, 1년 더 잔류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A. 글쎄요. 사실 작년에 은퇴했어야 했는데, 어떤 성질 고약한 영감님이 제 몇 없는 머리칼을 부여잡고 뜯어말려서 말이죠. 티미도 떠났는데, 너까지 날 버릴 거냐! 이러면서요.
Q. (기자단 일동 폭소)
A. 진지하게 답변하자면…… 사실 지금도 경기가 끝나면 관절이 비명을 질러 댑니다. 제 기량이 많이 내려왔다는 점도 자각하고 있고요. 은퇴가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끝이 머지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뭐든지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니까요.
To. 라마커스 알드리지
Q. 포틀랜드의 에이스에서 샌안토니오의 에이스가 되셨는데, 이번 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친정팀을 적으로 만나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적이라는 표현은 조금 그러네요. 선의의 경쟁 대상이라고 하죠.
Q. 그럼 경쟁 상대.
A. 전 포틀랜드에서 NBA 커리어를 시작했고, 지금은 고향인 텍사스의 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두 팀 모두 제게는 고향과도 같죠. 아직도 릴라드의 신인왕 시즌이 생각나네요. 데임, 웨슬리, CJ를 비롯한 친구들과는 따로 인사를 나눌 생각입니다.
Q. 파워포워드 포지션의 후배인 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하하. 그렇게 되나요? 전 항상 킴은 바툼의 후계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말이죠. 포틀랜드가 릴라드, 맥컬럼에 이어 킴 같은 재능을 얻게 된 것은 굉장한 행운입니다. 후배들이 선전하고 있는 모습이 선배로서 자랑스럽네요. 오늘 경기에선 아마 킴이 절 상대하게 될 텐데, 무언가 얻어 가는 게 있길 바랍니다.
* * *
◎ Match Lineup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PG 데미안 릴라드 6-2
SG CJ 맥컬럼 6-3
SF 김시온 6-9
PF 알 파룩 아미누 6-9
C 유서프 너키치 7-0
PG 패티 밀스 6-1
SG 드존테 머레이 6-5
SF 루디 게이 6-8
PF 라마커스 알드리지 6-11
C 파우 가솔 7-1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인가.
마누 지노빌리의 경기 전 인터뷰는 내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제독’ 데이비드 로빈슨의 시대.
팀 던컨,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의 BIG-3 시대.
그리고 조만간 스퍼스 팬들의 발작 버튼으로 등극하게 될 어떤 손바닥 큰 친구의 시대.
몇 년 뒤에 시작될 빅터 웸반야마의 시대까지.
스퍼스란 프랜차이즈는 다른 구단엔 한 명이나 있을까 말까 한 명예의 전당급 재능들을 무슨 국수 가닥 뽑아내듯 줄줄이 지명해 온 팀이었고.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리그의 중심을 굳건히 지킨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그것도 영원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스퍼스 팬들도 슬슬 눈치채고 있겠지만.
카와이 레너드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샌안토니오를 떠난다.
올해는 카와이 레너드 시대의 끝이자, 샌안토니오의 상징과도 같았던 던컨, 파커, 지노빌리가 전원 스퍼스를 떠나는 해.
‘던컨은 이미 은퇴했고, 파커는 다음 시즌에 샬럿 호네츠로 이적. 지노빌리는 은퇴하지.’
그리고 스퍼스가 기나긴 암흑기에 빠져드는 해이기도 했다.
사실 샬럿 호네츠, 인디애나 페이서스, 새크라멘토 킹스 같은 만 년 하위권 팀 팬들이 듣기엔 엄살도 이런 엄살이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실질적인 탱킹 기간은 몇 년 안 되잖아?’
그 정도로 기나긴 암흑기, 절망스러운 시기 운운하는 건 선 넘었지.
그러면 다른 팀들은 뭐야. 암흑 농구라도 하냐?
◎ 1쿼터 4:42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2 : 10 샌안토니오 스퍼스]6-11(211cm)의 빅맨.
라마커스 알드리지가 1대1 포스트업을 시도해 온다.
쿵! 쿵!
[라마커스 알드리지, 하이포스트에서 킴과 대치합니다.]“흐읍!”
나는 하체에 단단히 힘을 실으며 알드리지의 백다운(backdown, 전진)을 막아 냈다.
알드리지는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벤치 프레스를 8개밖에 성공하지 못했을 정도로 선천적인 근력이 약한 빅맨.
파워에서는 오히려 내가 우위에 있었지만.
‘이 키는 그 자체만으로 위협적이란 말이지.’
날 밀어내기가 여의치 않다고 느꼈는지, 전진을 멈추는 알드리지.
알드리지는 몸을 180도 돌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점퍼!’
나는 재빨리 두 팔을 치켜들어 컨테스트를 시도했지만.
철썩!
높은 타점에서 쏘아진 턴어라운드 점퍼는 무슨 방해가 있었냐는 듯 깔끔하게 림을 갈랐다.
[알드리지, 턴어라운드 점퍼. 들어갑니다.] [턴어라운드 점퍼는 알드리지의 킬러 무브(killer move)이자, 상징과도 같은 기술이죠. 워낙 높은 타점에서 쏘아지기 때문에 수비수 입장에선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킴이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군요. 제대로 수비했는데도 저렇게 넣어 버리면 수비수 입장에선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나 참.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일종의 세금이라고 생각해야지.
‘물리적으로 닿질 않는데 어쩌겠어.’
애초에 NBA 올스타급 선수의 킬러 무브는 막을 수 없으니까 킬러 무브라고 불리는 거다.
르브론의 우당탕탕, 커리의 3점, 듀란트의 원 드리블 점퍼처럼.
상대의 컨디션이 나쁘길 바랄 수밖에 없지.
‘역시 이 시절의 알드리지는 올스타급 레벨이 맞네.’
라마커스 알드리지는 더마 드로잔과 마찬가지로 스퍼스의 과도기를 대표하는 선수.
스퍼스 팬들에겐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 아쉬운 영입으로 기억되겠지만.
블레이저스 팬 입장에선 그것보단 훨씬 의미가 깊은 선수다.
‘알드리지는 팀의 프랜차이저가 될 수 있던 선수였으니까.’
솔직히 알드리지가 좋게 떠났다고 하긴 어렵거든.
데미안 릴라드-브랜든 로이-니콜라 바툼-라마커스 알드리지-그렉 오든이라는 꿈의 조합.
이는 진지하게 블레이저스 왕조를 열 잠재력이 있었던 조합이었다.
‘로이와 오든의 부상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그 실망스런 시기를 지탱한 선수가 바로 알드리지였다.
포틀랜드의 팬들은 베테랑인 알드리지가 팀을 지탱하는 동안 릴라드, 맥컬럼이 성장해 다시 BIG-3를 결성하길 기대했지만.
– 트레이드를 원합니다.
알드리지는 자신의 전성기를 리빌딩 팀에서 낭비하길 원치 않았고.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등 온갖 크고 작은 잡음을 일으킨 끝에, 블레이저스가 규모가 더 큰 5년 계약을 제시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스퍼스로 향했다.
‘사인 앤 트레이드도 아니고 그냥 FA로 떠나서 팀에 아무 유산도 남기지 않았지.’
블레이저스 팬 입장에선 딱히 곱게 봐 줄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맥컬럼이 기대 이상으로 포텐셜이 터져 줬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굉장히 오랜 시간 최하위권을 전전했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팀을 떠난 선수가, 블레이저스가 올해 들어서 잘나가기 시작하자, 갑자기 자신은 포틀랜드를 사랑한다며 입을 털고 있으니…….
“갑자기 본인이 프랜차이저라도 된 것처럼 고참 행세하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좀 묘하단 말이죠.”
“알드리지 말이야?”
내 말에 대꾸하는 릴라드.
“너무 그러지 마. 그래도 알드리지 입장에선 할 만큼 하고 떠난 거였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순 없는 법이니까.”
릴라드는 딱히 알드리지에게 나쁜 감정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구단은 알드리지보단 슈퍼스타인 브랜든 로이, 1순위 지명자인 그렉 오든을 더 중요한 선수로 간주했고.
로이, 오든이 사라진 뒤에는 릴라드를 알드리지보다 우선시했다고 말이다.
– 알드리지는 젠틀한 선수라서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다른 선수에게 양보해 왔지만, 내심으로는 언제나 팀의 중심이 되고 싶어 했거든. 스퍼스로 떠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
– 데임 당신한테 밀려나서요?
– 음…… 비슷하지.
알드리지와 릴라드는 세 시즌을 함께했고.
이 중 두 시즌을 함께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 블레이저스가 2명의 올스타를 보유한 건 그 시절이 마지막이었지.
– 제가 오기 전까진 말이죠?
– 그래. 이 건방진 놈아.
릴라드는 당시 알드리지와의 관계를 ‘소통 부족’이라고 요약했다.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딱히 가깝게 지내려 노력했던 것도 아니라면서 말이다.
– 알드리지는 뭐랄까…… 젠틀하지만,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었거든.
– 소심하다?
– 그렇지는 않고. 수동적인 성향이랄까? 불만이 있으면 그걸 표출하기보단 혼자서 마음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았어. 그러다가 임계점이 넘으면 한순간에 터져 버리는 거지.
조용하지만 에고가 강하고.
자신의 입지를 빼앗기는 것에 굉장히 민감한 타입.
내가 릴라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품게 된 알드리지의 이미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엄청 까다로운 타입이네.’
어? 쟤가 날 무시해? 열 받네? 같은 생각을 품는 타입 있잖냐.
당시 릴라드는 1년 차에 만장일치 신인왕 수상.
2년 차에 올스타에 선정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팀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고.
알드리지는 팀의 1옵션을 맡기기에는 2% 아쉬운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1옵션 자리를 놓고 묘한 긴장감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
– 알드리지가 그렇게 떠난 뒤에 나와 CJ가 한 가지 약속한 게 있었어.
– 뭘요?
– 우리보다 재능 있는 신예가 들어오면, 견제하고 밀어내기보단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베테랑으로서 이끌어 주자고.
– …….
내가 루키 주제에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뒷사정이 숨겨져 있었다.
아무리 내가 3옵션 역할에 충실하더라도.
릴라드와 맥컬럼의 양보와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평균 20득점 언저리의 스탯을 뽑아내진 못했겠지.
“데임, CJ. 이번엔 제가 갈게요.”
“1대1?”
“알드리지를 상대로? 자신 있어?”
“Yup, 당한 건 곧장 갚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말이죠.”
내 말에 피식 웃으며 공을 넘기는 릴라드.
맥컬럼 역시 45도 윙으로 이동해 내가 1대1 대결을 펼칠 공간을 확보해 주었다.
[이번에는 시온 킴이 엘보우에서 알드리지와 대치합니다.] [신장은 알드리지에게 우위가 있지만, 반대로 스피드와 민첩성은 압도적으로 킴이 우세하죠. 지금처럼 상대를 골밑에서 끄집어 내 1대1을 걸어오면 발이 느린 알드리지 입장에선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디펜스!”
짝짝!
“디펜스!”
짝짝!
AT&T 센터의 관중들이 스퍼스 선수들을 응원하는 챈트가 귀를 찔러 온다.
두 손을 치켜들며 사이즈로 나를 위압하려는 알드리지.
나는 자세를 낮추고, 농구공을 잡은 손을 풍차처럼 한 바퀴 휘돌리며 공간을 확보했다.
탁!
우선은 잽스탭을 집어넣어 반응을 확인한다.
“…….”
내 잽스탭에 움찔하는 알드리지.
스피드에서 열세인 점을 의식하고 있는지, 명백히 돌파를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저게 대형 스윙맨의 무서운 점입니다. 자신보다 사이즈가 작은 상대는 골밑에서 힘과 높이로 짓누르고, 사이즈가 큰 상대를 만나면 외각으로 끌어내 스피드로 농락해 버리죠.] [파워와 스피드, 사이즈를 겸비한 포워드가 그래서 상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아직까지 킴은 1대1 아이솔레이션 시도가 그리 많다고 하긴 어렵지만, 실전 경험이 조금 더 쌓이고 피지컬이 완성되고 나면 굉장히 무서운 선수가 될 거예요. 지금도 아이솔 시도 빈도가 낮은 것뿐이지 성공률은 그리 나쁘지 않거든요?]“날 상대로 1대1이라…… 하하. 꽤 자신이 있나 봐?”
“뭐, 저야 실패해도 본전이고 성공하면 대박이니까요.”
“패기가 좋네. 루키는 그래야지.”
대범한 척 그렇게 말하지만.
알드리지는 내가 1대1을 걸어왔다는 사실에 내심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알드리지가 원래 수비력이 그리 나쁜 선수는 아니지만.’
그건 전성기 시절의 이야기고.
노쇠화가 온 2018년의 알드리지는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잽스탭을 깊숙이 집어넣어 알드리지가 무게 중심을 뒤로 옮기도록 강요했고.
“헛!”
돌파 대신 그 자리에서 번개 같은 잽스탭 점퍼를 올라갔다.
철썩!
[날카로운 잽스탭 점퍼! 들어갑니다!] [이게 미드레인지에서 킴의 킬러 무브죠. 방금은 전성기의 카멜로 앤서니가 생각날 정도로 날카로운 잽스탭 점퍼였습니다.] [너는 페이드어웨이야? 나는 잽스탭이야! 뭐 그런 건가요? 하하하.] [올스타 선수를 상대로 시작부터 기 싸움을 벌이는 루키라니, 재밌네요. 따지고 보면 킴도 올스타 선수니 꿇릴 게 없지만 말입니다.]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그 자리에서 멈춰 선 알드리지.
나는 별다른 도발 없이 고개를 돌렸다.
오늘 시합에서 내가 꺾어야 할 상대는 알드리지라는 개인이 아니라, 스퍼스라는 팀이니까.
‘아아. 다들 주목! 산양은 내가 쓰러뜨린다…… 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백코트했다.
스퍼스와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