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45
웰컴 투 NBA 45화
#045. 드래프트 컴바인 (2)
“예. 저는 꼭 덴버 너기츠의 일원이 되고 싶습니다.”
덴버 너기츠의 GM, 아투라스 카니쇼바스는 김시온의 대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실제로 올해 덴버는 김시온의 지명을 강력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3점슛과 수비력이 뛰어난 윙 디펜더.’
코어로 삼을 포워드 유망주를 찾는 지금의 덴버에게 있어서, 김시온은 딱 그들이 원하는 유형의 선수였다.
‘원래는 순번을 20번대로 낮춰 OG 아누노비를 지명하고, 미래 1라운드 픽을 받아 오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지만······.’
아누노비의 상위 호환이라고 평가받는 김시온이 덴버에 오길 원한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상황 아닌가.
한편으로는 김시온이 지명 순위를 높이기 위해 본심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기묘하군. 이 친구는 딱히 덴버와 접점이 없는 걸로 아는데.’
덴버는 로키 산맥의 기슭에 위치한 고산도시.
미국의 대도시 중 가장 높은 고도인 해발 1,600m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을 예로 들면 설악산 정상에 세워진 도시라는 뜻이었다.
너기츠 또한 덴버 특유의 심심한 분위기와 고산병 탓에 선수들에게 선호되지 않는 구단.
화창한 캘리포니아와 살기 좋은 오리건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시온이 덴버를 특별히 선호할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으음. 고마운 이야기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너기츠는 미래가 밝은 프렌차이즈니까요. 전 너기츠가 몇 년 뒤에는 대권에 도전할 잠재력이 있는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확신마저 느껴지는 김시온의 답변.
하지만 정작 덴버의 단장인 카니쇼바스는 그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 시절 덴버 너기츠는 그렇게 전망이 밝아 보이는 팀은 아니었다.
2라운드 센터, 니콜라 요키치가 젊은 에이스로 떠오르며 확실한 코어를 하나 찾긴 했으나, 그 외에는 딱히 내세울 점이 없는 팀.
‘올해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핵심 선수인 다닐로 갈리나리는 FA로 떠날 예정이지.’
지난 시즌에도 덴버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렸으나, 니콜라 요키치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긴 유서프 너키치를 같은 서부의 포틀랜드로 트레이드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너키치 영입을 계기로 무섭게 치고 올라온 포틀랜드에게 서부 8위를 빼앗기며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만 것이다.
‘요키치 외에는 코어감 유망주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상황이고.’
지금의 덴버는 리빌딩을 끝마치려면 아직 먼 시점이었다.
에이스가 되어 주길 바랬던 7픽 포인트가드 엠마누엘 무디아이는 성장은커녕 퇴보하고 있었고.
작년에 지명한 자말 머레이는 아직 잠재력만 엿보이는 수준.
그나마 요키치가 언젠가 올스타급 센터로 성장하리란 기대를 받고 있었지만, 바꿔 말하면 요키치를 제외하곤 확실한 코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뭘 믿고?’
당황하는 카니쇼바스 단장.
한편 김시온은 지금 카니쇼바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왜긴 왜야. 떡상이 확실한 코인이니까 그러지.’
그가 살다 온 세계선에서 덴버는 22-23시즌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다.
르브론의 마이애미 빅3 결성으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빅3 열풍은 클리블랜드 2기 이후론 생각보다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브루클린 네츠의 실패가 대표적이었지.’
케빈 듀란트, 제임스 하든, 카이리 어빙의 빅3.
이름값만 보면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에 전혀 꿇릴 게 없던 이 조합은, 불운한 부상과 선수 간의 분열, 프랜차이즈를 자기 놀이터처럼 여기는 슈퍼스타들의 만행으로 인해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드래프트를 통해서 코어를 구성한 보스턴, 밀워키, 덴버 같은 팀의 운영 방식이 훨씬 모범적인 사례로 떠올랐고.’
덴버 역시 드래프트를 통해 우승권 전력을 갖춘 팀이었다.
덴버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요키치.
극단적인 주사위형 슈터지만 폭발력은 All-NBA급인 머레이.
그 외에도 KCP, 애런 고든, 브루스 브라운 등등의 우수한 롤플레이어들을 추가하며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다만······ 옥에 티가 하나 있었지.’
마이클 포터 주니어.
한때는 제2의 듀란트라는 소리를 들으며 드래프트 1픽으로 예상되었지만, 허리 디스크 수술이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나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한 선수.
마포주는 맥스 연봉을 받으면서도 파이널에선 3옵션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줬다.
‘그나마 우승했으니 무사히 넘어갔지, 만약 졌다면······.’
김시온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살았던 세계선에서 덴버는 왕조까지는 건설하지 못했지만, 동부의 밀워키가 그러했듯 서부의 꾸준한 강호로 군림했다.
‘덴버에 간다면 난 마포주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을 거야.’
애런 고든이 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약점으로 지적받던 윙 수비를 보완하고, 머레이와 함께 요키치의 스크린을 받아 3점을 쏘는 그림.
‘어쩌면 원 역사보다 훨씬 일찍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요키치를 보좌하는 조연 역할에 머물러야 하겠지만.
그 정도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덴버라는 팀은 매력적인 후보였다.
“덴버에 와 본 적이 있나?”
“고등학생 때 잠깐 놀러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살기 좋은 도시 같던데요.”
“덴버가 살기 좋은 동네이기는 하지. 다만 젊은 선수들에겐 좀 심심하다는 소릴 듣는다네.”
“전 심심한 거 좋아하는데요?”
“으응?”
“제게 화려한 도시에서의 삶은 오프 시즌마다 서울에 가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딱히 미국인 선수들처럼 뉴욕과 LA에서의 삶에 환상을 가진 것도 아니고요.”
김시온의 눈빛이 번쩍였다.
“무엇보다 전 덴버 특유의 겸손하고 이타적인 팀컬러 가 마음에 듭니다. 프랜차이즈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건 당장 올해의 성적이 아니라, 건전한 팀 문화(culture)를 형성해 나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덴버 너기츠는 제2의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될 수 있어요. 제가 그런 팀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고요.”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모든 스몰마켓이 모범으로 삼는 구단.
카니쇼바스 GM은 김시온의 답변에 크게 만족하며 1대1 면접을 마쳤다.
***
덴버와의 첫 만남이 좋게 마무리된 후.
나는 이틀에 걸쳐 16개의 구단과 인터뷰를 나눠야만 했다.
“휘유! 인기남이네? 보통은 많아야 7~8팀인데.”
“살려 줘······ 죽을 것 같아······.”
휘파람을 불며 내 등을 두드리는 라우리 마카넨.
마카넨은 10위 안에 지명될 것이 거의 확실해 오히려 관심을 보이는 팀이 적은 상황이었다.
“내 지명 예상 순위 봤어요? 최대 12픽에 최저 25픽이래. 이게 맞나?”
“큭큭. 너처럼 지명 순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선수도 드물걸.”
포틀랜드가 15위 픽을 판매할 거라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게 퍼진 뒤로.
내 순위는 다시 한번 롤러코스터처럼 급격히 요동치고 있었다.
컴바인에서 좋은 결과를 낸 덕분에 날 좋게 보던 쪽의 평가는 한층 올라갔지만, 날 원래부터 낮게 평가하던 매체는 계속해서 저평가를 하고 있는 상황.
그래도 실링이 낮고 플로어가 높은 즉시 전력감이라는 평가에는 변함이 없었다.
‘확실히 14픽을 경계로 구단의 반응이 극명히 나뉘는 걸 느낄 수 있었지.’
이제 막 탱킹에 들어가거나, 리빌딩 도중인 팀은 날 지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미네소타는 아예 관심이 없어 보였고, 뉴욕 닉스는 제레미 린을 예시로 들며 날 환영했지만, 진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끝없는 리빌딩 지옥에 빠져 있는 새크라맨토나, 나와 역할이 겹치는 니콜라스 바툼을 보유한 샬럿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지금의 로터리 순위는 큰 의미가 없지만.’
최종적인 로터리 순위가 결정되는 건 일주일 뒤니까.
NBA는 매년 이맘때쯤 하위 14위 팀 중에서 TOP 4픽을 가져갈 행운의 4팀을 뽑는 드래프트 로터리를 실시한다.
‘14개의 탁구공을 로터리 기계에 넣어 4개의 공을 뽑는 방식.’
이러면 4개의 공이 만드는 경우의 수가 딱 1001개가 되는데, 하위 14팀은 이 중에 1000개의 번호 조합을 각자의 당첨 확률에 따라 나눠 갖게 된다.
‘2017년 드래프트에선 1위 팀은 25%. 14위 팀은 0.1%였던가?’
여기서 TOP4 픽에 당첨된 팀은 단숨에 순위가 4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뒤에서 14위 팀인 마이애미 히트도 1위 픽을 가져갈 확률이 있고, 올해 꼴찌인 브루클린의 픽도 (셀틱스가 보유) 5위까지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14픽을 로터리(복권)이라고 불리는 이유지.’
내가 살던 세계선에선 셀틱스, 레이커스, 76ers, 선즈가 1-4픽을 획득하게 되지만.
여기서도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미네소타와 달리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마이애미 히트, 밀워키 벅스는 적극적으로 내게 관심을 표출했다.
‘포틀랜드가 의외로 소극적인 게 의외였지.’
포틀랜드의 닐 올쉐이 단장은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만 던졌을 뿐, 내게 오랜 시간을 투자하기 싫어 보이는 눈치였다.
덴버 다음으로 가고 싶은 팀이 포틀랜드였는데.
아무래도 워리어스 부단장의 말대로 정말로 15픽을 판매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역시 프로의 무대는 냉정하다 이건가.’
손익이 달린 문제라면 낭만 따윈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NBA였다.
컴바인은 그 이후로도 빠르게 흘러갔다.
3일차는 슈팅 드릴.
4일차는 운동능력 평가가 열리는 날이었다.
“뭐야. 마카넨은 어디 갔어요?”
“오늘은 쉬겠대.”
“하긴, 굳이 모든 시험에 응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운동능력 평가는 컴바인의 꽃이라고 불리는 파트.
흑인 선수들은 대부분 의욕 만발인 반면, 라우리 마카넨, 잭 콜린스, 루크 케너드 등 운동능력이 약점이라고 평가받는 백인 선수들은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뭐, 디애런 팍스, OG 아누노비도 결장했으니 꼭 백인 선수들만 빠진 건 아니었지만.
“팍스가 빠진 건 아쉽네. 올해 넘버원 스피드스타를 가릴 기회였는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도노반 미첼.
조던 벨 역시 기세등등한 얼굴로 콧김을 씩씩대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구나!”
“오우. 꽤 자신이 있나 봐요?”
“그럼! 솔직히 다른 항목은 곁다리고, 운동능력 시험이야말로 진짜 시험이지. 안 그래?”
기세등등한 말투와 달리, 어쩐지 표정에 여유가 없어 보이는 조던 벨.
“······JB,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 봐요. 다른 시험 망쳤죠?”
“어. 망했어. 이제 난 이것밖에 안 남았어.”
1라운드 중하위권으로 예상되던 조던 벨은 키와 윙스팬이 프로필보다 작게 나오고, 슈팅 드릴에서 슛이 없다는 약점까지 알려지며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흐음.
이렇게 된 거, 좀 더 양념을 곁들여 볼까.
“그럼 우리, 내기할까요?”
“내기?”
“6종목의 순위를 합산해서 뒤에서 1, 2위인 사람들이 나머지 셋에게 밥을 사는 걸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선수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마침 지금 모인 건 조던 벨, 딜런 브룩스, 도노반 미첼, 제럿 앨런, 그리고 나.
다들 운동능력으로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빅맨인 앨런한테만 너무 불리하지 않나?”
“재밌겠네요. 전 괜찮으니까 그냥 하죠.”
“그래. 어차피 JB와 킴도 4번 사이즈잖아? 큰 차이는 없다고.”
눈을 반짝이는 선수들.
원래 경쟁이 없으면 의욕이 안 나는 게 운동선수들의 생리다.
“좋아. 그럼 정정당당하게!”
드래프트 컴바인의 테스트 항목은 총 6가지였다.
– 제자리 뛰기 (Vertical jump)
– 도움닫기 뛰기 (Maximum jump)
– 3/4 코트 스프린트
– 레인 어질리티
– 셔틀 런
– 벤치 프레스
제자리, 도움닫기 뛰기는 점프력 테스트.
3/4 코트 스프린트는 농구 코트의 3/4인 75피트(23m)를 달리는 시험.
레인 어질리티는 정사각형 형태로 그려진 레인을 따라 움직이며 가로 걸음과 뒷걸음질 속도를 체크하는 민첩성 시험이었다.
‘셔틀 런은 가로 왕복 달리기 훈련이고.’
벤치 프레스야 헬스장에서 흔히들 하는 그거다.
처음 체크하는 항목은 버티컬 점프.
NBA 선수들의 평균은 28인치(71cm)로,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가드에게 유리하고 빅맨에게는 불리한 시험이었다.
“도노반 미첼! 36.5인치!”
“오오오오!”
“미쳤다!”
2위인 35.5인치를 가볍게 제치고 단독 1위를 갱신하는 미첼.
조던 벨, 제럿 앨런은 사이좋게 31.5인치.
딜런 브룩스는 31.0인치를 기록했다.
“다음은 킴이네.”
“킴 덕분에 일단 꼴찌는 피한 건가?”
희희낙락하는 JB와 브룩스.
악의가 없다는 건 알지만, 동양인이면 당연히 점프력에서 꼴찌일 거라고 여기는 선입견이 참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선배들, 대학교에서 내 기록 확인 안 해 봤어요?”
“······응?”
“헛참. 평소에 덩크 찍는 것만 봐도 모르나.”
꼭 선배들이 아니라도 시험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이러면 이 악물고 뛰는 수밖에.
“시온 킴! 앞으로!”
버티컬 점프에서 중요한 건 탄력과 근력.
탄력이야 선천적으로 타고난 거니 어쩔 수 없지만, 근력은 후천적으로 단련 가능한 영역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꾸준히 해 온 훈련이 다 이걸 위해서였지.’
기본적으로는 역도의 요령과 마찬가지.
무릎을 낮게 굽히고, 발목과 엉덩이 근육의 힘을 빠른 속도로 위로 전달해 폭발적인 도약력을 이끌어 낸다.
“흐읍!”
하체의 파워를 1%도 낭비하지 않고 온전히 수직 무브먼트로 변환.
툭!
쭉 편 손으로 테스트기를 건드리고 가볍게 착지했다.
내 손을 맞고 돌아간 플라스틱 막대에 쓰인 숫자를 확인하는 시험관.
“시온 킴. 32.5인치!”
“오오오오!”
머리를 움켜쥐는 JB와 딜런 브룩스.
나는 선배들에게 검지를 흔들어 보이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게 어디서 까불어.’
내가 괜히 키 말고 다른 재능은 필요 없다고 한 게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