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273
“강 기자!”
언론사 복도를 지나가던 강 기자. 동료의 부름에 고개를 튼다. 벌써 며칠 동안이나 잠을 못 잔 탓에 눈가는 퀭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번에 또 특종 물었다며?”
“특종? 어떤 거? 김 의원 사위 도박한 거? 아니면 뭐, 더블린이 이로마트 인수하겠다고 말한 거? 어떤 거?”
강 기자 특유의 능글거림에 동료가 혀를 끌끌 차 댄다. 말을 말자는 표정이다.
“하여간 재수 없어.”
“알면 잡지 마. 피곤해 죽겠는데.”
“동료 사이에 축하도 못 하냐?”
“축하는 무슨. 선배 요즘 소스 뒤지고 다닌다는 소문 파다해. 그러니까 평소 애들한테 잘하지.”
“미친. 모르는 게 없네.”
“수고하셔.”
“그래서, 진짜 뭐 없고?”
“···저쪽 J방송국에 가 보든가. 개편 시즌 오니까 재밌는 말 슬슬 들리던데.”
본인이 쓰기에는 조금 떨어지지만,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사람에게는 꽤나 괜찮은 기사감이 될 것이다. 강 기자의 말에 동료가 손가락을 튕기며 웃는다.
“역시.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우리의 화수분.”
“말은 뻔지르르하시네.”
“하하. 아무튼 고맙다! 밥이나 좀 먹고 다녀.”
선배는 감사와 걱정을 쏟아 내며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로써 좀 조용해지겠군. 강 기자는 터덜터덜 책상으로 돌아와 몸을 뉘었다.
‘개피곤하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일이 많았다. 당장 내일 올라가야 하는 기사 초고부터 시작해서 작성해야 할 거리가 산더미였다. 동료들에게 부탁하자니, 밥그릇 나눠 먹는 것 같아 싫고.
‘하여간 욕심쟁이라 사서 고생을 해요.’
스스로를 자책하며 기지개를 켜는 강 기자.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 책상 말고는 모두 비어 있었다. 어느새 새벽의 허리를 달려가고 있는 시간. 강 기자가 볼을 가볍게 때리며 잠을 쫓아냈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 울리는 휴대폰. 경찰서에서 대기하고 있는 후배 기자의 전화였다. 강 기자는 푹 잠긴 목소리로 대꾸했다.
“삼 초 준다.”
삼 초 안에 간략한 개요를 읊으라는 말. 기기를 통해 후배의 보고가 들려왔다.
-KVS 방송국 사장이 미성년자 성매매 및 폭행으로 들어왔어요.
특종 중의 특종. 강 기자는 나른했던 몸에 전류가 통하는 기분이었다. 한 번에 확 가시는 졸음. 그는 가방을 챙기며 묻는다.
“서울지방경찰청이지?”
-네. 아직 다른 데서는 냄새 못 맡은 것 같은데.
“딱 기다려. 다른 애들 들어가려고 하면 무조건 막아. 무조건. 이거 우리가 잡아야 한다.”
-빨리 오세요. 저 혼자 힘드니까.
우당탕탕.
강 기자는 전화를 끊는 둥 마는 둥, 재빨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매일같이 자신을 자극하는 기사가 쏟아지는 사회. 이럴 때마다 강 기자는 스스로 살아 있음을 느끼곤 했다.
***
“이걸 왜 못 씁니까?”
강 기자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고 묻는다. 그의 옆에 서 있는 후배. 어쩔 줄 몰라 하며 강 기자와 부장의 눈치만 살폈다.
“내가 묻고 싶다. 대체 이걸 왜 쓰는 거야?”
“왜라니요? 현직 방송국 사장이 미성년자 성매매하다 잡혔는데 그걸 안 쓰면, 대체 뭘 씁니까?”
부장은 강 기자가 올린 초고를 가볍게 던지며 일어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허리춤에 팔을 올린 모습.
“쓸 게 천지삐까리인데 왜 그걸 쓰냐고!”
KVS 방송국 사장의 체포 소식은 알음알음 기자들 사이로 퍼져 갔다. 강 기자와 후배가 거의 처음으로 기사를 냈지만···.
“거기 포탈 대표가 사장 친척인 거 알아? 몰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검색 사이트의 대표와 혈연관계인 탓에, 올라가면 올라가는 족족 기사가 삭제되었다. 게다가 ‘언론 방송’이라는 틀로 묶여 있는 동종업계 사람이다 보니, 기사 내는 것 자체가 쉬쉬 되는 분위기였다.
“아는데요.”
“근데 왜 자꾸 올려 대?”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니까요.”
“별개 아니야. 아주 긴밀하다고 이 새끼야!”
부장은 혈압이 오르는지, 뒷목을 잡으며 소리쳤다. 오들오들 떨어 대는 후배와 달리 강 기자는 당당했다.
“막는다고 막히는 게 기사입니까?”
“그럼. 그거 결재하고 보도 내주는 곳인데. 안 막히면? 엉? 안 막히면?”
차악-
부장은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손만 내저어 댔다. 바닥으로 기사 초고 보고서가 널브러진다.
“너 일 잘하는 거 알겠고, 무슨 의도인지도 알겠어. 근데 이거 말고 쓸 거 많잖아? 우리 쉽게 좀 가자. 응?”
사실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사건이 터져 대는 대한민국 아닌가. 안 그래도, 강 기자의 손에 들린 특종은 수도 없이 많았다.
“너 이대로만 가면 연말에 승진이야, 도하야.”
“알고 있어요. 근데 저 이거 꼭 쓰고 싶어요.”
“안 돼. 쓸 거면 나 밟고 써.”
부장의 말에 도하가 은근슬쩍 다가간다. 얼마든지 밟겠다는 듯이. 옆에서 후배가 매달리며 겨우 말린다.
“선배. 일단 나가요.”
“부장님 밟으면 쓰게 해 준다잖아. 이거 놔 봐.”
“선배!”
“강도하!”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바락 질러 댄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실을 나와 휴게실로 향하는 도하. 담배를 하나 꺼내 물어 밖을 쳐다본다.
“선배. 일단 상황 보고, 경찰 수사 진행되면 그때 다시 찔러 봐요. 아직 결과가 안 나와서 이러는 거예요.”
그의 후배가 불을 붙여 주며 다독인다. 아무리 쉬쉬하더라도, 송치가 되고 재판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하는 못마땅한 표정을 풀지 않는다.
“일이 끝난 다음 쓰면 그게 기사야?”
“선배.”
“처음부터 어떻게 일이 터졌는지를 알려 주는 게 기사고, 내가 할 일이야. 사람들한테 눈과 귀가 되어 주는 게 기사라고. 지들이 뭔데 펜대를 막아?”
“그럼 어떡해요? 다른 쪽도 아니라 방송국인데.”
차라리 다른 기업이라면 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사 사장은 언론 업계에서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봉이었다.
“젠장. 씨부럴.”
도하가 거친 말을 내뱉으며 야경을 내려다본다. 빌딩 숲 사이 반짝이는 불빛들. 커다란 전광판에는 끝도 없이 광고가 흘러나온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번만 넘어가자고요.”
도하는 멍하니 그 광고만 쳐다본다. 옆에서 조잘대는 후배의 말이 한 귀로 들어왔다가 반대쪽 귀로 흘러내렸다.
“선배. 내 얘기 듣고 있어요?”
“야. 그거 수사하는 곳이 어디라고 했지?”
“서울경찰청 여청과요.”
도하는 품에 넣어 두었던 작은 수첩을 꺼냈다. 온갖 사람들의 인적 사항이 적힌 노트. 그의 기자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든 자료였다.
“선배?”
“당장 애들한테 연락 돌려 봐.”
“뭐를요?”
“KVS 사장 사건 조사한 자료, 인터뷰랑 영상 땄는데 까인 거 싹 다 모아서 광고 하나 만들자.”
후배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린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선배가 드디어 미쳐 버린 것인가. 하지만 도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툭툭 털어 댄다.
“사이트에서 막아 대면 다른 데서 낼 수밖에 없지. 한번 가 보자고.”
그리고 가볍게 웃으며 다시 전광판을 쳐다본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그 이름, ‘고지훈 삼촌’이라는 번호를 찾으며.
***
고지훈 차장이라 적힌 명패, 나는 마른 수건으로 그걸 닦으며 웃었다. 세월이 참 빠르긴 빠르다. 내가 차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도하가 후배 기자를 달았으니.
“오랜만에 봐서 한다는 얘기가 광고 넣어 달라고?”
잘 자란 도하는 누나의 길을 따라 기자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현역으로 뛰질 않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꽤나 잘나가는 기자라고 들었다.
“얘기 들으셨죠? KVS 사장 건.”
“아아. 알지. 아침에 국과수에서 DNA 검사 결과도 올라왔거든. CCTV도 있고, 증거 정황이 뚜렷한데 왜 기자들이 잠잠하나 했네.”
“아무래도 다들 눈치 보느라 제대로 보도를 못 하고 있어요. 낸다 해도 사이트에서 바로 잘라 버리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지면 기사보다 사이트 기사가 주류를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까딱거렸다.
“맨입으로 왔을 리는 없고. 줘 봐.”
“여기요.”
도하는 가방에서 서류 더미와 이동식 디스크를 꺼낸다. 나는 천천히 그걸 넘기며 확인했다.
“서울의 주요 차로 전광판에 순차적으로 광고를 틀어 달라? 이게 얼마짜리인지는 알고 있어?”
“도저히 제 선에선 감당이 안 되어서요.”
“영상 내용은? 명예 훼손으로 걸릴 수도 있어.”
“아. 그건 괜찮아요. 감당 오케이니까.”
도하의 맹랑한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인턴 때 이전성 기자와 한솥밥을 먹었다더니, 이상한 걸 제대로 배운 모양이다. 나는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USB를 꽂았다.
딸깍.
“오호. 모자이크 하나 없이 쌩이네?”
“비싼 돈 들여 가며 보내는 건데, 아깝잖아요.”
영상은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이었다. 기자들끼리 모은 자료, KVS사장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는 장면과 피해자의 인터뷰. 병원의 소견서. 그리고 이런 기사를 내린 사이트의 고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피해자는 대역이에요. 아무래도 아직 미성년자라.”
“나도 예전에 현역 뛸 때 비슷한 사건 맡았었지. 그때는 검사였어.”
“들은 적 있어요.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됐다고. 그때 수사권 얘기까지 나왔다면서요?”
오랜만에 떠오르는 추억. 나는 1분짜리 영상을 계속 돌려 보면서 물었다.
“이거 올리면, 뒷감당은 괜찮겠어?”
“그 정도는 감당 가능하다니까요. 돈이 무섭지 사람이 무섭습니까.”
“다 컸네. 짜식.”
“일단 화제만 몰면, 그 뒤로는 SNS로 돌릴 수 있을 거예요. 잘만 하면 외신 쪽도 관심을 갖겠죠.”
일단 불을 지피는 게 중요했다. 내가 버티고 있으니, 수사 쪽에서 잡음은 섞이지 않겠지만 국민이 알고 모르는 건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좋아. 광고 넣어 주면, 넌 뭘 해 줄 건데?”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도하에게 물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뭘 원하는지 되묻는다.
“글쎄요. 제가 뭘 할 수 있는데요?”
나는 살짝 떠보듯이 제안했다.
“네 회사 사장. 그쪽도 요즘 우리가 주시하고 있거든. 땅 투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던데.”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 사장 역시 폭로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거기에 관련된 정보를 가져오라는 것. 도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중얼거렸다.
“대체···.”
“못하겠으면 말고. 우리 나이가 몇인데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해야지?”
“그걸 어디서 들은 거예요? 저도 좀 알려 줘요!”
완전 흥분해서 팔짝 뛰어오르는 도하. 옆에 인형처럼 앉아 있던 후배 역시 충격적인 소스에 입을 가린다.
“알려 주면? 할 거냐?”
“말이라고!”
“와. 나 이전성 씨한테 전화 걸어야겠다. 애를 완전히 망쳐 놨네. 망쳐 놨어.”
내 장난스러운 말에 도하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능글맞게 부정한다.
“망친 게 아니라 완성된 거죠. 진정한 기자로. 원래 언론쟁이의 본분이란 이런 거거든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한다. 그게 어디서 나왔고, 어디로 가든. 그나저나 빨리 말해 줘요. 우리 사장이 뭐 어쨌는데요?”
이거야 원. 완전 도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구먼. KVS사장부터 본인의 보스까지. 나는 혀를 내두르며 휴대폰을 들었다.
“너 나도 무슨 일 있으면 펜대 돌릴 거지?”
“에이. 삼촌은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요.”
“어어? 아니라고는 말 안 하네?”
“아무튼 그럼 광고 넣어 주는 걸로 알게요. 우리 사장 건은, 빠른 시일 내로 소스 얻어서 넘기겠습니다.”
도하가 자신의 후배를 재촉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폭탄이 터질 터이니, 미리 준비하겠다는 듯. 나는 어서 가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네. 김 실장님.”
그리고 도하가 가져온 보고서와 USB를 만지작거리며 지시했다.
“우리 전광판 광고 좀 넣읍시다. 저기, 사람들 눈에 잘 들어오는 곳으로다가. 네네. 딴 거 말고 제가 보내는 영상만 틀어 줘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다 큰 도하의 뒷모습. 어린애 같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어엿하게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제 누나의 발자국을 따라가나 싶었는데··· 정신 차리니 그걸 뛰어넘었구나.
“누구 이름으로 거냐고요? 말해 뭐 해. 내 이름으로 해요.”
그렇다면 내가 해 줄 일은 그가 더 멀리 뛰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뿐이지.
끝
ⓒ 배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