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105
02108 2108화
그 후에는 물수건으로 차분하게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았다.
그러면서 제이에게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차 있지?”
“네. 굴러만 가는 정도지만요.”
“지금은 밀어서라도 가야 할 판이니까 상관없겠지.”
“가다니요?”
“병원.”
태수의 말에 제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건.”
“나도 당신이 뭘 걱정하는지 알아.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내일 아침까지도 힘들어.”
“헉!”
제이가 기겁하며 눈까지 파르르 떨었다.
태수는 오히려 그런 그를 나무랐다.
“중심 잡아. 당신이 중심을 잡고 있어야지.”
“…….”
“일단 가서 차부터 대기시켜. 병원비 걱정 말고.”
“네?”
“애부터 살리고 나서 얘기하자고. 빨리 움직여. 빨리!”
태수가 강하게 재촉했다.
그제야 제이가 일어나려 했다.
그 순간 로벤이 제이를 만류했다.
“넌 있어. 내 차 가져올게. 그게 더 빠르니까.”
“로벤.”
“지금은 네가 에디 옆에 있어야지.”
“……고마워.”
“마음 약한 얼굴 하지 말고. 닥터 최, 에디한테 문제 생기면 당신도 다시는 아침 해를 볼 수 없을 거야.”
로벤이 싸늘하게 협박했다.
하지만 태수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대꾸했다.
“날 협박할 정도로 한가해?”
“……저 젠장맞을 주둥이! 간다.”
로벤이 거칠게 돌아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욱, 우욱.”
기절한 에디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냈다.
바로 고개 돌려 바라보자 목울대가 크게 울렁이고 있었다.
구토?
태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얼른 에디의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그와 동시였다.
“우엑!”
후두둑!
토악질과 함께 쏟아져 나온 건 토사물이 아닌 피였다.
토혈.
거무죽죽하고 끈적끈적한 느낌만으로도 이젠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제이가 경악했다.
“에디!”
“무슨 일이야? 헉! 피가!”
다시 돌아선 로벤의 얼굴도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소란스러운 그들의 목소리가 작은 방을 울려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태수도 가급적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을 그럴 때가 아니라 거칠게 소리쳤다.
“다들 닥쳐!”
“하지만 피가…… 피를 저렇게…….”
제이의 목소리가 계속 잠겼다.
그럴 정도로 토혈 양이 상당했다.
태수도 명확히 봐서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제이를 진정시켰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 절대 소리치지 말고, 또 자극하지 말고.”
“에…… 에디야. 내 아들.”
“제발 조용히 하라고.”
태수는 경고하고 바로 에디를 다시 살폈다.
토혈은 예상했다.
하지만 시트가 흠뻑 젖을 정도의 출혈을 예상한 건 아니었다.
이 정도 토혈이라면 간의 문제가 심각하단 뜻과 같았다.
태수는 재빨리 에디의 복부를 더듬거렸다.
명치 부근을 확인하던 태수가 멈칫했다.
이 느낌은?
위장이 왼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럼 그 바로 아래에 있는 췌장도 밀렸을 터였다.
간이 그만큼 부풀었단 의미였다.
손끝으로 초진해서 간이 커졌단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분 사이에 이렇게 부풀어 오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오감을 이용한 기본 검사도 최소한의 의료 도구가 있을 때 빛을 보는 법이다.
아무리 정교한 두 손이라 해도 의료 도구를 대신할 순 없었다.
청진기 하나만 있었어도!
후회와 미련이 엄습한다고 해도 거기에 매달릴 순 없었다.
그때 로벤이 거칠게 소리쳤다.
“에이씨! 차부터 준비할게!”
“멈춰! 차량은 쥐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 상태로 못 가!”
태수가 버럭 소리쳤다.
의학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피를 토했을 때 무조건 병원으로 출발하는 게 옳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의학 지식이 있다면 이송 가능과 불가능의 판단이 가능했다.
태수는 후자였고, 크게 토혈한 이상 이송은 불가능했다.
내부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계속 충격을 주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태수도 갑갑해졌다.
이송은 안 되고,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때였다.
“우, 우욱!”
에디가 또 한 번 목울대를 부풀렸다.
“젠장!”
태수는 거칠게 소리치며 한 번 더 에디의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쿨럭, 우엑!”
거친 기침 소리와 함께 또 한 번 토혈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제이와 로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다.
“오, 갓! 제발!”
“갓뎀, 미치겠네!”
머리를 쥐어뜯는 건 당연했다.
특히 제이는 미쳐 버릴 것 같은 얼굴로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고 싶을 터였다. 하지만 자신이 나서면 에디 상태가 더 악화될 걸 먼저 우려했다.
다가오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로벤도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하며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그런 그는 인내심이란 게 없는지 태수에게 바로 소리쳤다.
“너 이 새끼야! 너, 닥터라며!”
“…….”
“왜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어! 애가 저렇게 피를 토하는데 왜 쳐다만 보고 있냐고!”
“제발 그 주둥이 좀 닥쳐 줄래!”
“…….”
짜증으로 얼굴이 찌푸려진 태수가 더욱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로벤이 눈을 끔뻑거리며 황당해했다.
그러나 태수는 그걸 둘러볼 정신도 없었다.
머릿속에 현재 가장 효율적인 모든 방법을 떠올렸다.
그와 동시였다.
태수가 눈빛을 반짝이며 제이를 다그쳤다.
“약, 그래, 약! 항생제하고 진통제 말이야. 남아 있어?”
“아니요.”
“그럼 그거 어디서 구했어?”
“야, 약이요?”
제이가 얼결에 묻자 태수가 거칠게 다그쳤다.
“빨리! 빨리 생각해. 어디서 구했냐고! 그냥 밖에서 사 왔어?”
“그게…….”
태수의 거친 재촉에 제이는 순간 멍해졌다.
아들 걱정이 머릿속에 꽉 차 다른 생각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모습이다.
충분히 이해했다.
그 마음이 오죽할까.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 태수가 다시 다그치려 했다.
그때 로벤의 입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할렘가 사람들은 밖에서 약 구하기 힘들어. ID 카드도 없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래서 뭐!”
“대신 어둠의 의사가 있어. 말이 의사지, 약사 정도야. 그를 통하면 웬만한 건 모두 구할 수 있어.”
“모두?”
“거의 모두. 내가 뭐가 필요한지는 모르니까.”
로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작아졌다.
이 상황에서는 태수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자신의 자존심보다 에디 목숨이 중요하단 뜻이기도 했다.
태수는 그런 것까지 일일이 파악할 시간이 없었다.
주변에 의사는 결국 자신뿐이다.
펜, 종이.
태수는 재빨리 두리번거렸다.
에디의 낡은 책상이 보이자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순간에도 태수는 제이에게 부탁했다.
“제이, 에디 입안부터 헹궈 주고 흐른 피도 닦아 줘. 대신 절대 애를 흔들면 안 돼.”
“알았어요.”
아이를 만질 수 있는 순간이라 제이는 빠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물부터 들어 태수와 똑같이 행동했다.
비록 그 손길이 어설펐지만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봐서 흉내 낼 수 있었다.
물로 입안을 모두 헹군 후였다.
바로 물수건으로 바꿔 들고 토혈로 엉망이 된 얼굴을 떨리는 손길로 닦기 시작했다.
“에디, 괜찮아. 아빠 여기 있어. 너만큼은 절대 이대로 보내지 않아.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그의 중얼거림은 끝이 없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입을 닦는 손끝은 파르르 떨려 왔다.
침착하려야 침착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호자는 특히나 가슴이 문드러지는 아픔을 억지로 누르고 있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이는 정말 자제력이 강했다.
그사이 태수는 에디의 책상에서 발견한 노트를 펼쳐 빠르게 필요한 목록을 적었다.
휙휙.
병원에서도 약자로 적는 의약품을 일부러 풀어서 썼다.
어둠의 의사라고 불린다는 상대가 못 알아보면 그게 더 골치 아픈 탓이다.
지금 가장 당장 필요한 것만 빠르게 적었다.
그중에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의료 도구들도 있었다. 어둠의 루트를 통해서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래야 했다.
그래서 태수는 거침없이 적었다.
상당히 추려 적었는데도 꽤나 많은 양이었다.
부욱!
종이를 거칠게 찢은 태수가 로벤에게 내밀며 물었다.
“다녀오는 데 얼마나 걸리지?”
“어둠의 의사는 가까운 데 있어. 그런데 이…… 좌우간 당신이 준 이거, 이것들을 찾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10분. 그 안에 최대한 챙겨 와. 다시 가더라도.”
“가능하긴 한데…….”
로벤이 말을 끌자 태수가 버럭 짜증을 냈다.
“또 뭐!”
“감기약 하나도 상당히 비싼 편이라……. 내가 가진 돈으로 이걸 다 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젠장. 여기. 이걸로도 모자라다고 떽떽거리면 날강도니까 그 새끼부터 총으로 쏴 버려.”
태수는 바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아예 통째로 건네줬다.
그 속에 현금이 두툼하게 담겨 있었다.
얼떨결에 받아 든 로벤이 의외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당신…… 이걸 왜…….”
“그깟 종이쪼가리가 쟤 목숨보다 중요해?”
“…….”
“야, 이 새끼야! 안 돌아가는 짱구 억지로 굴리지 말고 빨리 뛰어가서 그거부터 구해 와!”
태수가 버럭 소리치자 로벤이 멍한 정신을 번뜩 차렸다.
“가, 갔다 올게.”
“빨리 다녀와. 늦으면 내가 네 배를 갈라 버릴지도 모르니까.”
“……젠장.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뛰라고! 이 덩치만 큰 놈아!”
“가잖아!”
말뿐만이 아니라 로벤은 어느새 뛰고 있었다.
태수가 욕설을 퍼부었다는 것도 지금은 정신이 없는지 따지지 않았다.
쿵쿵!
아파트가 울릴 정도로 거칠게 달려 밖으로 나갔다.
로벤을 보냈지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어떤 형식이든 응급처치를 진행해야 했다.
투덜거릴 시간도 없었다.
머릿속을 정리한 태수는 얼른 제이 옆으로 다가갔다.
잠깐 사이였지만 입 주변에 넘친 피는 많이 지워졌다.
수건이 빨갛게 물든 만큼 제이의 속도 타들어 갈 터였다.
태수는 일단 칭찬부터 했다.
“거기까지만 해. 참느라 고생했어.”
“아니요. 아닙니다. 이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집에 구급상자가 있나?”
“없습니다.”
제이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태수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탓이다.
바로 생각을 바꾼 태수가 다시 질문을 건넸다.
“그럼 독한 술은 있지? 위스키, 아니면 럼, 그것도 아니면 데낄라라도.”
“럼이 좀 있어요.”
“그거하고 칼, 가위, 또 깨끗한 면으로 된 거 아무거나 가져와.”
태수의 말에 제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칼…… 가위…… 요?”
“일일이 설명 들어야겠으면 커피라도 한 잔 끓이고.”
“아니요. 빨리 가져올게요.”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제이는 허둥지둥 작은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
태수는 어깨를 툭 내리며 한탄 어린 중얼거림을 토해 냈다.
“여기 미국이라고.”
세계 최고?
소위 대가리라 불리는 놈들의 자만심이다.
태수의 시선에 미국은 의료 복지 분야에선 한국에 훨씬 뒤처져 있었다.
아주 원색적으로 표현하면 미개한 수준이었다.
그 생각을 하던 태수가 갑자기 욱했다.
의료보험 민영화?
‘지랄하고 있네.’
이런 상황은 미국에서 경험하는 걸로 충분했다.
속으로 누군가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니 조금은 갑갑함이 가라앉았다.
태수는 조심스럽게 에디의 웃옷을 들췄다.
지금까지는 보온을 위해서 일부러 옷 위로 살폈다.
이젠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까만 살결이 드러나고 명치 주변이 부풀어 오른 모습이 보였다.
얇은 티셔츠 한 장 차이라 태수가 손으로 앞서 확인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