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255
02258 2258화
그건 정민수뿐만이 아니었다.
황금색 배지는 삽시간에 모든 팀원들의 손에 하나씩 들려 있었다.
그걸 내려다본 모두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그사이 태수는 배지를 옷깃에 꼽았다.
반짝!
햇살에 반짝인 배지의 가운데가 유독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 가운데에 인쇄된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바로 송민규의 얼굴이었다.
어느새 팀원들도 배지를 바라보는 걸 멈추고 옷깃에 달았다. 그러자 상황실 곳곳에서 황금색 배지가 반짝였다.
태수는 옷깃에 단 배지를 잘 보이게 잡고 말했다.
“앞으로도 송민규 선생은 우리와 모든 순간을 함께할 겁니다.”
“…….”
“또 우리의 건강을 지켜 달란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의 아들딸이고, 누군가의 부모이자 친구입니다.”
“…….”
“이 배지가 늘어나는 일은 없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태수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험한 출동길이기에 무조건적인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미국 출동에서 그걸 뼈저리게 느낀 태수였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또 팀원들도 그걸 바르게 이해했다.
그리고…….
꽈악.
다들 가볍게 옷깃에 단 배지를 잡았다.
그리고 자신과 팀원들, 또 환자들의 안녕을 소망했다.
상황실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태수는 그런 팀원들을 다시 둘러봤다. 그러고는 집에서 몸을 추스르는 동안 정리한 다짐을 소리 내 말했다.
“우리 응급의료대는 어떤 출동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어떤 환자도 먼저 밀어내는 법이 없어야 합니다.”
“…….”
“모두가 힘들다고 할지라도, 설령 보호자조차 외면하더라도 환자가 숨을 쉬는 이상 먼저 등을 보여선 안 됩니다.”
“…….”
“그 희망이 단 1퍼센트일지라도, 터무니없는 기적을 꿈꾸더라도 먼저 손을 놓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태수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만큼 팀원들 또한 굳건한 다짐만큼 눈빛이 강렬하게 변해 갔다.
태수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
지금도 손에 쥐고 있는 배지로 모든 게 설명된다.
그렇게 강렬한 모두의 눈빛을 마주한 태수가 말을 이었다.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응급의료대가 됩시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태수가 한 번 더 인사했다.
이번엔 팀원들 모두 같이 마주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약속이자 신뢰의 의미였다.
또 자신의 등을 맡길 수 있는 팀원들에 대한 믿음의 인사이기도 했다.
떠들썩한 격려와 환호는 없었다.
그보다 더 가슴 끓는 자신을 느낄 뿐이다.
굵직한 태수의 인사가 끝난 후였다.
오늘 오프거나 야간 근무자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그사이 태수는 안성훈과 김명철을 마주하고 있었다.
턱, 턱.
나눠 주지 않은 2개의 배지 뭉치를 그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대구하고 광주 팀원들에게 나눠 줘.”
“네.”
“조만간 인사 갈 거니까 대신 안부 전해 줘.”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후배들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옷깃에서 반짝이는 배지가 마음을 무겁게 하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후배들의 팔뚝을 가볍게 쳤다.
“녀석들. 웃어.”
“…….”
“폼 잡자고 만든 거 아니야. 즐길 거 즐기고 놀 거 놀아. 단, 출동할 때만큼은…….”
태수가 말을 이어 가려는 순간 김명철이 한 박자 빠르게 말했다.
“긴장하라는 의미란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
“출동하기 전에 꼭 되새기겠습니다.”
김명철의 대답에 안성훈이 동조했다.
“저도요. 그리고 저희 쪽 팀원들에게도 꼭 팀장님 뜻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같이 이동하는 팀원들 잘 인솔해서 내려가.”
“걱정 마세요. 그보다 팀장님, 오랜만의 복귀라고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안성훈의 걱정에 태수가 옅게 미소 지었다.
“잔소리는.”
“팀장님께는 해도 됩니다.”
“웃기는 소리 말고, 슬슬 가 봐. 얼른 도착해서 짐 풀고 좀 쉬어야 내일 출근하기 좋지.”
“알겠습니다. 그럼 갑니다.”
꾸벅.
안성훈과 김명철은 동시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멀어져 갔다.
그리고 각자 같이 내려가기로 결정된 팀원들을 챙겼다.
“박 선생님, 출발하시죠.”
“김 선생님, 저희도 갈 때가 된 거 같습니다.”
그런 그들 주변으로 낯선 얼굴들이 다가갔다.
태수가 지켜보고 있자 옆에 다가온 정민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파견 나온 의료진들은 벼락 맞았네. 갑자기 각지로 찢어지게 됐으니.”
“그게 좋아.”
“당연히 좋지. 안 그래도 파벌이 만들어질 조짐이 보였다고.”
“선배도 그걸 걱정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총대 메고 나선 거야.”
태수의 말에 정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 네 말을 거부할 팀원은 아무도 없으니까.”
“적응 안 되니까 뜬금없이 칭찬하지 말고.”
“나름 사실에 입각한 칭찬이야. 그보다 2차로 갔던 애들이 제임스하고 수술했다던데, 사실이야?”
정민수의 물음에 태수가 힐끔 곁눈질하며 답했다.
“그렇다고 했잖아. 메네트리에병이었고.”
“세계 최고의 써전과 난치병 수술이라. 다들 어깨에 힘 들어갈 만하네. 미국에서 참 많이 느끼고 돌아온 모양이야.”
“이미 커 있었어. 스스로 자각을 못했던 거지.”
“웬일이야? 그렇게 후한 평가를 해 주시고?”
정민수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태수가 옅게 미소 지었다.
“너도 알고 있었잖아.”
“그거야 뭐. 그나저나 쟤들 어깨에 힘 제대로 들어갔는데. 같이 갈 팀원들한테 부탁이 아니라 오더를 하네.”
“지금은 즐기라고 해.”
“뭐냐, 그 등골 서늘한 발언은?”
“온실의 화초를 야생화로 바꿀까 해.”
태수는 모호하게 말했지만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정민수는 바로 알아들었다.
동시에 눈빛을 반짝인 정민수가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거 재밌겠네. 그런데 언제?”
“곧 때가 오겠지.”
“그래. 그럴 때가 되긴 했지.”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였다.
안성훈과 김명철이 각기 같이 이동할 팀원들과 상황실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문 앞에 잠시 멈춰 선 그들은 태수와 정민수를 향해 고개 숙였다.
슥슥.
손을 흔들어 응대한 태수와 정민수의 얼굴엔 비슷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잠시 후.
야간 조와 오프 조까지 떠난 후 상황실은 한결 한가로워졌다.
그런 반면 태수는 책상에 앉아 두툼한 서류들과 씨름 중이었다.
자리를 비웠던 시간 동안 쌓인 서류를 모두 파악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툭.
또 하나의 두툼한 서류를 모두 둘러본 태수가 다음 서류 뭉치를 앞으로 끌어왔다.
“이건 또 뭐냐? 그러니까…….”
태수가 제목을 소리 내 중얼거리려 할 때였다.
텅!
묵직한 서류 뭉치가 놓이자 태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또?”
“뭐가 또야? 왜 또야? 뭔 일만 있으면 또야?”
“선배.”
태수가 올려다보며 처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박성민은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부재였던 그 몇 개월 동안 우리의 땀과 피, 그리고 눈물이 얼룩진 서류들이다. 한 장도 빼놓지 말고 확인해.”
“그럴 건데…… 좀 많긴 하네요.”
“그러니까 일찍 들어왔어야지. 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단 소리는 나중에 다 끝나고 하도록 하고. 수고.”
툭.
박성민이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고 떠나갔다.
태수는 쌓이다 못해 넘쳐나는 서류 뭉치들을 본 순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어쩌랴.
이번에 미루면 얼마나 불어날지 모른다.
다시 의기를 다지며 서류를 보려 했지만 글씨가 눈에 들어온 순간 몸이 찌뿌듯했다.
“차라리 출동이 편하지.”
투덜거려도 도와줄 이는 없었다.
모든 건 태수의 몫이었다.
서류 뭉치를 바라보던 태수가 순간 몸에 힘을 딱 줬다.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결과가 달라지는 법이다.
그걸 몸소 실천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상황을 보던 직원이 거칠게 헤드셋을 벗으며 소리쳤다.
“응급입니다! 경기도 화성, 환자는 2명! 구조대원이 도착한 상태고, 공사 현장에서 크레인이 넘어졌답니다!”
그 소리에 할 일을 하던 모두가 멈췄다.
태수 또한 바로 소리쳐 물었다.
“구조대원이 현장에? 그럼 환자 상태는요?”
“뼈가 상당히 많이 골절됐고, 복부에 관통상도 입었답니다.”
“헬기 2대 모두 준비시키고, 출동 인원은…….”
태수가 호명하기 전 박성민이 나섰다.
“마취통증에 여성현, 정형하고 신경에 고진웅, 소지훈, 흉부 도성민, 외과 빵 아저씨. 출동!”
박성민의 말이 끝난 순간 지명당한 모두가 다급히 움직였다.
“출동 가방부터 챙겨!”
“간호사는 누가 갈 겁니까!”
“선정이, 수영이……. 이름 불린 사람 빨리 움직여!”
“젠장. 저 인간은 맨날 빵 타령이야. 먼저 갑니다!”
“저희도 가요!”
타다닥!
출동 인원들이 정신없이 상황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상황을 전달받은 후 1분 남짓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출동 인원이 정해지고 출동 가방을 챙겨 나갔다.
엄청난 속도였다.
전보다 더 빨라진 느낌이었다.
그건 좋은 일이지만 태수는 박성민을 바라봤다.
“선배, 제가…….”
“네가 네 입으로 팀원들 믿는다며.”
“…….”
“너 없는 사이에 논 사람 아무도 없어. 상황 파악 끝날 때까지는 몸이 근질거려도 참아.”
박성민은 말을 마치고 살피던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태수의 반발은 듣지 않겠단 의미였다. 또 반발하지 못하게 브레드 김을 함께 출동시킨 거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박성민의 의견이 옳았다.
팀원들을 믿는다면 혼자 모든 걸 하려고 해선 안 된다.
태수는 순간 달아오른 마음을 진정시켰다.
또 냉정해지려고 노력했다.
또다시 뒤로 밀려나지 않으려면 빨리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짓고 출동 대기를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시간이 후다닥 흘러 태수가 출근한 지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 태수는 서류에서 벗어났다.
몇 번의 출동이 있었지만 박성민의 제지로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서류에서 해방된 태수는 언제든지 연락이 오면 뛰어갈 준비가 됐다.
정신적으로만 준비된 게 아니었다.
육체도 모든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박성민이 제지한 이유가 건강 탓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단 걸 송현미 간호사가 슬쩍 알려 줬다.
“박 팀장님이 계속 걱정하고 있어요.”
“진짜 괜찮아졌습니다.”
“박 팀장님 입장에서 그 말이 믿기겠어요? 반대로 박 팀장님이 그런 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팀장님은 바로 출동하라고 하겠어요?”
“…….”
“거봐요.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섭섭하게만 생각하지 마요.”
송현미 간호사는 태수를 부드럽게 달랬다.
그녀의 중재는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태수는 섣부르게 자기 생각을 어필하지 않았다.
한 번, 또 한 번.
그렇게 몇 번을 곱씹은 후 박성민에게 다가갔다.
“선배.”
“왜?”
“저 진짜 다 나았습니다.”
“…….”
박성민이 가만히 바라보자 태수가 옷깃에 달린 배지를 매만지며 말했다.
“걱정 끼치는 일 없게 하겠습니다.”
“……흉부외과장님께 인사는 드렸냐?”
“네. 덕분에 원내 모든 분들에게 인사드렸습니다.”
“비꼬는 거야?”
그의 물음에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충분히 쉬었다고요.”
“이제 멀쩡하다고?”
“완전히요. 이거 보세요.”
불끈.
태수가 팔뚝을 뻗고 힘을 빡 줬다.
굵은 핏줄이 툭툭 튀어나와 건강함을 뽐냈다.
그걸 바라보던 박성민이 고개를 들어 태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지그시 바라본 후 박성민이 묵직하게 말했다.
“그럼 이제 근신 풀어 줄게.”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치면 그땐 근신 기간 2배로 늘린다.”
“절대 안 다치겠습니다.”
태수의 장담에 박성민이 삐딱하게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