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39
00240 240화
그러자 신창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이렇게 같이 들어왔다는 건 오해가 풀렸다는 이야기 같은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리고 과장님께도 의견을 구하고자 이렇게 같이 찾아 왔습니다.”
“상당히 궁금해지는데.”
하석준 과장은 여전히 묘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한편 태수는 신창용의 화법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단 걸 외과에서 모르는 의사가 없었다. 심지어는 간호사들도 알고 있다.
그걸 오해라고 정의해 버리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먼저 운을 띠우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도와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태수는 기회가 올 때까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을 생각이다.
태수의 생각이 마무리 될 즈음 신창용이 입을 열었다.
“레지던트들에게도 집도의 기회를 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집도의 기회? 좀 자세히 들어볼까?”
“그에 관해서는 치프가 자세히 설명드릴 겁니다.”
신창용이 바통을 자연스럽게 태수에게 넘겼다.
너무도 당연하단 듯한 말투에 태수는 속으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건 하석준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신창용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어간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하석준 과장이 얼떨떨해 하는 사이 태수가 대화를 이어갔다.
“큰 수술을 집도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탈장이나 치루, 아니면 충수염 등. 위험도가 극히 적은 수술부터 집도를 맡기고 싶습니다.”
“음. 수술이야 어렵지 않다지만 환자들이 이해를 할까?”
“환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부분입니다. 환자들이 종합병원에서 수술하기 꺼려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수술비의 부담 때문입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레지던트는 각종 수당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수술비가 대폭 줄어들 겁니다. 반대로 레지던트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경험이 될 거고요.”
“하지만 위험도가 제로는 아니야.”
“그건 저와 정민수 선생이 어시스던트로 투입되면 자연스럽게 해결 될 거 같습니다만.”
태수의 의견에 하석준 과장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치프와 정 선생이?”
“여러모로 계산해 보니 가장 위험도를 낮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 실력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차라리 두 사람이 집도하고 다른 레지던트들에게 어시스던트를 맡기면 어떨까? 그것도 경험이 될 텐데 말이야.”
하석준 과장이 의견을 내자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집도와 어시스던트는 차이가 큽니다.”
“물론 그거야 그렇지.”
“실제로 외국에서는 인턴 과정부터 집도를 시작합니다. 아주 작은 병부터 순차적으로 집도해 전문의가 되었을 때는 최소 200회 이상의 집도 경험을 갖게 되죠.”
“그건 외국 이야기고.”
하석준 과장은 걱정을 내비췄다.
과장의 눈에 레지던트들은 말 그대로 강가에 내놓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수술까지 맡기려니 시원하게 승낙하기는 조금 꺼림칙한 부분들이 있다.
그때 신창용이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국에서도 아예 경우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응급이나 비상사태 때에는 레지던트가 집도하는 경우도 있다는 건 나도 알아. 치프도 간단한 수술은 집도하고 있고.”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만 우리 병원은 그 폭이 좁습니다. 대학병원에서는 예전부터 레지던트 3, 4년차들도 수술하고 있습니다만…….”
“음. 그건 그렇긴 하지.”
“외과의 발전에 탄력을 붙이려면 레지던트들의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창용의 말에 하석준 과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옳은 소리기는 한데, 신 선생이 전부터 레지던트들에게 신경을 썼었나?”
“드러나지 않다고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죠.”
“허 참.”
하석준 과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때 태수가 쐐기를 박았다.
“현재 외과에는 종양 관련 환자가 많이 입원 중입니다. 그리고 전에 비상사태를 겪으면서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오는 환자들도 상당합니다.”
“그렇지.”
“수술 스케줄과 외래까지 진행되어야 하기에 모두 부담이 됩니다. 작은 수술이라도 레지던트들이 집도하게 되면 그 부담도 상당히 줄어들 겁니다.”
태수는 그동안 데이터들을 계속 누적시켰는지 하나하나 수치를 들며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그건 하석준 과장도 알고 있는 부분이다.
석정현 이사장이 전에 약속한대로 전문의들의 이력서가 다수 도착했다.
하지만 아직 면접 날짜도 잡지 못했다.
서류로 선별을 더 해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시간이 나지 않기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태수의 말대로 진행된다면 전문의들이 부담을 덜 느끼기에 좋았다.
고민하던 하석준 과장이 태수에게 말했다.
“오늘 중으로 병원장님께 말씀드리고 결과를 이야기해 주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들 할 일이 있을 테니까 그만 일어나도록 하자고.”
하석준 과장도 외래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더는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었다.
태수와 신창용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하고 방을 나섰다.
탁.
문을 닫는 순간 신창용이 태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어필해 준 거 같은데.”
“감사합니다. 대신 제가 직접 환자분에게 수술 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굿. 그럼 부탁하자고.”
신창용은 환하게 웃어 보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허나 태수는 복잡한 얼굴로 병동으로 향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병원장과의 이야기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한 시간 후.
띠링.
태수의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하석준 과장이 보내온 문자다.
-콜.
단 한 글자뿐이다.
하지만 그 하나의 글자에 태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다음 레슨으로 넘어가 볼까?’
이튿날 의국 회의.
회의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하석준 과장이 스케줄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며 태수에게 물었다.
“낭선종 환자는 어떻게 됐지?”
“제가 어시스던트 들어가는 걸 허락하셔서 예정대로 내일 오후에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별 문제 없는 거네.”
“네. 그리고…….”
태수가 말꼬리를 흐리자 하석준 과장이 물었다.
“말해.”
“오늘 오후에 충수염 수술 한 건을 추가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일정에는 없는데…….”
하석준 과장이 노트를 뒤적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건 하석준 과장뿐이 아니라 전문의들, 그리고 레지던트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레지던트들은 바짝 긴장상태였다.
“누구 말씀하시는 거지?”
“좀 잘 찾아 봐.”
“진짜 없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하는 대화였지만 목소리가 바짝 말라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아무리 앞뒤로 찾아 봐도 충수염 환자 수술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때 하석준 과장이 뭔가 번뜩 떠올랐는지 태수와 눈을 마주쳤다.
태수는 미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감이 맞았다고 생각했는지 하석준 과장이 물었다.
“환자에게 허락은 구했나?”
“정확하게 설명 드리고 동의 받았습니다.”
“그럼 집도는?”
“송민규 선생입니다.”
태수의 말에 정신없이 노트를 뒤적이던 레지던트들이 그대로 멈췄다.
누구?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순간 자신의 귀가 의심스러웠다.
레지던트들의 반응에도 하석준 과장은 태연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시스던트는?”
“제가 들어갈 겁니다.”
그 말에 레지던트들은 또 한 번 놀랐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지금 듣고 있는 이 귀가 정말 정상인지 이비인후과를 찾아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될 정도였다.
이 이야기에 반응이 없는 건 신창용과 정민수뿐이었다.
오재욱은 돌아가는 이야기로 무슨 일인지 직감한 표정이다. 그러나 박수철은 끝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양한 반응과 관계없이 하석준 과장은 송민규에게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배운 대로만 해.”
“네? 아, 네.”
송민규는 여전히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다.
허나 하석준 과장은 더 관심을 두지 않고 태수에게 물었다.
“그 외에 다른 사항은?”
“없습니다.”
“수술계획서 작성해서 올리고, 시간 맞춰서 수술 준비 차질 없이 하고.”
“알겠습니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도 수고하지.”
탁.
노트를 덮은 하석준 과장이 일어나자 전문의들도 차례로 일어났다.
하석준 과장과 전문의들이 나간 후였다.
송민규가 얼른 태수에게 다가와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제가 집도를 한다니요. 진짜 처음 듣는 이야깁니다.”
“처음 하는 이야기니까.”
태수가 너무도 덤덤하게 대답하자 송민규는 오히려 답답해졌다.
“치프.”
“불만이야?”
“…….”
순간 송민규의 입이 다물어졌다.
어떤 레지던트가 집도의 기회가 왔는데 불만을 이야기할까.
턱도 없는 소리였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태수에게 따지고 들었을 뿐이다.
태수는 설명이 조금 부족한 걸 알기에 레지던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갑자기 결정된 사항이지만 다음부턴 사전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네.”
“그리고 집도에 너무 욕심내지 마라. 판단은 너희들 몫이 아니라 내 몫이니까.”
“알겠습니다.”
레지던트들의 목소리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그때 슬쩍 홍진만이 손을 들었다.
태수가 그걸 보고는 물었다.
“왜?”
“집도의 선정 기준이 어떻게 됩니까?”
“욕심내지 말라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솔직히 욕심 안 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치프야 질리도록 수술하셨다고 해도 저희는 아닙니다.”
홍진만의 따지는 듯한 말투에 주변에 있던 레지던트들이 얼른 만류했다.
특히나 김명철이 바로 어깨를 잡아챘다.
“야, 넌 무슨 이야기를.”
“너 수술해 봤어?”
“…….”
김명철이 순간 입을 다물자 홍진만이 재차 물었다.
“욕심 안 나?”
“…….”
“자식이 말이 많아.”
대화는 홍진만의 우세로 끝이 났다.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던 태수가 말했다.
“다들 욕심이 없다는 게 이상하긴 하겠지.”
“그러니까 집도의 선정 기준을 알려주십시오.”
“하는 거 봐서.”
태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홍진만이 얼른 노트를 챙겨들며 소리쳤다.
“전 바로 외래 가겠습니다.”
타다닥!
홍진만이 부리나케 움직이자 다른 레지던트들도 급해졌다.
“전 병동 갑니다!”
“검사가 있어서요. 이따가 뵙겠습니다.”
그 외에도 모두 스스로 할 일을 외치며 부리나케 의국을 나섰다.
꿈쩍 않고 남아있던 정민수가 슬쩍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레지던트 집도?”
“활기 돌잖아.”
“뭐? 하하. 나 참. 네가 대단한 거냐, 아니면 과장님이 대단한 거냐.”
“아무렴 어때.”
태수의 말에 정민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상관없네. 아이고, 그럼 저도 집도 기회를 얻으러 출발하겠습니다.”
“넌 그래도 어시스던트야.”
“그럼 대충 해야겠습니다. 갑니다.”
정민수가 너스레를 떨며 나가자 태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민수라고 외국에서 태수 어시스던트만 한 건 아니었다.
반대로 정민수가 집도하고 태수가 어시스던트한 경우도 많았다.
체력적인 문제가 있을 때마다 교대로 집도를 했었다.
그렇기에 정민수는 구태여 집도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았다.
***
드디어 송민규의 첫 집도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어시스던트인 태수가 수술실에 먼저 도착했다.
수술 도구들의 준비 사항을 체크하고 부족한 부분을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다.
충수염은 흔히들 ‘맹장’이라 불린다.
맹장에 붙어 있는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매년 약 10만 명 정도가 이 수술을 받는다.
합병증은 감염이 대부분이다.
조직괴사나 천공이 있는 경우 3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높은 확률로 합병증이 유발된다.
하지만 태수가 그런 환자를 송민규에게 맡길 리는 없었다.
단순 충수염 수술은 1퍼센트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합병증이 극히 적었다.
수술 시간도 20분 내외였고 회복도 빠른 수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