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21
1521화 생사간과 같은 곳
만약 부도마교가 진양의 명을 받고 투항하는 척 십방계로 넘어온 거라면 앞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모든 책임은 사주의 몫이었다.
한참을 고민해 보았으나 사주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건 본인이 쉽게 결정을 내릴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궁성으로 가서 이 사실을 대제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십방 대제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명령을 내렸다.
“부도마교를 선봉으로 보내도록.”
십방 대제는 그들이 정말로 그들에게 투항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러는 척을 한 것인지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매우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판단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진짜로 투항을 한 것이라면 특별히 공을 세울 기회를 하사한 것이고, 반대로 투항하는 척만 한 것이라면 전부 죽도록 만들어 진양을 난처하게 만들면 된다.
부도마교 놈들이 무엇을 기대하며 이곳에 온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놈들은 스스로를 심각할 정도로 과대평가한 것만은 확실하다.
십방 대제는 애초에 부도마교 따위에는 관심조차 줄 생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로 인해 어떤 영향이 벌어질지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십방 대제로부터 직접적인 명을 하달받으며 사주는 비로소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부도마교는 처음으로 대황을 배반한 대형 세력이다.
상징적인 의미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십방 대제의 뜻 없이 사주 스스로 그들의 운명을 정할 수는 없는 법.
사주는 넘어도 되는 선과 넘지 말아야 될 선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전을 빠져나와 궁성 밖으로 향하던 사주는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문득 조윤의 말이 떠올랐다.
진양은 그에게 어떻게든 십방 신조와 부도마교의 사이를 이간질하여 부도마교를 죽이라고 했었다.
이 말을 곱씹어보니 사주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또다시 진양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게 된 듯했다.
진양은 직접 나타나지도 않았고, 직접 손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말 몇 마디만으로 부도마교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생각해 보면 진양은 처음부터 조윤이 자신을 팔아넘길 것을 대비하고 있었던 듯했다.
조윤이 무슨 짓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그를 팔아넘긴다고 해도 말이다.
그는 그저 말 몇 마디만 전해주면 끝이었다.
물론 극히 희박한 확률로 그가 정말로 진양이 심은 첩자일 수도 있지만, 겨우 일개 문파 하나 때문에 십방 대제가 불필요한 모험을 감수할 리는 없다.
배신자들에 대한 신뢰를 깨버리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사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궁성을 빠져나갔다.
속으로는 부도마교 사람들에게 상당한 유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었다.
굳이 부도마교의 보증인으로 나서며 불필요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부도마교가 멸문당하게 된다면 크게 염두에 둘 필요도 없는 작은 흠집만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진양이 보낸 첩자들이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굳이 길게 고민해 볼 필요도 없었다.
십방 대제의 허락을 받은 사주는 계율사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부도마교는 이제 막 십방계 호량으로 넘어왔다.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 본격적으로 십방계 안쪽으로 들어가기는커녕 호량을 벗어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십방 대제의 명령이 떨어졌다.
부도마교를 선봉에 세우라는 명령이었다.
선봉은 말 그대로 전선 가장 앞에 서서 길을 뚫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선봉 부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전선을 향해 돌진하는 건 아니다.
대략적인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할 건지는 이제 사주에게 달려있었다.
그래서 사주는 부도마교 사람들에게 호량에 거점의 뿌리를 내리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선봉부대로 보낼 고수도 내놓도록 했다.
* * *
부도마교 거점.
무사히 대황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배신자들의 얼굴에선 안도하는 기색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모든 이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
부도마교 의사대청 내부에는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배신 계획은 애초에 모든 사람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때문에 이제 와서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힘겹게 대황을 벗어나 십방계까지 오는 건 성공했다.
그러나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대우를 받게 될 줄은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퇴로는 이미 막혀버렸다.
십방 대제가 나가 죽으라고 한다면 순순히 목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사주 역시 이들을 두고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잘못을 범할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애매하게 처리한다면 오히려 언젠가 부도마교는 비수가 되어 자신을 향해 날아올 게 뻔했다.
그래서 이왕 결정을 내리기로 한 김에 확실하게 하기로 했다.
놈들이 대황을 배신한 이유는 십방 신조에 목숨을 바치고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그만이었다.
* * *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단 한순간도 평안하지 못했다.
정세는 누가 봐도 대영 신조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십방 신조에 당하면서도 제대로 된 반격은커녕 오히려 연달아 패배만 이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니 슬슬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도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십방 신조를 상대로 싸움을 건 것은 천여 년간 이어지던 승리로 인해 진양과 대제가 자아 도취한 결과라는 비판까지도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목에 핏줄을 세우며 비판하던 자들은 일제히 합죽이가 되었다.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부도마교의 제자를 누군가 발견한 것이다.
부도마교와 피맺힌 은원을 진 유명성종에겐 울분을 토할 절호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잔뜩 흥분한 유명성종 제자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눈에 보이는 부도마교의 제자를 닥치는 대로 베었고, 심지어 두 사람을 산 채로 붙잡아오기까지 했다.
굳이 심문할 필요도 없었다.
잡혀 온 두 사람의 얼굴엔 후회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이들은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고 있는 사실을 전부 털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부도마교의 지도층에 대해 다소 저급한 표현까지 섞어가며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지도층은 배신을 하고 십방계로 가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취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정작 아랫사람들은 이전보다도 못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이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배신했던 사람들의 손에 붙잡힌 이상 목숨을 건지기 위해 무슨 말인들 못 하겠는가?
어쨌든 부도마교의 말로를 직접 목격한 두 번째 층의 대형 세력들은 더 이상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찍소리는커녕 부정한 생각조차도 감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 외에 중소형 세력들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힘 있는 부도마교조차도 저런 꼴을 당했는데, 부도마교만도 못한 자신들이 배반을 했다면 과연 어떤 꼴을 당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대황이 안정적으로 발전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대영 신조에서 적지 않은 힘을 써준 덕분이다.
이러한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진양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잠시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진양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되돌릴 능력은 없다.
하지만 배신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주는 건 가능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도 불손한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땐 진양도 달리 방법이 없다.
어쨌든 부도마교 사람들이 전선에 합세하며 전투는 한층 더 치열해졌다.
적보다 더 가증스러운 건 역겨운 배신자이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사기가 올라가는 듯했으나 일시적인 현상인 만큼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진양은 더 이상은 간섭하지 않았다.
가희에게는 항상 조심하고 신중하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자리를 떠났다.
* * *
진양은 매일 낮이 되면 조윤이 되어 십방계를 살폈다.
미리 심어두었던 씨앗이 조금씩 싹을 틔우며 어느덧 그럴싸한 정보망이 구축되었다.
어느덧 시작된 정보 수집 활동 덕분에 부족한 부분도 조금씩 채워져 나가고 있었다.
이 중 중점적으로 수집하는 건 세간에 떠도는 수많은 전설들이다.
가볍게 넘겨들어도 무방할 것 같은 전설 중에도 예기치 못한 곳에 사라진 진상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심지어 무심코 넘길 이름 하나만으로도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대황의 괴산이 그랬었다.
모든 사람들이 괴산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지만, 괴산의 ‘괴’가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었다.
이어서 밤이 되면 진양은 다시 본존으로 돌아왔다.
환생부로 업무를 보러 갈 때도 있었고, 가끔 대황으로 돌아가 전황을 살펴볼 때도 있었고, 시간을 내서 십방계에 새로운 신분을 발전시키는 작업을 할 때도 있었다.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쁜 모습이었다.
한편 복제 십방계와 십방계의 융합 진도는 안정적으로 발전을 이어나가며 어느새 삼 할에 도달했다.
속도는 갈수록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복제가 이루어질수록 부족한 부분들이 채워져 나갔고, 그만큼 융합되는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진양이 한참 복제 대황을 살펴보고 있을 때.
몽사가 다가왔다.
그녀는 진양과 함께 텅 빈 꿈 세계에 서서 발아래로 펼쳐진 십방계를 살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몽사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건 그녀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대세에 따라 맡긴 것뿐입니다. 전 이런 일을 벌일 만한 능력이 없거든요.”
거짓말은 아니다.
진양은 그저 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을 뿐.
진짜로 힘을 낸 것은 망자의 세계뿐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뭔데요?”
“융합이 끝나고 나면 십방계와 복제된 십방계는 사실상 다른 게 없어지는 거잖아요. 결국 현실이나 허상이나 똑같을 테니까요.”
진양은 한층 진지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십방계는 산 자의 세계와 망자의 세계의 경계이면서도 동시에 두 세계에 속하는 곳이 되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두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나타날 수 있는 거겠네요.”
몽사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되었다.
“그건…….”
“제 말이 맞는 거죠? 예전처럼 대황 사람들이 십방계로 갈 수 있듯,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도 가능한 거고요.
망자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도 십방계로 올 수 있게 되는 거죠. 하지만 망자의 세계를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에 오직 십방계에만 올 수 있는 거고요.”
십방계는 생사간으로 변하진 않겠지만, 생사간과 같은 곳이었다.
혹여나 망자들이 틈을 노려서 다시 생기를 불태우고 도망쳐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건 두렵지 않다.
융합이 끝나고 나면 이곳은 ‘중립 구역’이 되고, 양쪽 구역의 사람들은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본인의 소속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강한 구역에서 몰래 다른 곳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거였군요…….”
몽사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