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17)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217화
54장 오만의 대공(4)
마역의 심층부인 심연.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존재하는 흑색의 궁전 앞에서 낮은 목소리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대공 중 하나인 그가 이토록 극진한 예를 표하고 있는 이유는 존재했다.
저 궁 안에 있는 존재가 바로 자신의 왕이었으니까.
오래전부터 ‘준비’를 위해 저 심연의 궁 안으로 들어가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들의 왕.
낮은 목소리가 오늘 그러한 왕을 찾은 까닭은 질투의 대공 젤리스와 용사에 관한 일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왕이시여.”
그의 연이은 부름에도 궁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일까.
이렇게 응하지 않는 부름을 흘려내는 것이.
낮은 목소리는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자신들의 왕은 이 세상을 멸망시키고 마로 물들이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닐까?
사실 왕은 이미 진작부터 자신들을 버린 게 아닐까?
물론 그게 밑도 끝도 없는 비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을 때마다 불안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곧이어 그렇게 마지막 말을 끝낸 낮은 목소리가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어떠한 반응도 없었던 궁전 안에서,
-드디어 나타났나.
묘한 기대가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짓을?”
손을 뻗은 상태로 잠시 멈춰 있던 오그리트의 눈동자가 의문으로 물들었다.
분명 잠깐 시간이 멈췄으니까.
“……방금 뭘 한 거지?”
그 의문을 담은 물음을 내뱉으며 오만은 어느새 일어서 있는 시온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이상하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염화의 갑옷도.
타고 있던 정령마도.
오른손에 잡힌 채 빛을 내던 신검도.
전부 사라진 채 맨몸으로 서 있는 모습.
그 모습은 마치 전투를 포기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오그리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힘을 개방한 건 이쪽인데 자신이 불안감을 느낀단 말인가.
무척이나 기이한 상황.
하지만 오그리트는 그러한 불안감을 털어 버렸다.
이 세상에서 왕을 제외한다면 자신을 이길 존재는 없었으니까.
쿠드드드득!
곧이어 시온의 심장을 가리킨 오만의 손가락 끝으로 그가 지닌 막대한 혼력(魂力)이 마기로 치환되며 응집되기 시작한다,
“단숨에 끝을 내…….”
그와 함께 오그리트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오려는 찰나였다.
퍼억!
아무런 전조도.
어떠한 힘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오만의 대공이 들어 올린 팔 전체가 사라졌다.
그로 인해 응집점을 잃고 흩어지는 마기.
“……어?”
그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오그리트의 입에서 멍청한 의문성이 흘러나오는 순간, 쩌저저저저저저적!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그의 시야가 뒤틀렸다.
아직 남아 있던 바위산 하나를 통째로 박살 내며 안쪽으로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는 오만의 신형.
“이 무슨!!”
거의 바위산의 중심지까지 파고 들어가고 나서야 겨우 현재 상황을 파악한 오만이 자신의 머리를 잡은 시온의 손을 떨쳐내기 위해 주변의 공간 전체를 일그러뜨렸다.
그걸로는 모자란다고 여겼는지 그를 중심으로 나타나 시온을 향해 창을 꽂아 넣는 수만에 달하는 환영 기사들.
그때 시온이 오만의 머리를 붙잡은 반대쪽 손을 위를 향해 슬쩍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투화하학!
시온을 향해 쏘아지던 창들과 그것을 휘두르던 환영 기사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그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커지는 오그리트의 눈동자와, 콰드드드드드득!
여전히 그런 그의 머리통을 움켜잡고 있던 시온의 손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연쇄적인 흑성의 파동.
그로 인해 오만의 신형이 바닥을 뚫고 그 밑으로 한없이 처박히기 시작한다.
“끄으…… 으아아아아!”
결국 지니고 있던 혼 중 일부를 영구적으로 희생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빠져나온 오그리트가 미친 듯이 시온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 잠깐의 격돌로 인해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그의 몸.
평소에 자신의 몸에 먼지 한 톨 쌓이는 것조차 혐오하는 오만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숨에 짓이겨주마!”
그그그그그긋!
곧이어 얼굴을 일그러뜨린 오그리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선언과 함께 주변의 세계가 모조리 이지러지며 그 안에서 수십만에 달하는 환영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허공을 밟으며 이어지는 돌격.
그것은 마치 신화 속의 천군(天軍)이 지상을 벌하기 위해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아……!”
인세에서는 볼 수 없는 재앙의 물결이 시야 전체를 가득 채우며 떨어져 내리는 광경에 바라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절망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정작 그 목표가 된 시온의 눈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힘을 되찾음으로 인하여 완벽하게 개안된 명안(冥眼).
그러한 명안이 다가오는 환영 군단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인 후 자신에게 유리한 최적의 상황을 뽑아내고 있었으니까.
‘완전히 힘이 돌아오진 않은 것 같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 생각과 함께 가볍게 앞으로 내밀어지는 시온의 손.
흐름.
운명, 대기, 생명 등 세상의 모든 것에는 ‘흐름’이 것이 존재하며 그러한 흐름이 멈춘다면 그 주체 또한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만약 그러한 흐름이 멈추는 것을 넘어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스륵-
마치 무언가를 강제로 끊어내듯.
내밀어진 시온의 손이 천천히 위에서 밑으로 내리그어지기 시작한다.
흐름 부정.
흑성하가 8성에 도달하게 됨으로써 사용할 수 있게 된 개념 부정과 더불어 시온이 가진 최상격의 부정 중 하나.
마침내 그러한 시온의 손이 완전히 밑으로 내리그어지는 순간이었다.
투둑.
폭발은 없었다.
빛도, 소리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정적뿐.
하지만 그 결과는 상상마저 아득히 초월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온을 향해 달려들던 수십만의 환영 군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
“어, 어떻게……!”
반신에 이른 자신의 온전한 권능이 손짓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오그리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릴 때였다.
무언가를 잡아당기듯 앞의 허공을 움켜쥔 시온이 그대로 그 손을 뒤쪽으로 당겼다.
후욱!
그 순간 뒤바뀌는 오만의 시야와 함께 그의 바로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시온.
시온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둘 사이의 거리를 전부 부정한 시온이 오그리트와 주변의 공간 자체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긴 것.
투콰아아아아앙!
그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대공에게 황제의 일격이 작렬했다.
“저…… 존재가 정말로 시온이라고?”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두 초월자의 전투를 바라보던 2황녀 이벨린의 입에서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솔직히 알고는 있었다.
어쩌면 시온이 자신과 비등하거나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저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필멸의 한계를 넘어 신화 속의 불멸자를 보는 듯한 느낌.
“어떻게 된 것이냐…… 시온.”
그에 당혹과 경악으로 범벅된 얼굴로 이벨린이 그렇게 중얼거릴 때,
“……천멸자.”
근처에 있던 클레어의 눈동자는 그런 2황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시온 황자가…… 천멸자였어.”
틀림없었다.
세상에 저러한 힘을 가진 존재가 또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까.
머릿속에서 맞춰지는 퍼즐과 함께 끊임없이 차오르는 전율!
과거 빛의 도시 레제로에서 봤던 신화적인 광경이 지금 이곳에서 다시 한번 재현되고 있었다.
이미 엄청난 성장을 이뤄 과거의 힘을 되찾아 가는 클레어 자신으로서도 그 움직임조차 제대로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격을 지닌 전투.
곧이어 그렇게 멍하니 전투를 바라보고 있던 클레어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분명 아까 전 시온 황자는 크로노스의 다섯 물음을 사용했어.’
회귀 전에 자신이 사용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조금 전 시온 황자의 팔찌에서 부서져 내린 보석.
그 보석은 분명 크로노스의 물음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지금 저 힘 또한 크로노스의 물음을 통해 얻었다는 건데…….’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크로노스의 다섯 물음’은 분명 굉장한 힘을 지닌 신기였고 클레어 또한 회귀 전에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로노스의 다섯 물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힘을 만들어주는 신기는 절대로 아니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전성기를 빌려오는 것.
그것이 저 신기의 능력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원래부터 저 힘을 지니고 있었거나 적어도 저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를 한 번이라도 직접 보았다는 건데…….’
둘 다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될 수가 없었다.
둘 다 일말의 가능성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
‘대체 시온 당신은…….’
그에 시온을 바라보는 용사의 눈이 하염없이 흔들릴 때,
‘어떻게, 어떻게……!’
시온을 상대하고 있는 오그리트의 눈동자 또한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아아아앙!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초월적인 일격들과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그것들을 모조리 허용하는 자신.
‘분명 똑같은 격을 지니고 있는데!’
전투를 치르며 오그리트는 눈앞의 시온 황자가 자신과 같은 반신격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저런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문이었다.
똑같은 반신격끼리 이토록 압도적인 차이가 날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윤회의 굴레와 운명을 초월하여 그 이상의 격을 획득한 존재들의 전투는 일반적인 전투와는 달리 그 자신을 상징하는 특질과 개념 간의 격돌로 그 우위를 가르게 된다.
오그리트 자신이 지닌 특질은 오만과 집단.
그런데 그러한 특질에 의해 발현된 자신의 권능이 시온 아그네스의 손짓 한 번에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나가고 있었다.
‘저 정도의 권능이라면 이미…….’
신격(神格).
신격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한 것은 저 시온 아그네스가 다루는 불길한 어둠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는 것이었다.
분명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오그리트는 더 이상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슬슬 혼까지 소모하며 이루어지던 자신의 재생이 몸이 부서져 나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계속 전투가 진행된다면 자신의 패배는 확정된 상황.
‘그렇게는……!’
절대로 그렇게는 둘 수 없었다.
투화하하하하학!
수십 만에 달하는 영혼을 영구적으로 소모하여 잠시의 틈을 만들어낸 오그리트의 전신에서 투명한 안개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영혼이었다.
아니, 영혼들이었다.
수천, 수만, 수십만…….
과거 왕이었던 그에게 목숨을 바친 백성들의 혼.
드드드드드!
마침내 오만의 안에 있던 혼 중 절반이 밖으로 빠져나오며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한한 환영의 군세를 이루기 시작한다.
시야를 넘어 지평선까지 뻗어가는 환영의 바다.
그 압도라는 말조차 모자라는 장면에 바라보던 사람들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지고.
그 광경과 자신의 군세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던 오그리트가 시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아그네스의 후예여. 과연 네가 이만한 군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무리 반신이라고 하더라도 천만이나 되는 혼을 혼자서 전부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태가 오그리트의 전력 태세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느낀 패배감과 절망을 떨쳐내듯 시온을 향해 웃는 오만의 대공.
그런 그의 의지에 반응하여 환영의 군세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때,
“그 말은.”
그러한 군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온이 오그리트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내가 너에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상대의 숫자가 수십만이든, 아니면 그 이상이든.
시온 자신에게 있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전부 베어내면 그만이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과거 황제였던 자신을 섬기던 수천만의 군세가 존재했듯이.
이 시대에도 자신을 섬기는 군세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뭐?”
오그리트의 반문이 신호라도 된 것일까.
쿠구구구구구!
오그리트의 군세 너머에서 새로운 군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국 최강이라 불리는 다섯 개의 군단으로 이루어진 정로오군.
바로 군세의 정체였다.
그리고 그것은 끝이 아니라는 듯,
키아아아아악!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와 함께 반대쪽에서 천살의 마녀가 이끄는 악수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로 경계 군단이 따라붙는다.
그 아 아 아 아 아!
더불어 북쪽에서부터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무수한 괴수들.
바로 호러블이 이끄는 괴수 군단이었다.
곧이어,
“시온 전하.”
시온의 앞으로 완벽하게 집결한 군세들로부터 걸어 나와 고개를 숙이는 경계 군단장 기라드.
“전하의 군세가 이곳에 당도했나이다.”
그런 그의 말과 함께 모든 군세가 자신들의 지배자를 향해 예를 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