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up a black panther and became a duchess RAW novel - chapter 23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에 피가 몰리며 숨쉬기가 어려웠으니까.
고통에 몸부림쳐 보지만 의미 없는 반항이었다.
그때 곁에서 지켜보던 라울의 부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정말 죽이시는 겁니까?”
조금 걱정이 섞인 말투였다.
라울이 삐뚜름하게 고개를 들어 부하를 쳐다봤다.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네가 대신 뒤지겠다면 그렇게 해 주고.”
부하는 대답 없이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라울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동정심은 들었지만 딱 거기까지.
제 목숨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흐…….”
그사이 에밀리나는 살기 위해 가까스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지만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급기야 죽음이 눈앞에 그려지자 에밀리나는 울컥 설움이 북받쳤다.
‘내가 왜.’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저 가여운 아이 한 명 거두었을 뿐인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또다시 허무하게 죽어야 하는 건지.
거지 같은 운명에 회의감이 들었다. 이럴 바에 삶을 연명하는 게 의미 있나 싶을 정도로.
그 순간 수많은 상념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에밀리나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 사이론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래도…….’
키르가 없어서 다행이야.
이렇게 된 이상 부디 그 아이가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때였다.
콰앙!
“누나!”
거친 충격음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녀는 멀어져 가는 의식 속 키르의 모습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뜬금없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키르가 저렇게 컸었나?’
그것이 에밀리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변방의 빈민가 일대. 키르젠과 하인켈은 말없이 빠른 속도로 곳곳을 살피고 있었다.
에밀리나를 추적해 이곳에 온 것까진 좋았지만 상대가 흔적을 지운 탓에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어 가자 키르젠은 초조함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하인켈이 결국 혀를 차며 말했다.
“쯧, 한심하군요.”
“……시비 걸지 마.”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뿐입니다만.”
키르젠은 대꾸하지 않았다.
하인켈 역시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기에 조용히 뒤따랐다.
그러길 잠시. 하인켈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는.”
키르젠이 흘끔 시선을 던지자 하인켈이 말을 이었다.
“아랫사람한테 무릎 꿇는 짓 따윈 하지 마십시오.”
“…….”
“주인은 부탁이 아닌 명령을 하는 겁니다.”
할 말은 그게 끝이라는 듯 하인켈이 앞장서 걸었다.
키르젠은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 여상히 물었다.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거지?”
“변덕이라 해 두죠.”
키르젠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수색에 집중하는데 하인켈이 짜증스럽게 말을 뱉었다.
“그딴 멍청한 표정 짓지 말고 똑바로 집중하시죠. 코는 장식입니까?”
키르젠의 미간이 구겨졌다.
자신이라고 애가 타지 않을까. 속을 뒤집는 하인켈의 언사에 열이 받았다.
키르젠이 뭐라 한마디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하인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조급해하니 못 찾는 겁니다. 각성했으면 제대로 능력을 활용하란 말입니다.”
그리고 턱짓으로 오른쪽 골목을 가리켰다.
일순 저곳 어딘가에서 살기를 느낀 탓이다.
키르젠 역시 찰나이지만 느꼈다. 하여 제 사감은 잠시 넣어 두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간 추적에 집중하고 있었을까.
다시 한번 지독한 살의가 밀려왔다.
키르젠은 바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뛰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에밀리나의 신변이 위험했으므로.
그런 느낌이 들어 서둘렀다.
하인켈도 같은 생각인지 빠르게 움직이며 주위를 훑었다.
그렇게 골목의 끝. 멀지 않은 곳에서 세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키르젠은 주변을 살필 여력도 없이 그대로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콰앙!
“누나!”
문이 나가떨어지며 거센 소음이 일었다.
키르젠은 빠르게 집 안을 훑으며 에밀리나를 찾았다.
그리고 딱 정면에서 에밀리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보았던 한 남자의 손에 목이 붙들린 채였다.
그 순간 키르젠은 얼어붙고 말았다.
에밀리나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으므로.
“안 돼!”
키르젠은 무언가 잘못됨을 느끼며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에밀리나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졌으니까.
키르젠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감당하기 힘든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거대한 분화구가 치솟듯 가슴속으로 새카만 어둠이 밀려들었다.
아무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본능에 몸을 맡기고 싶어졌다.
그렇게 키르젠이 어둠에 사로잡히려는 순간.
누군가 휘파람을 불며 키르젠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한발 늦게 도착한 하인켈이었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키르젠의 정신을 일깨웠다.
“아직 죽은 거 아니니까 머리 좀 식히시죠. 과거를 반복할 셈입니까?”
장난스러운 행동과는 다르게 눈빛은 더없이 서늘했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뒤집혔던 키르젠은 이성을 되찾았다.
하인켈의 말을 이해했으므로.
후우. 키르젠은 분기를 갈무리하며 차분히 숨을 골랐다.
주체할 수 없는 힘과 차오르는 분노가 내면에서 쉼 없이 부딪치고 있었다.
그때 에밀리나의 기절을 확인한 라울이 여상히 입을 열었다.
“흐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거기다 초대하지도 않은 손님이라니.”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라울이 나른하게 중얼거리며 쭈그린 다리를 곧게 폈다.
삐딱한 자세로 몸을 트니 반가운 얼굴이 라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불어 낯선 불청객까지.
라울이 세상 친근한 말투로 손을 흔들었다.
“여어─ 잘 지냈어? 오랜만에 보니 혈색이 아주 좋아졌네. 뱃가죽에 난 구멍은 잘 메꿨나 봐?”
“닥쳐!”
“하하핫! 그렇게 열 낼 필요 있나? 사실을 말한 거뿐인데.”
키르젠이 빠득 이를 갈며 라울을 노려봤다.
겨우 가라앉힌 분노가 슬금슬금 피어오르려 했다.
라울은 그런 키르젠을 살피며 변화가 있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개의친 않았다.
‘처리하기 쉽진 않겠지만.’
각성으로 자가수복이 빠르다 한들 아직은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현재로선 자신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때 하인켈이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우리도 구면 아닌가? 어때, 나 정도면 그쪽 상대로 부족함이 없을 거 같은데.”
사실이었다.
라울은 하인켈이 범상치 않은 실력자임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공작저를 방문할 때마다 간간이 느꼈던 기운.
그 기운의 주인이 눈앞의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배후였다.
하지만 그뿐이라 라울은 장난스럽게 말을 받았다.
“내 부하를 예쁘게 손봐 준 자가 그쪽이었군?”
“반항이 귀엽긴 했지. 겨우 30초가 전부였지만.”
하인켈의 심드렁한 대꾸에 라울이 드물게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30초, 라.’
라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발언이었다.
죠지는 자신이 직접 키운 부하 중 하나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