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68
‘봉천랑족은 계외에서도 손에 꼽히는 부족이다. 이한제, 계외에서 어마어마한 위세를 떨치고 다닌 모양이군!’
평생을 통틀어 누군가에게 감탄해본 적이 거의 없던 노부자였지만 이 순간 그는 한제에게 깊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도우, 계외에 갔었던 건가?”
노부자가 한층 밝아진 얼굴로 물었다.
한제는 노부자의 그런 변화를 당연히 알아차렸다. 사실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었으니 상대가 먼저 예의를 차린 이상 한제도 겸손하게 대응했다.
“그랬지. 막 계외에서 돌아오는 길이네.”
“얼마 전 운해성역의 요종과 신종이 동시에 명령을 내려 계외 태고 성신이 계내를 다시 침입하려 한다는 당시 봉계 지존의 유지가 4대 성역 전역으로 퍼져 나갔네. 계내에서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은 연합하여 4대 성역의 장벽을 열고 각 성역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했지.”
마침 계내의 상황이 궁금하기도 했던 한제는 잠자코 들었다.
“또한 4대 성역은 연합해 계외에 대항할 걸세. 난 계외 녀석들을 뼛속 깊이 증오한다네. 계외 녀석들이 처음 계내에 침입했을 때, 뇌의 선계의 선군에 불과했던 난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까. 도우는 이제 막 계외에서 돌아왔으니 그곳에 대해 잘 알고 있겠군. 그 정보를 통해 우리는 지난 수만 년간 계외에 있었던 각종 변화에 대해 파악할 수 있겠지!”
봉계의 진은 계내 수련자들을 혼란스럽고 무지하게 만들었다. 그들로서는 태고 성신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저 몇몇의 부족에 대해서만 겨우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은 전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계외에서 막 돌아왔다는 한제의 말에 노부자는 귀가 번쩍 뜨인 것이다.
“계외의 상황에 대해 나는 분명 잘 알고 있다네.”
한제가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이 도우, 혹시 해야 할 일이 있는가? 괜찮다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내 당시 선계에서 가져와 지금껏 보관해둔 좋은 술이 있다네. 그만큼 아끼는 술이지만 오늘처럼 좋은 날 자네와 함께 마시고 싶군. 하하하!”
노부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한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한제는 손에 쥐고 있던 고요를 거둔 뒤 잠시 고민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 수만 명의 수련자들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염뇌자와 열운자 역시 아직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노부자가 지금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이내 한제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수만 년간 수련을 해온 이들은 모두 꾀가 많고 똑똑하고 현명한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 모두가 악마처럼 교활하고 음흉한 것이 아닌 것처럼 모두 유치하고 쩨쩨하지도 않았다.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사소한 다툼쯤이야 잊고 친분을 쌓는 건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노부자는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금색 빛이 튀어나와 길게 뻗어 나가며 길을 깔아주었다. 그 길 위에서는 듣기 좋은 곡조도 흘러나왔고 사방에서 수많은 선녀들이 허상으로 나타나 춤을 췄으며, 아홉 마리의 금룡이 노닐었다. 또한 여러 선인들의 허상이 사방에서 일제히 한제에게 절을 올렸다.
이 모든 것은 노부자가 한제에 대해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수많은 선인의 허상으로 하여금 절을 하게 함으로써 방금 전 한제의 앞을 막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 셈이다.
“이 도우, 이쪽이네!”
노부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한제와 함께 나란히 회오리를 향해 걸어 나갔다.
곳곳에 허상으로 나타난 선산이 거대한 회오리를 뒤덮더니 중앙에 호수를 만들어냈다.
호수 안에서는 선녀들이 웃으며 물장구를 치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정취가 풍기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 곁에서는 두 명의 선녀가 옥으로 만든 두 개의 술동이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살짝 맡기만 해도 취할 정도로 짙은 선기가 느껴졌다.
염뇌자와 열운자는 공손하게 서서 복잡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내 정신을 차린 염뇌자는 사방으로 밀려났던 수만 명의 수련자들에게 호통을 쳐 다시 진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한제와 노부자는 이내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진과 영동도 옆에 앉은 상태였다.
선녀가 따라준 술로 채워진 잔을 들며 노부자가 미소를 지었다.
“자네와 나도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 아닌가. 방금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 한잔 술로 털어버리세!”
말을 마친 그가 단숨에 잔을 비웠다.
한제 또한 신식으로 술잔을 살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단숨에 들이켰다. 순간 그의 눈에 감탄의 빛이 어렸다. 술이 타고 내려간 목구멍은 타들어가는 듯했고 체내로 흘러든 술이 온몸을 후끈하게 데웠다. 동시에 더없이 감미로운 향이 느껴졌다.
“좋은 술이군!”
한제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렇게 몇 순배 술이 돌았을 때, 노부자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이 도우, 자네가 계외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정말 궁금하다네. 그 이야기를 좀 해줄 수 있겠나?”
한제는 미소를 띤 채 계외에서의 일들 중 몇 가지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노부자의 표정은 몇 차례나 변했다. 특히 섬뇌족, 칠백만천지, 산령상인의 존재 등에 대해 들었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노부자는 술을 들이켜며 신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칠백만천지라⋯⋯. 산령상인이라는 자도 정말 대단하군!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아님에도 하늘에 저항하는 행적을 보이다니!”
사실 영동과 주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섬뇌족의 소멸이 한제와 연관되어 있음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듣자 예상보다 더 놀라웠던 것이다.
위치가 다르면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주진과 영동은 각자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편, 곁에서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뇌자와 열운자는 거의 경악한 모습이었다.
“이한제 선배님, 산령상인이라는 그자와는 후에 다시 만났습니까?”
염뇌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포권을 하며 물었다.
한제는 고개를 저었다. 섬뇌족을 처리한 뒤 쫓기게 되면서 다급하게 떠나느라 다시는 산령상인을 만나지 못했다.
한제는 타락의 땅을 비롯한 몇몇 이야기는 숨겼다. 허나 다른 이야기들만으로도 노부자는 충분히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특히 장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찬 숨을 헉 들이마시기까지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한제의 엄청난 수준이 어떻게 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에 한제를 바라보는 염뇌자와 열운자의 눈에는 감탄과 동경이 어리기 시작했다.
“열운자 난 자네 전가의 시조인 전성야를 만났다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열운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 말에 열운자는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잔뜩 격앙된 표정으로 한제에게 깊이 절을 했다.
“선조께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제발 알려주십시오!”
“전성야는 이미 죽었네.”
한제가 짧게 대꾸했을 때, 열운자는 크게 휘청거렸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선조께서⋯⋯ 돌아가시다니⋯⋯.”
전가의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온 사명과 자부심은 전부 선조 전성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심지어 전가가 현재 나천성역에서 지금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 옛날 전성야가 해낸 업적 때문이다.
전성야는 그들 가문의 영광이었다. 영겁과도 같은 세월 동안 그들은 선조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그런 선조가 이미 죽었다니…
염뇌자의 표정도 무거워졌다. 나천성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오며 이미 나천성역의 일부가 된 그 또한 전가의 선조가 해냈던 일들을 잘 알고 있었다.
노부자도 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일찍이 전성야를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상대는 이미 공열기 후기 절정에 이르렀을 정도의 강자였다.
심지어 노부자는 그때 전성야로부터 은혜를 받기도 했다. 이는 그가 도술을 전수하기 위해 거둔 네 명의 제자에 열운자를 포함시킨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 입었던 은혜에 보답함과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전성야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쿨럭!”
충격적인 소식에 열운자는 피를 왈칵 토해내더니 한제에게 깊이 허리 숙여 절을 했다. 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선조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말씀해주십시오!”
그의 목소리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한기가 어려 있었다. 그는 선조가 평범하게 죽었을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언젠가 선조의 복수를 하려면 원수를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대대손손 복수에 대한 결심을 이어갈 수 있을 터였다.
“자네들도 칠채계라는 곳에 대해 들어봤겠지? 그곳에는 도과라는 것이 있네. 계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령을 흡수하고 수많은 수련자의 도를 거머쥔 수련자는 일곱 개의 도과를 맺지. 전성야의 유해는 운해성역 칠채계 안에 있었네. 그리고 그를 죽인 자는… 계외 태고 성신의 장존일세!”
한제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고 성신의 장존…”
원수의 정체를 안 열운자는 충격을 받은 와중에도 두 눈은 살기로 번득였다. 아니, 오히려 더욱 짙은 전의로 불타올랐다. 전가 대대로 전해진 전의였다.
한편, 염뇌자의 심신은 진동했다. 한제의 이야기를 듣고는 끔찍한 과거의 사건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부자는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제에게 포권을 했다.
“이 도우, 이 일은 아주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야! 칠채계는 계내의 입장에서 기생충처럼 위험한 존재라네. 계외 녀석들이 침입해 들어온 순간 그 칠채계가 우리 계내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재앙을 불러일으킬까 걱정되는군! 우리 계내 수련자들의 도념을 흡수하여 자라나다니! 이 일에 대해 운해성역의 요종에 알려야겠어. 계내의 모든 힘을 동원해 나머지 여섯 개의 칠채계를 제거해야 해!”
노부자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그는 이 사건의 배후에 엄청난 위험이 숨겨져 있음을 간파했다. 빨리 대처하지 않는다면 계외의 침입에 엄청난 재난을 맞게 될 터였다. 특히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갑자기 계내 수련자 대부분이 도념을 잃고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자 노부자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
노부자의 말에 한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이번에 돌아온 것은 지금의 이야기를 비롯해 몇몇 정보를 계내에 전함으로써 전쟁에 더욱 철저히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염 도우, 혹 나머지 칠채계의 소재에 대해 알고 있나?”
한제가 칠채계 이야기를 꺼낸 이후로 표정이 한층 어두워진 염뇌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부자의 시선도 염뇌자에게로 향했다. 그도 염뇌자의 태도가 평소와 달라졌음을 알아챈 상태였다.
칠채계의 숨겨진 위험
염뇌자는 노부자와 한제에게 절을 올린 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일전에 연맹성역에서 수련자 연맹의 추격에 쫓기던 신세였습니다. 나천성역으로 온 것도 그 때문이죠.”
그는 한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쫓기게 된 이유는 워낙 개인적인 일이니 따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당시 수련자 연맹의 장로였던 저는 무의식중에 수련자 연맹 본부에서 기이한 세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선배님, 혹 방금 언급하신 칠채계에서 깨달은 자와 잃어버린 자를 보셨는지요?”
흠칫 놀란 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곳에 있던 세상은 칠채계가 틀림없겠군요. 수련자 연맹 본부에 있는 그곳 말입니다!”
염뇌자의 마지막 말에 노부자의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그는 한제에게 포권을 하며 다급히 말했다.
“이 도우, 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군. 난 최대한 빨리 요종으로 가봐야겠네.”
“수련자 연맹 본부의 칠채계는 내가 책임지겠네!”
한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덤덤하게 말했다.
“좋네. 이 도우가 나서준다면 걱정할 필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