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96
197. 막내가 너무 강함 (3)
***
‘100만 달란트? 그건 무슨 용 풀 뜯어 먹는 소리···.’
혼란은 잠시였다. 하은성은 곧 내막을 추측해 냈다.
‘현상금? 위원회가 내 목에 달란트를 건 거야! 죄목은 아마도··· 요원님이랑 같이 다닌다는 이유로?’
같이 다니기만 해도 백만 달란트의 현상금이 붙게 되는 무서운 사람.
그런데, 몸 주인의 신상은 어떻게 노출된 거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정확한 신분보다는 단순히 생김새가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은성은 이미 슈탄 차원에서 여럿에게 목격당했다. 위원회가 듣던 대로 대단한 조직이라면 영상 정도는 입수했을 터. 그걸 본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몸 주인의 혈육들은 알아봤을 것이다. 가뜩이나 기회를 노리고 있던 그들 앞에, 하은성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꼴이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그 문장을 속으로 되뇌며 하은성은 토할 것 같은 불쾌감을 느꼈다.
‘형이라며! 그럼 내가 몸 빌린 이 아저씨 가족이잖아!’
돈이 걸리면 거리낌 없이 형제도 팔아먹으며, 이익을 위해서라면 단호하게 칼날을 겨눌 수 있는.
그래, 이게 드래곤이다.
크라라라라!
울음소리와 함께 드래곤이 달려들었다.
‘요원님이 올 때까지만 버티자!’
그리 생각하며 하은성은 필사적으로 회피했다. 집요한 추적이 이어진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드래곤이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충돌 직전, 하은성이 긴장감에 몸을 굳혔다.
쿵!
‘어라?’
엄청난 충격을 각오했던 하은성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당황한 것은 공격하던 쪽도 마찬가지였다.
안 놀란 척, 바로 연계하여 공격을 퍼붓지만 하은성은 일부는 피하고 일부는 몸으로 받아냈다. 느낌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별로 안 아픈데?’
한 방에 몸을 쪼개 버릴 기세로 달려들던 것 치고는 딱히 아프지 않았다.
‘원래 맷집이 좋은 아저씨였나?’
그래도 계속 맞아 줄 필요는 없으므로 하은성은 연신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하나 더 보였다.
‘뭐가 저렇게 단순해?’
다름 아닌, 추격자의 비행 실력이었다.
형이라고 하니 이 몸보다는 오래 살았을 터이고 하물며 하은성과 비교하면 훨씬 긴 시간 비행 경험을 쌓았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이 하늘에 그리는 궤적은 평이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 움직임이 훤히 예상된다.
그걸 본 하은성은 자연스레 어제의 경험을 떠올렸다.
마법으로 만든 나비를 쫓으며, 슈탄 왕국의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그때를.
당시 하은성은 이런 게 가능하리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고난도의 곡예를 펼쳤다. 나비로부터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져도 안 되기에 긴장을 풀 수 없었고, 비상식적인 방향 전환과 회전각을 따라가느라 예술에 가까운 경로를 그렸다.
그는 기억한다. 날개를 비롯한 온몸 근육이 뻐근해지고 숨이 가빴지만, 내면에는 고양감이 차올랐다. 몸의 속도감에 취했고, 밤의 색채에 취했고, 바람의 향기에 취했다.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더 빨리 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대로 어디까지든 더 멀리 치고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두 종류의 달빛이 서로를 묽게 흐리며 검푸른 하늘을 칠하던 그곳에서, 하은성은 한계를 초월한 질주를 선보였었다.
‘해 볼까? 여기서 다시?’
하은성은 그 감각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집중. 집중하자. 그때처럼··· 집중!’
하지만.
그 집중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깨졌다.
‘아, 씨. 지금은 왜 또 안 되는 거야?!’
아무리 애써도 그때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그래도 해 본 가락이 있다고 대충 비슷한 흉내가 펼쳐지기는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형님’이라고 칭한 드래곤은 화들짝 놀랐다.
‘이 녀석, 뭐야? 원래 저런 거 못 했는데?’
하은성은 듣지 못한 이 드래곤의 이름은 키르그자일이다.
키르그자일은 좁혀 들었던 거리가 자꾸 벌어지자 짜증이 났고, 공백을 마법으로 채워 넣었다. 육탄 박치기를 대신한 마법 포격이 쏟아지자, 오랜만에 재회한 동생은 주문으로 반격하는 대신 더 멀리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래, 이거야. 네 주제에 반격은 무슨!’
하지만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못 본 사이 막내의 신체 능력이 기묘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기억하기로 상대는 원래 변변찮은 드래곤이었다.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서는 고룡의 윤허 하에서 벌어지는 또래 간의 폭력 행사도 적잖이 필요한 법인데 동생은 그조차 버텨 낼 힘이 없었다.
때문에 그는 기민하게도 용생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스스로 재산을 늘릴 힘이 없다면, 이미 충분히 부유한 자에게 빨대를 꽂겠다는 것이었다.
‘돈 많고, 싫증 잘 내서 남자를 자주 바꾸고, 젊은 용을 밝히고, 앞으로 살날은 (드래곤 기준) 얼마 안 남은 고룡 여인’을 유혹해서 재산을 뜯어내고 운이 따르면 결혼해서 위자료까지 노리겠다는 그 계획을 듣고 코웃음을 친 기억이 선명했다. 애초에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드래곤이 존재할지도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애잔하고 처량한 계획까지 짜내야 했던 동생이, 그사이 무슨 일이 생겨서 이렇게 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마법 실력은 엉망인 모양이구나!=
주문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볼만했다.
한편, 등 위에서 터지는 폭발을 버텨 내며, 하은성은 이를 악물었다.
‘마법을 안 가르쳐 주는데 어떻게 배우냐고!’
민준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얼마나 멀리 갔기에?
어쨌거나 이대로 잡혀 줄 수는 없기에 하은성은 머리를 굴렸다. 원거리 공격을 받아칠 방법은?
답은 금방 떠오른다. 정신파처럼 따로 배워서 훈련하지 않아도 되는, 용의 타고난 재능.
‘브레스!’
가장 최근에 전력으로 불을 뿜은 건 몇 달 전 독일에서다. 그 뒤로 솔라다 집에서 한 번 뿜으려다가 민준이 와서 무산되고, 인간들이 탄 항공기를 향해 뿜으려다가 델이 나서서 또 무산되었다.
흐으으읍!
가슴을 부풀린다. 주변의 공기가 급속히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키르그자일은 비웃었다.
드래곤에게 타격을 입힐 정도의 브레스를 뿜으려면, 힘을 모으는 데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에.
‘흥, 하늘에서 싸우는 도중에 브레스라고? 그런 느리기 짝이 없는 공격을 내가 가만히 봐 줄···.’
가만히 봐 줄 수밖에 없었다.
—!
‘아니?!’
키르그자일은 경악했다.
브레스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한 그는, 여유롭게 호선을 그리며 회피 준비를 마친 다음 마법을 퍼부어서 끝장을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화아아앗!
용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천연림. 그 넓은 숲 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열선이 가로질렀다. 두 드래곤이 바라보는 시야를 화염 폭풍이 두 동강 내며 몰아쳤다.
‘이런, 미친!’
키르그자일이 아는 한 어떤 용도 저렇게 강력한 불을, 저렇게 빨리 뿜을 수는 없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동생은 어마어마한 화염을 토해 냈다. 회피하려던 키르그자일은 방향을 꺾던 자세 그대로 그 불꽃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 안 돼!’
화르르륵!
우주에서 가장 긴 경력을 자랑하는 용치기가 ‘백 살도 못 넘긴 것 치고는 지나치게 뜨거운 불질’이라 평했던 브레스가 눈앞에 쏟아진다.
키르그자일은 하반신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네.”
하은성의 예상보다 한 박자 늦게 나타난 민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산불 진압이었다.
빠르게 번지던 화마를 제압하자 하은성이 만든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방향을 보며 민준은 턱을 긁적였다.
‘몇 달 사이 더 세졌어.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라보는 지면엔, 굴삭기가 흙과 암석을 통째로 깎으며 지나간 듯한 반원형 터널이 이어졌다.
하은성이 키르그자일을 노리며 뿜은 브레스는 우하향하는 직선을 그렸고, 목표를 스친 다음에도 기세를 잃지 않고 이어진 것 같다. 대지에 직격한 뒤에도 밀고 나가는 힘을 유지하여 지면을 타고 가로지른 것이다.
그 결과는 대화재였다.
옛날부터 산불이라면 치를 떨었던 용치기는 습관처럼 화재를 진압한 다음에야 하은성과 바닥에 널브러진 드래곤을 보았다.
“확실히 닮긴 했군.”
“자기가 형이라고 했어요.”
민준은 기절한 드래곤을 관찰했다. 스테이크를 화덕에 반만 올려 구운 데다가 불 조절마저 실패한 결과물 같은 것이 눈앞에 있었다. 허리를 경계로 위는 하나도 익지 않고 아래는 껍질만 까맣게 태워 버린 것이다.
‘목숨에 지장은 없다. 브레스를 피하다가 하반신만 잠시 불꽃에 노출된 거야. 움직이던 중에 맞아서 오래 그을리지도 않았고. 말 그대로 1초도 안 되는 찰나였겠지.’
그럼에도 기절할 정도의 고통이었다.
몇 초만 더 노출되었다면 비늘 안까지 바짝 익어서 죽음을 면치 못했을 터다.
‘이런 식으로 몸 주인의 힌트를 얻게 되는군.’
젠킨슨이라면 깊은 관심을 가질 사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민준에게는 다른 것이 더 중요했다.
그는 쓰러진 용의 몸집을 눈으로 가늠했다. 이런 어린 짐승을 식량으로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입가심 거리도 못 될 사이즈다.
대신 이 세계 곳곳에 둥지를 튼 고룡 목록과 레어 위치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민준이 한 손에 검은 후라이팬을 쥐자, 하은성은 다음에 벌어질 일을 예감했다.
“이제 이 정도는 쉽지?”
창조주의 질문에, 아시프-1은 자신감 넘치는 의념을 발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누워서 떡 먹기입죠. 이렇게 어린 용은 백 마리도 넘게 가능합니다.=
슈탄 차원에서 흡수한 파편이 꽤 큼지막한 조각이었던 모양이다. 더 이상 세뇌는 힘들다며 엄살을 부리던 과거 발언과 딴판이었다.
=이 정도면 재료도 예전처럼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맹물을 끓이는 건 곤란하고··· 대충 포만감을 느낄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확답을 들은 민준은 산불에 휘말리지 않은 부근으로 가서 대충 잡초를 뜯고 나뭇가지 따위를 꺾어서 냄비 위에 올렸다.
‘저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시선으로 보는 하은성에게 그는 명령했다.
“불.”
“······.”
강도를 최대한 약하게 조절한 뒤, 하은성은 콧김을 뿜는다. 숨결을 따라 손가락 굵기만 한 불꽃이 바닥을 지졌다. 그 위에 팬을 올린 민준은 건성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지극히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내용물을 볶았다.
불을 계속 뿜으며 하은성은 감탄(?)한다.
‘와, 저건 진짜 개도 안 먹을···.’
저건 이미 개밥이라고 부를 수준도 넘어섰다.
굳이 명명하자면 ‘잡초-나뭇가지 볶음’ 정도가 될 괴식을 조리하면서 민준의 표정은 여전히 권태로울 뿐이었다. 동시에··· 약간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지친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왜 굳이 나한테 불 피우라 하셨지? 요원님 정도면 딱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알맞은 온도로 불을 피울 수 있을 텐데.’
생각해 보면 민준이 여기까지 오는 것도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와 본 적 없는 곳이라 텔레포트는 불가능하더라도, 그의 마법이면 하은성의 전력 비행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을 텐데.
“그만.”
신호와 함께 하은성은 불을 끊었다. 키르그자일의 상반신은 멀쩡했기에, 기절한 그의 입에 사료를 꾸역꾸역 먹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
정신을 차린 드래곤은, 아직 통증이 남아 있을 텐데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민준을 바라본다. 그는 후라이팬을 넣는 대신 하은성에게 잠시 가지고 있으라고 넘겼다. 아시프-1이 장담하긴 했지만, 여차하면 조리가 더 필요할까 싶어서였다.
하은성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쥐어 보는 후라이팬이었다. 아시프-1도 그 사실에 주목했는지 반갑게 인사했다. 열락이 한 차례 휘몰아친 여운이 남은 녹진한 정신파였다.
=오호··· 백만 달란트의 사나이. 오랜만입니다.=
“······.”
백만 달란트를 훔쳐 달아난 일 때문에 후라이팬이 지어 준 별명이었는데, 이제 진짜 목에 백만 달란트가 걸린 입장인지라 고깝게 들렸다.
하은성은 화제를 돌린다. 민준은 용을 심문하느라 바빠서 신경 쓰지 않았다.
“저렇게 태워 놓았으니 엄청 아플 텐데 티를 안 내네?”
키르그자일이 민준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후라이팬이 당당하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이제 제게 힘이 넘치는 터라,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어 줬지요. 아마 저 녀석보다 행복한 드래곤은 지금 이 행성에 없을 겁니다!=
행복한 드래곤.
그 단어의 조합에서 하은성은 위화감을 느낀다.
드래곤이··· 정말 행복할 필요가 있을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드래곤 혐오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정작 지금 용의 몸을 빌려 쓰는 주제에 말이다.
‘돈 때문에 동생을 팔아먹다니.’
두 동생을 위해 죽고 나서도 희생했던 유령 입장에서는 극도의 반감이 느껴지는 행위였다.
아무튼, 드래곤답다. 욕망 앞에서는 도덕이고 윤리고 없다. 서로 잡아먹지는 않는 게 의아할 정도였다. 드래고닉 코드니 용언이니 하는 게 없으면 진작에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멸종했을 것이다.
그런 드래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다니.
“······.”
그런데 곧, 생각이 바뀐다.
‘아니, 차라리 저게 낫나?’
적어도 저렇게 세뇌된 상태에서는 더 이상 나쁜 짓 못 하겠지?
“혹시 나중에 지구로 돌아가면··· 그냥 거기 드래곤 전부 저렇게 세뇌해 주시면 안 되나? 걔네들은 행복해서 좋고, 용 말고 다른 사람들은 용이 안 괴롭혀서 좋고. 서로 윈윈이잖아.”
마도구는 의미를 담은 답 대신 미소에 가까운 정신파로 답했다.
그때였다.
“······!”
분위기가 급작스레 얼어붙는다. 하은성은 민준의 얼굴이 악귀처럼 가깝게 바뀌는 걸 보았다.
적의가 가득한 시선으로, 민준은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그들 일행이 있던 방향이다.
‘왜 그러시지?’
그가 해안 쪽을 쏘아본 이유는, 델 주변에 펼친 결계를 누군가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민준은 다시 고개를 돌려 키르그자일을 보았다. 근처에 사는 고룡 이름과 특성을 줄줄이 읊던 그에게 날 선 어조로 묻는다.
“저쪽 바다 가장 가까이 둥지를 튼 드래곤은?!”
사냥과 뒤처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바다 밑바닥에 사는 놈들은 탐색 범위에 넣지 않았다.
그쪽을 먼저 확인해야 했는가?! 설마하니 결계가 간파될 줄이야.
사나운 기세를 뿜는 용치기 앞에서, 드래곤은 행복감에 도취된 목소리로 답한다.
“해룡··· 칼리세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