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21)
521화 일대일 (4)
고블린 차례가 끝난 후 빠르게 순서가 돌았다.
“왕실 군전략부에선 이번에 크게 승리하고 용의 산맥 너머까지 진군할 수 있었던 것은 노아르크가 이를 유도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노아르크의 핵심 인력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두 번째 순서였던 사슴뿔은 속사정을 말해보란 듯 오르큘리스 멤버인 광대를 콕 짚어 바라보며 말했고.
“비요른 얀델을 따라 숨겨진 지역에 들어간 혈령후는 아직 살아 있소.”
세 번째 순번인 초승달은 모두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앞에 얘기가 있으니,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큰 건 맞지만…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혈령후의 몸에 깃든 순혈이 아직까지도 일족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오.”
“아……!”
그래, 그 방법이 있었구나.
생존을 확인하는 것에.
“그래서 요정족에서는 이미 그녀의 생존을 확신하고서 최정예로 구성된 구조대를 꾸리고 있는 중이오.”
“피싯, 근데 이상하군요. 혈령후라면 일족의 배신자 아닙니까? 순혈까지 줘가며 잘 키워줬는데, 홀라당 남자 하나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바친.”
“……당신에게 답할 이유가 없소.”
“피시싯. 까칠하기는.”
“다시 말하지만, 내가 언젠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니 그 전까지 죽지 마시오. 내가 항상 이곳에 오는 건 당신이 살아 있단 걸 알기 위함도 있으니.”
광대와 초승달이 오랜만에 으르렁거렸지만, 이것도 집회 중에 있던 잠깐의 해프닝일 뿐.
다시 차례가 이어지자 둘은 서로 소가 닭 보듯 하며 관심을 껐다.
“여우, 이제 당신 차례구려.”
어느덧 순서는 벌써 네 번째.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우 가면을 뒤집어 쓴 베르실이 이번엔 어떤 말을 할지가 궁금했다.
그야 지난번에 퀘스트를 하나 내줬으니까.
[나도 한번 알아보겠다. 그러니 너도 좀 더 자세히 알아봐 줄 수 있겠나?]미샤가 배신자라는 정보를 듣고서, 원탁에서 더 적극적으로 떠보라는 의미로 내줬던 퀘스트.
하면, 베르실은 어떤 식으로 떠보려 할까?
“미샤 칼스타인은 배신자가 아니다. 비요른 얀델의 입장에서.”
지난번에 나비 가면이 했던 말을 딱 정면에서 부정하는 형식의 정보.
듣자마자 ‘이건 또 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야 이런 말을 해봤자 붉은색이 뜰 게 분명—.
‘아, 그걸 노린 거구나.’
이내 원탁의 보석이 빛을 자아냈다.
솨아아아아아.
뜬 빛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선명한 적색.
“헤… 재밌게 됐네요.”
나비 가면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여우를 보며 중얼거렸다. 오케이, 이 정도면 어그로는 확실하게 끈 거 같고.
‘아마 나비 가면의 바로 앞 자리에 앉은 것도 이것 때문이겠지.’
물론 이 미끼가 통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시도 자체는 매우 좋았다.
“피싯,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각 회원들이 해명을 바라는 눈빛을 쏘아내자, 베르실은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제 확신이 좀 부족했나보네요. 나름 증거는 많이 모았는데…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 그럼 다른 거로 할게요.”
이후 베르실은 다른 정보를 대고서 초록불을 받아냈고, 그렇게 차례는 다음 순번으로 넘어갔다.
갑작스레 원탁에 등장한 뉴비 삼인방 중 하나인 나비 가면.
자, 그럼 얘는 과연 미끼를 물까 아닐까.
그 답은 곧 알 수 있었다.
“여우 씨는 제가 했던 말을 믿지 않나 보네요. 아니면, 뭔가 이유가 있어서 믿고 싶지 않은 건가? 웃겨 정말.”
그래, 물었구나.
“미샤 칼스타인이 비요른 얀델의 팀에 다시 들어간 건 다른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뱉을 뻔했다.
‘미샤가 지시를 받아서 돌아온 거라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우선 원탁의 보석을 확인했다.
솨아아아아아-
저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듯 새어나오는 녹색빛.
이를 본 광대가 신난 목소리로 읊조렸다.
“피싯, 그 멍청한 바바리안놈도 불쌍하군요. 그토록 동료, 동료 외치더니 정작 그 동료에게 배신을 당할 처지라니.”
당장에라도 면상을 바닥에 내리꽂고 싶지만, 테이블 아래로 양주먹을 꽉 쥐며 참아냈다.
감정보다는 이성에 집중할 때였다.
‘……누군가의 지시.’
나비 가면이 말한 누군가가 누구일까.
더 볼 것도 없이 한 명이 딱 나온다.
‘이백호.’
암만 생각해도 얘가 아니면 그런 짓을 할 새끼가 없단 말이지. 다음 달이 되면 만나자마자—.
‘아니, 잠깐만…….’
이백호에 대한 분노로 시야가 좁혀지던 때, 불현듯 나비 가면과 눈이 마주쳤다.
물론 마주치자마자 저쪽에서 시선을 바로 피하기는 했지만…….
‘뭐지 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에서 얘가 미샤 칼스타인의 이야기를 꺼낸 게 우연일까?
정말 거기에는 아무런 의도도 없었나?
‘다시 생각해 보면…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단 말이지.’
한창 달아오르던 머리가 위화감을 감지하고서 차갑게 식는다.
나비 가면이 이 정보를 원탁에서 말했다는 건, 널리 알려져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아니면, 알려지기를 바랐던가.
‘후자라면.’
분명 비요른 얀델의 귀에 들어갈 것도 예상했을 터.
최대한 진정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비요른 얀델이 미샤 칼스타인이 배신자란 걸 알았을 때.’
나비 가면은, 비요른 얀델이 어떻게 행동하리라 생각했을까.
더 볼 것도 없이 답은 나왔다.
‘미샤를 내치거나.’
그도 아니라면.
‘이백호와 틀어졌겠지.’
그럼 이게 나비가 바란 결과일까?
이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뭐, 이 추측들은 그냥 다 내 망상이고, 정말 얘는 순서를 넘기려고 생각난 걸 아무거나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이 좀 돌아오네.’
이러한 경우의 수를 인지하고 나니,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다.
‘정말 누군가 나를 이간질하려는 거라면.’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럼 조급해지는 건 저쪽일 테니까.
툭.
총을 쏘기 전엔, 조준을 제대로 해야 하는 법이다.
***
「캐릭터가 기록 보관소로 이동합니다.」
***
나비의 순서가 끝난 뒤.
[1층에서 발견된 비석 아래에는 고대어로 된 문구가 적혀져 있어요. 그 내용은…….]지하 1층으로 내려오는 핵심 단서를 꺼낸 여왕을 시작으로 블랙, 광대, 늑대 순으로 차례를 돌았고, 어느덧 내 차례가 찾아왔다.
이번 달에 큰 이벤트가 있었던 탓일까?
멤버들 모두 내가 뱉을 정보에 평소보다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다만 나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며 게임 정보를 말하며 턴을 넘겼고, 그렇게 첫 바퀴가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 바퀴도 딱히 볼 건 없었지.’
미궁에 갇혀 단절된 외부의 정보를 들을 수 있었을 뿐, 내게 도움이 되거나 관련이 될 만한 이야기는 크게 없었다.
‘나비 가면도 두 번째 바퀴에선 미샤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그렇게 이번 집회는 거기서 마무리.
이후 이한수의 방으로 돌아온 나는 게시판이나 좀 둘러보다가 일찍 로그아웃을 했다.
그야 도시에서 접속한 게 아니니까.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내일의 탐사를 위해 체력을 비축해야만 하는 것인데…….
[00 : 00]미궁 진입 36일 차가 막 시작된 시기.
모포 속에서 천천히 눈을 뜬 나는 누운 채로 눈만 움직여 주변을 확인했다.
화르륵-
타오르는 모닥불의 빛이 일렁거리는 동굴 속.
아니, 나무 속이라고 해야 하나?
주변은 커뮤니티에 입장하기 전에 꾸린 야영지 그대로였다.
‘…4시간 정도 있다가 나왔는데도, 엄청 피곤하네.’
잠시 떴던 눈을 다시 감았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머지않아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에 불침번으로 세워둔 아멜리아의 분신이 소리가 난 곳으로 다가갔다.
“물이라도?”
“…아, 네. 고마워요.”
그래, 역시 베르실 너였구나.
깨어난 시기에 몇 초 오차가 있는 걸 보니, 얘는 커뮤니티가 닫힐 때까지 머물렀던 듯한데…….
“얀델 씨는… 주무시나요?”
“그래.”
여기서 깨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좀 이상했기에 그냥 그대로 눈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 함께 기상해 탐사 준비를 하고 있자니, 베르실이 피곤한 얼굴로 좀비처럼 걸어왔다.
“얀델 씨, 출발 전에 잠깐 일대일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얘기? 좋다.”
짚이는 게 없는 척 답했으나 베르실이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고, 실제로도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샤 칼스타인요.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서 우리 팀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의혹이 있어요.”
물론 이거 하나는 궁금했다.
“그걸 왜 이제서야 말하는 거지?”
“…민감한 얘기다 보니, 좀 더 확인을 한 뒤에 말씀드리려 했어요.”
그래, 그런 식으로 둘러댈 생각이었구나.
내가 만약 아무것도 몰랐다면 굉장히 수상하게 봤겠지만, 속사정을 알기에 그냥 모른 척 넘어갔다.
“흠흠!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요……. 말씀 드릴 게 하나 더 있는데…….”
“뭐지?”
“어쩌면 지금 바깥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있을지도 몰라요.”
허, 설마 이것까지 바로 보고를 할 줄 몰랐는데.
내게 의심을 조금 사게 되더라도 바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고 하면 좀 기특하다.
“근거는?”
“…촌장이요.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많아요. 그 사람은 수천 년도 더 전의 사람인데. 들어보니 여기서도 아주 오랜 시간을 지냈단 모양이잖아요? 양쪽 모두 시간이 흐른다고 가정해야지만 얘기의 앞뒤가 맞아요.”
베르실이 댄 근거는 솔직히 좀 놀라웠다.
‘……와, 모르고 들었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거 같은데?’
어젯밤에 한참 더 뒤척이는가 싶더니, 이런 변명들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건가?
뭐, 나도 생각하느라 좀 늦게 자기는 했지만.
“그럼 바깥에서는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난 건가?”
이번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묻자, 베르실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건 아니에요. 아니, 아닐 거 같은데……. 제 생각에는 ‘우기’가 기점일 거 같아요.”
“근거는?”
“…없어요.”
없기는.
바깥에서 15일이 지난 게 가장 큰 근거일 거면서.
그래, 여기까지는 변명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거지?
아무튼, 베르실이 얘기한 도시와 이곳의 시간 비율에 대한 의견은 나와 일치했다.
21일 차에 우기가 끝나고.
보름 뒤인 35일 차 자정에 원탁이 열린다.
즉, 우기가 지나간 다음부터 일대일 비율로 시간이 흐른다고 하면 딱 계산이 맞는 것인데…….
“제 추측대로라면, 50일 차에 다시 미궁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57일 차에는 다시 한번 1층이 폐쇄되며 아무도 못 들어오는 상태가 될 테고. 64일 차에는 또 우기가 시작되겠죠.”
이러면 촌장에게 들은 우기의 주기와도 딱 맞는다.
***
베르실이 충격적인(?) 정보를 내게 전한 후, 오랜만에 클랜 회의가 열렸다.
“도시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모두 그 가설에 깜짝 놀랐으나, 대부분은 정보의 진위 자체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야 커뮤니티가 열린 걸 내가 말해줬거든.
내가 악령이란 걸 모르는 아이나르랑 아우옌만 빼고.
“오! 그것 참 신기한 일이군!”
“그… 크, 큰일 난 거 아닙니까? 그러면? 만약 우리도 촌장처럼 영원히 이곳에 갇히는 거라면…….”
상반된 두 사람의 반응이야 어쨌든.
정보 공유는 시작일 뿐, 회의 주제는 따로 있었다.
“지금부터 정할 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다.”
“단장님,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입니까?”
“쉽게 말해, 결정해야 한다. 다른 탐험가들이 더 이곳에 내려오든 말든, 우린 우리 탐사에만 집중을 하든가. 그도 아니면…….”
“아니면?”
“그들을 도와 세력을 키우고,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찾든가.”
전원이 이해득실 계산이 빠른 탐험가들인 만큼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곧바로 투표를 시작하자 빠르게 찬반이 갈렸다.
“나는 찬성이다. 단기간의 이득이야 어쨌든, 우선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찾는 게 먼저니까.”
“저, 저도 찬성입니다. 탈출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버려두면 대부분이 죽을 테니까요…….”
찬성의 아멜리아와 아우옌.
그리고…….
“전 반대예요. 그 사람들이 과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나도 반대다! 여기까지 온 탐험가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무엇보다 귀찮을 거 같다!”
반대표의 에르웬과 아이나르.
“전… 그래도 탐사를 중단하고서라도 만나보는 게 낫다고 봐요. 일단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도 있고, 바깥 소식도 들을 수가 있으니까요. 도울지 말지는 건 그 나중 일이고요.”
“난… 굳이 찾을 필요는 없고 나중에 만나면, 그때 사람을 보고서 생각을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기타표의 베르실과 미샤.
어찌 된 게 매번 내가 마지막 표지?
알 수 없지만, 나도 그냥 내가 정답이라 생각한 곳에 투표했다.
“우선 바위섬에는 돌아가보는 게 좋을 거 같다.”
도서관도 그렇고, 우기도 그렇고, 여기 거대한 나무섬도 그렇고.
엔드 콘텐츠의 난이도가 높은 계층인 만큼, 사람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선택지도 늘어나리라는 판단.
‘무엇보다, 사람이 늘면 그 거인 새끼도 잡을 수 있을 테고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열흘 정도 탐사를 더 이어나간 뒤, 때에 맞춰 바위섬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의 날짜는 53일 차.
시작했던 위치에서 야영지를 꾸리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54일 차, 55일 차, 56일 차…….
그렇게 57일 차가 되며, 정말 누군가 오기는 하는 건가 의심을 갖던 차였다.
후우우웅-!
“비, 비요른!! 포탈! 포탈이다!!”
허공에서 수십 개의 포탈이 열리며 뉴비들이 유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