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Can’t Live a Normal Life RAW - chapter (12)
12화 기(氣)와 마나 (1)
마지막.
찰나의 순간.
조나단은 로만이 어떻게 반격하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말도 안 돼.’
딱 한 걸음.
그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지(死地)였다.
뒤로 물러나면 탄력을 받은 목검에 당해 버릴 것이고, 옆으로 빠진다고 해도 검의 영역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오라는 폭발적인 힘이다.
오라의 분출은 순간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데 특화되어 있고, 힘을 전달할 거리가 충분할수록 막아 내는 입장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연히 일반인에 불과한 로만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펼쳐진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공격의 영역을 허물었다.
한 걸음 나아간 것만으로 상대가 완벽하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얼굴을 살짝 틀면서 대담하게도 눈앞에서 공격을 피해 버렸다.
그건 정말이지 간발의 차이였다.
얼굴이 그대로 박살 나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로만은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크리스를 제압해 버렸다.
경악.
상식을 벗어났다.
조나단으로서는,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동안 로만 도련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로만은 얼간이다.
그를 직접 가르쳐 본 경험이 있기에, 제대로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하던 그의 모습에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눈앞의 로만은 달랐다.
로만은 포기를 모르는 승부사의 기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검사로서의 기본기가 매우 탄탄했다.
한순간의 타이밍으로 상대를 무너트리는 반격은 럭키 펀치 따위가 아니다.
충분한 기본기와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남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승부수를 성공시킬 수 있다.
탄탄한 수비.
물 흐르는 듯한 공격.
확실했다.
로만의 실력은 한두 해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은 세월이 녹아들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성장하신 거지?’
기억을 더듬었다.
사실 당장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술에 취한 채 거리를 배회하던 로만의 모습을 보았다.
얼마나 한심하던지.
고성방가를 내지르며 행패를 부리는 그의 모습에, 드미트리의 얼간이라는 악명은 더욱 심해졌다.
한심한 인간.
분명히 조나단의 기억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블러드 팽 사건을 시작으로, 오라 기사인 크리스마저 쓰러트려 버렸다.
그때였다.
같이 대련을 지켜보던 로메로 남작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나단 기사단장.”
“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크리스 부기사단장은 드미트리가 자랑하는 2성의 오라 기사이지 않은가.”
그도 똑같았다.
당혹스러운 순간.
로메로 남작은 설명이 필요했다.
자신의 아들이 급성장한 이유를, 조나단의 입을 통해 듣고자 했다.
잠깐의 망설임.
복잡한 눈빛으로 로만과 로메로 남작을 번갈아 보던 그는, 고민 끝에 제일 상식적인 대답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로만 도련님이 검술의 천재인 것 같습니다.”
로만은 숨을 골랐다.
볼이 따끔했다.
손을 들어 통증의 부위를 만져 보니, 얇게 베여 나간 상처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심하네.’
크리스.
그는 나쁘지 않은 실력자였다.
공격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일 줄 알았고, 싸움의 흐름을 읽는 눈은 제법 날카로웠다.
문제는.
‘이 세상의 기준에서나 나쁘지 않다는 거지.’
벤 마일즈를 비롯한 블러드 팽 일당을 상대해 보았기에 강함의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크리스의 실력이라면 그들 십수 명은 쓸어 버릴 실력자.
그간 만난 사람 중에는 조나단을 제외하고는 제일 강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백중혁의 기준이라면?
최하(最下).
마교의 말단무사도 크리스보다는 강할 것 같았다.
마지막에 오라의 분출은 충분히 위협적이었지만, 무림에서 사용하는 방식에 비해서는 엉성했다.
‘상당히 엉성한 기의 분출이었어. 왜 그렇게 기를 사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스가 말했던 마나의 힘인 것 같은데, 이 세상은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걸 활용하고 있어.’
호기심이 일었다.
오라.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라면, 그들이 어떤 힘을 활용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크하하하하하.”
로메로 남작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조나단의 답변을 들은 그는, 아들이 천재라는 소리에 진심으로 행복한 얼굴을 보였다.
“내 아들이, 우리 장남이 검술의 천재라니. 조나단 기사단장, 그게 정말 확실한가?”
“예. 다른 이유로는 로만 도련님의 성장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은 제 능력이 미천해서 로만 도련님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로만 도련님은 천재가 확실합니다.”
“그래? 정말 천재란 말이지.”
얼굴이 폈다.
로메로 남작은, 로만을 보며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아들아.”
“예.”
“최근에 오늘만큼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나는 네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단다. 조나단 기사단장의 말처럼 검술의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아들인 로만이 홀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사실 자체에 박수를 보내 주고 싶다. 원하는 것이 있거든 지금 내게 말하거라. 상벌(賞罰)은 확실해야 하는 것. 우리 아들을 위해, 이 아버지가 특별히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로메로 드미트리.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
아들의 이탈에 분노하던 그였지만,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아들 바보였다.
그 또한 육아에 서툴러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는 진심으로 로만을 사랑했다.
보상.
판이 깔렸다.
보통은 아버지의 상을 웃으며 넘기기 마련인데, 로만의 반응은 달랐다.
상벌을 받는 것.
로만에게는 익숙한 삶이었고, 로메로 남작이 상을 언급한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로렌스 가문과의 혼인이 무산되면서 제 군 입대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수도로 떠난 두 동생이 병역의 의무를 감당할 수는 없기에, 6개월 뒤에는 제가 전장으로 떠나야겠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데리고 갈 병력을 직접 선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십시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액 또한 지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단도직입적이었다.
상당히 구체적인 제안에, 로메로 남작은 놀란 기색을 보였다.
“……허어.”
병역의 의무.
생각만으로도 씁쓸한 현실이었다.
약소국(弱小國)에 속하는 카이로 왕국으로서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왕국의 위험을 나누어야만 했다.
그건 피할 수 없는 현실.
혼인한 귀족은 일시적으로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으나, 현실을 받아들인 로만의 모습에 생각이 달라졌다.
아들을 믿고 싶었다.
로만의 삶.
아비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가 활짝 날아오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알겠다. 병역과 관련한 전권을 허락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말해라. 네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면, 이 아비는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다.”
기대치가 바닥이었기 때문일까.
로메로 남작의 믿음은 맹목적이었다.
로만은 가볍게 웃으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크리스를 보았다.
“앞으로 오라를 배워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개인 교습을 위해, 제가 상대했던 저 검사를 배정해 주십시오.”
새로운 문물.
지금은, 이 세상을 조금 더 알아가야 할 때였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크리스는 눈을 떴다.
새파란 하늘이 눈으로 쏟아지는 상황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크흑, 진짜 쪽팔리네.”
패배.
당혹스러운 현실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드미트리의 얼간이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에, 쥐구멍에라도 얼굴을 숨기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현실인 것을.
로만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참담했다.
미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던 크리스였는데, 거울에는 앞니 두 개가 빠진 얼간이(?) 한 명이 있었다.
패배만큼이나 절망적인 상황. 황급히 대련장을 확인해서 부서진 이빨을 확인했지만, 그걸 다시 제자리에 붙일 방법은 없었다.
“……죽을까.”
진심으로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예에???!”
“네가 어떤 기분인지는 잘 알아. 하지만 크리스. 영주님의 명령이시다.”
“기사단장님, 아니 스승님.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로만 도련님에게 패배해서 앞니 빠진 얼간이가 되어 버렸는데, 로만 도련님에게 오라까지 가르치라는 말입니까? 이건 진짜 아닙니다. 항명의 형벌로 제 목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큼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바닥에 발라당 누웠다.
필사의 의지.
로만의 얼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악연이라고 할 만한 사이였기에, 로만에게 패배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욕스럽게 느껴졌다.
조나단이 말했다.
“너에게 제안을 하나 하마.”
“…….”
“로만 도련님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그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와라. 네가 이번 일만 잘 처리한다면, 그동안 미루고 있었던 비기(祕器)의 전수를 허락하도록 하겠다.”
“……진심입니까?”
“그래.”
“아씨.”
크리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기.
조나단을 3성의 오라 기사로 만든 비결.
항상 그의 비기를 갈구했던 크리스로서는, 조나단의 제안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습니다.”
짜증 섞인 음성.
결국.
크리스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 * *
다음 날.
크리스는 로만을 만났다.
그런데.
피식.
로만이 웃었다.
순간 크리스가 눈을 부릅떴다.
둘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얼굴을 보았을 뿐인데, 갑자기 웃는 것은 그 의미가 너무나도 명백했다.
‘에라이, 씨발.’
사라진 앞니.
그 사이로 바람이 숭숭 불었다.
벌써부터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후회되는 크리스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싫은 일도 감수해야만 했다.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크리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부터 오라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오라.
마나의 한 갈래로, 기사들이 사용하는 힘을 뜻했다.
마법사들은 마나를 서클에 저장한다면,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마나를 전신에 퍼트렸다.
“오라를 발명한 사람은 선구자(先驅者)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르 황제입니다. 그는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마나를 전신에 퍼트림으로써, 최초로 인간의 육체를 강화하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오라는 이 마나를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힘을 말합니다. 평소에는 체내 곳곳에 퍼져 있던 마나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한순간에 분출함으로써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죠.”
“…….”
로만의 태도는 진지했다.
크리스의 설명에 딴지를 걸지도, 그렇다고 장난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다.
막상 수업을 받을 때는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 크리스도 어느 정도의 반감은 가라앉았다.
“사실 오라의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나는 선택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고, 천에 하나가 오라 기사의 길을, 만에 하나가 마법사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그 자질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라 기사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은 바로 마나를 느끼는 것입니다. 보통 이 단계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마나를 느끼는 데 반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1년이 걸리더라도 마나만 느낀다면 평균 이상은 하는 겁니다. 고로, 재능의 영역이라는 말이죠.”
살짝 당당함이 묻어 나오는 발언이었다.
은근히 본인을 자랑했다.
조나단의 제자로서 반년 만에 마나를 느꼈을 때, 드미트리에서는 천재가 나타났다고 난리가 났었다.
크리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로만은 그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다.
“1년. 그 안에 가능성을 판가름한다는 의미군.”
“예. 마나를 1년 동안 느끼지 못한다면, 사실상 오라 기사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마나를 느끼는 것부터 진행하도록 하지. 네가 경험했던 방식을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막상 마나 훈련을 시작하면, 로만과 자신 중에 누가 승자인지가 확실하게 가려질 터.
‘로만 도련님이 검술의 천재라 할지라도 마나의 재능은 별개의 문제. 이번 훈련으로 현실의 냉혹함을 맛보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겠죠. 크흐흐흐흐,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은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어.’
들떴다.
그간 마나 훈련에 절망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았다.
로만도 다르지 않다.
크리스는 속마음을 숨기고는, 마나를 훈련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마나 훈련법은…….”
크리스의 가르침.
로만은 점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