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무림성 대회의장.
긴 탁자에 야현의 수하들과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는 십여 명의 낯선 얼굴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낯선 얼굴들은 무림맹 맹주, 모용곽이 상석이 아닌 자신들과 같은 평석에 앉아 있는 것에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한 사내, 야현이 등장하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아!”
낯선 사내들 중 몇몇은 야현을 보자 무언가 떠올린 듯 나직하게 탄성을 터트렸다.
“천무(天武)!”
그중 한 명이 무림대전, 마지막 전장에서의 기억이 떠오른 듯 감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제법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천무?”
야현이 그를 보며 반문하자,
“주군의 별호이옵니다.”
초량이 그를 대신해 의문을 풀어 주었다.
쿵!
연이어 감격을 감추지 못한 이가 탁자에서 두어 걸음 비켜나와 야현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소인의 목숨을 구해 주셔서, 소인의 문도들을 구해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무림대전에 있었던 이들은 그를 따라 무릎을 꿇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자리에 앉으세요.”
야현의 손짓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던 이들의 몸이 세워졌다.
부릅뜬 눈을 보면 자의로 일어선 것이 아니었다.
권능, 염력!
그 힘에 그들은 더욱 흥분을 드러내며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흥분이 진정되자 그들은 비로소 탁자 중간에 있는 빈 의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인원수가 모자라 비워진 말석에 위치한 의자도 아니고, 중간에 자리했다는 것은 또 다른 인사들이 있다는 의미.
하지만 야현의 위엄에 눌려 그 누구도 쉽사리 의문을 입에 담지 못했다.
“들어와.”
야현의 명에 대회의실 한 켠 쪽문이 열리고 다섯 명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혈사련의 중추, 혈랑문주 구염부, 묵룡신가 신림, 패천문주 기덕해, 거권방 적무였다.
그리고 그 넷을 뒤로 낯선 젊은 청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로 과거 신성제국 자폭 공격에 앞장섰던 독수장, 영사문, 귀부문의 후예였다.
세 문파는 각자의 자립보다 연합을 선택했고, 그 결과 독귀영사문이라는 새로운 문파를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청년은 문주를 맡은 가릉이었다.
“저, 저들은?”
“어떻게 네놈들이!”
새로 자리한 이들 중 몇몇은 적의를, 몇몇은 경악을 터트렸다.
오랜 시간 적대적 관계였기에, 직접적인 원한이 없었다고 하여도 마치 본능처럼 적의를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쾅!
야현이 탁자를 가볍게 내려쳐 그러한 분위기를 단숨에 지워 버렸다.
“앉아.”
야현의 명에.
“예, 주군.”
“명!”
혈사련 중추들은 복명과 함께 빈자리를 채우고 앉았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주군’이라는 호칭에 새롭게 자리를 채운 이들이 복잡한 눈으로 야현을 쳐다보았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시나요?”
야현이 오히려 그들에게 물었다.
“우리의 적은 누군가요?”
“마교…….”
“혈사련…….”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마교와 혈사련의 이름을 입에 담다가 이내 입을 꾹 닫았다.
“황실!”
“관!”
그리고 마치 한목소리처럼 적을 지목했다.
“황실은, 관은 무림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맞서야 합니다. 안 그런가요?”
그 누구도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황실 대 무림. 우리는 거대한 적을 앞둔 하나입니다.”
야현의 말처럼 천하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적을 두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승리하기 위해서는 미약한 힘이라도 모으고 또 모아 뭉쳐야 한다.
“잘 부탁하오. 오랜 숙원은 잊읍시다.”
눈치가 빠른 구염부가 먼저 나서 화해를 청했다.
“원한도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 좋소이다. 잘해 봅시다!”
화답이 이어지자.
“그리고 또 그대들에게 소개해 줄 이들이 있습니다.”
야현의 말이 끝나자.
“우히히히히!”
빛 무리와 함께 카이만을 비롯해 베라칸, 크리먼 백작, 콰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색목인?”
“소개하지. 간단히 말하자면 서방의 무림인이라 여기면 될 것이야.”
야현의 말에.
“우히히히히.”
카이만이 새로운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괴소를 터트렸다.
“바, 반갑소이다.”
낯선 외형 때문인지 아니면 괴소 때문인지, 그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마교가 현재 서방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헛!”
“헙!”
야현의 말에 새롭게 합류한 이들이 헛바람을 터트렸다.
“마교와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마인들이야 아(我) 아니면 적이니.”
“쉬운 싸움은 아닙니다. 넘어야 할 산도 많지요.”
야현은 새롭게 합류한 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대들이 가져갈 승리의 보상은 매우 달콤하지요.”
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본인은 그대들이 그 보상을 움켜잡았으면 합니다.”
“약속해 주실 수 있습니까?”
“본인의 약조보다 모두의 약조가 더 중요할 듯하군요.”
당연히 그들의 시선이 모용곽을 비롯한 기존 무림인들에게로 향했다.
“우리가 나눴던 약속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외다.”
모용곽이 그들을 대표해서 다시 한 번 약속을 확인시켜 주었다.
“어차피 천마와 마교는 다시 중원을 노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천무께서도 모든 것을 열어 보였을 겁니다.”
새로운 얼굴 중 대표로 보이는 이가 야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마주할 적이라면 거대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도 좋지요.”
어차피 거대한 흐름은 만들어졌고, 그것을 피해 생존을 꾀하기에는 희망이 없었다.
“따르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야현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여 복종을 드러냈다.
“따르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이어 다른 이들도 야현에게 복종을 맹세했다.
“그럼 본인의 뜻을 밝히지요.”
모두가 그 말에 집중했다.
“우리는 무림맹이 될 것입니다.”
“……?”
“말뿐인 무림맹이 아닌 정, 마, 사 모든 계파를 떠나 진정한, 천하에 단 하나뿐인 무림맹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 첫걸음으로 무림맹은 하남성 도포안삼사를 손에 넣을 것입니다.”
쿵!
조정 기관, 지방 관청을 손에 넣는다.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황제에 반기를 드는, 아니 역모였다.
“화, 황제가 되시려는 겁니까?”
누군가의 물음.
“아닙니다. 본인은 황제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야현은 강한 어조로 말을 끊으며 그들을 직시했다.
“우리가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여 새로운 하늘을 열 것입니다.”
* * *
정주 관청, 도포안삼사.
포정사 뒤뜰 정자에 평복을 입은 사내 셋이 조촐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딱 봐도 두 명은 호리호리한 것이 문관이었고, 한 명은 장대한 기골에 구릿빛 피부를 보아 무관이 분명했다. 세 명의 사내는 정주 도포안삼사를 책임지고 있는 포정사, 안찰사, 그리고 성도군 대장군이었다.
그저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노곤함을 씻는 술자리가 아닌 듯 셋이 가지는 술자리의 표정과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포정사, 중앙 관청의 분위기는 어떻소?”
“어수선하다 합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췌 알 수 없으니 답답하외다. 답답해.”
대장군의 말을 시작으로 포정사와 안찰사가 한 마디씩 말을 덧붙였다.
“군부는 어떻소?”
“솔직히 소장도 잘 모르겠소이다. 갑자기 지휘 체계가 무너진 느낌이외다.”
“조정의 소식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오.”
셋의 말이 엉키는 와중에.
“내 인편을 나눠 보니 그나마 정주는 다행이외다. 다른 성은 민란이다 뭐다 정신이 없는 모양이오.”
안찰사의 말에 대장군과 포정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입 안의 가시처럼 느꼈는데 이럴 때에는 고맙기도 하군.”
가시가 빼곡하게 박힌 말을 내뱉으며 대장군은 고개를 돌려 담장 너머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붉은 기와, 무림성을 쳐다보았다.
“그렇구려.”
안찰사와 포정사도 우뚝 솟은 무림성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덕분에 평안하게 지내지 않소이까?”
안찰사는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하남성 정주 도포안삼사의 수장 자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무림의 또 다른 조정이자 자금성인 무림성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둘 다 상대를 완전히 배제하며 살아갈 수 없기에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협력을 한다.
그러나 무림이라는 세계의 중추 무림성이 존재하기에 자연스레 관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연히 관인들은 하남성 정주로 임관을 피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종의 좌천직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 보니 중앙에 튼튼한 끈이 없거나, 실세에 찍혀 좌천되다시피 쫓겨나거나.
이 셋도, 아니 정확히는 포정사와 안찰사는 그렇게 끈 떨어진 연 신세로 내쳐졌다.
하지만 대장군은 달랐다.
그는 무림성과의 일전을 대비해 팽일로가 안배해 둔 무용이 뛰어난 측근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 가장 답답한 이는 누구도 아닌 대장군이었다.
분명 흐름이 이상하게 뒤틀렸으니 태장군, 아니 하다못해 중앙 군부에서 명이라도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수차례 보고를 올렸지만 몇 날 며칠째 묵묵부답이었다.
대장군은 재기의 굳은 의지도 없이 낙심한 표정으로 술잔이나 기울이는 둘을 보며 속으로 조소를 머금었다.
‘괜히 왔군.’
혹시나 뭔가 소식을 들을 수 있나 싶어 왔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내일은 부관을 보내봐야겠군.’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대장군은 술잔을 비웠다.
“저녁 점호가 있어 먼저 일어나 보겠소이다.”
대장군은 화답도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갈 채비를 하라.”
대장군은 함께 온 호위 부대 장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
당연히 들려와야 할 복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장군은 눈가를 찡그리며 정자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미동 없이 철통 경비를 서는 호위 부대 병사들과 계단 아래 꼿꼿하게 서 있는 장수 겸 부관이 보였다.
“내 말 듣지 못한 것인가?”
대장군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호통쳤다.
“…….”
이번에도 돌아온 목소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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