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59
“그러시게.”
공융은 유총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대전에서 물러났다.
“전 태부 공융 퇴청!”
대전에서 시중을 드는 환관의 목소리가 야속하게 울려 퍼졌다. 전 태부 공융. 환관 특유의 빠른 눈치가 천자의 마음에 쏙 들었으리라. 공융은 그 환관을 잠깐 바라봤으나 환관은 공융이란 존재가 아예 없는 듯 전혀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물러나는 공융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총이 중얼거렸다.
“태부는 천자의 스승이다. 그만큼 위신이 중하다.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공융이 짐을 비방하고 다닌다면 짐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지 않겠는가?”
이에 낙준이 긍정했다.
“그렇사옵니다.”
“허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공융이 불충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날 밤 가까운 벗의 집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늦게 귀가하던 공융은 자객의 피습을 받았다. 가마꾼들은 산산이 흩어지고, 난자당하여 선혈이 낭자한 공융의 시신은 어딘가에 은닉되었다.
“낙준을 정동대장군에 임명하고 장군 여대, 반장, 이엄, 이통을 부장으로 삼으며 서서, 마량을 참군으로 삼는다. 병력 삼만을 맡기니, 역적의 녹림을 쳐서 무너뜨려라.”
유총은 친히 병부를 낙준에게 내주었다. 갑주를 입은 낙준은 유총의 앞에 나아가 받들었다.
“신명을 다해 칙명을 완수하겠나이다!”
“반드시 완수하라.”
천자 유총의 병력 3만과 마초가 이끄는 량왕부의 주동 7만, 모두 더하여 10만에 달하는 대군이 합비를 향해 맹진했다. 낙준은 가슴이 뛰었다. 이 위험한 도박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제갈찬에 억눌려왔던 천자 유총이 이제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그 선봉에 나, 낙준이 섰다.
합비를 무너뜨리면 신왕부가 무너진다. 우선 형양에 집결한 무수한 병력은 보급에 심각한 차질을 겪을 것이다. 또한 합비가 무너지면 눈치만 보던 익주의 촉왕부가 다시 떨쳐 일어날 것이다. 남방을 완전히 평정하고 북쪽의 문명을 넘보던 교지의 사섭이 슬금슬금 세력을 뻗칠 것이다. 곽원은 더 이상 신왕부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며, 산월이라고 내내 신왕부의 엉덩이 밑에 깔려있을쏘냐. 완전히 와해되는 것이다. 신왕부는, 제갈찬은.
“여강군만 넘으면 바로 합비입니다. 여강을 신속하게 돌파해야 합니다.”
사마의는 마초, 낙준과 말 머리를 나란히 하고 낙준에게 말했다. 낙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강을 쥐고 그대로 병력을 북진시켜 합비성을 포위할 것이오. 가뭄에 오래 시달려 곤궁한 합비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오.”
낙준은 그렇게 말하고 서서를 바라봤다.
“여강의 사정은 어떻소?”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송경에서 여강으로 들어가는 환구에는 제갈찬의 삼엄한 경계가 도사리고 있지 않습니까. 무리하여 세작을 보냈다가는 들통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마량이 덧붙였다.
“허나 그곳을 수비하는 양주도독 장패가 형양전투의 선봉장으로 나섰으니 십만에 달하는 병마를 제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음. 좋다. 속도를 최대로 높여서 진군한다. 낙오자들은 어쩔 수 없다. 버리고 간다.”
“존명!”
합비.
제갈량은 신왕 제갈찬을 대신하여 신왕부의 정사를 주무했다. 그는 신왕의 왕좌 바로 옆에 앉아서 정청과 백각을 이끌었다. 특히 형양으로 원활한 보급을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보급은 물자가 넉넉할 때에도 지난한 일인데, 더군다나 가뭄이 겹친 이 시국에는 더욱 어려웠다. 백성에게 애걸하고 채찍질하여 뜯어낸 양식을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 길을 따라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보급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다른 쪽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내군경 손관과 은밀히 회동했다.
“내군경, 내군경께 부탁을 좀 드려야겠습니다.”
손관은 웃음을 지었다.
“전장에 나서지 못한 무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습니까?”
“아, 그 질문에는 저도 적절한 대답을 못 찾겠습니다. 무부는 전장에서 쓸모가 있지요.”
“그 말씀은……?”
“전장에 나가주셔야겠습니다.”
손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양에서 벌써 증원요청이 왔습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다는 것은 전황이 아주 불리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까?”
“저는 형양이라고 말씀드린 바가 없습니다.”
“허면 서주도독 진등을 원호하여 청주를 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무리가……”
제갈량은 손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형양도, 청주도 아닙니다.”
“허면……”
“환구로 가주십시오.”
손관의 눈동자가 커졌다.
“화, 환구요?”
“그렇습니다.”
“어째서 환구입니까? 환구는 송경과 신왕부 사이의 관문 같은 곳이 아닙니까. 그곳에 헛힘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헛힘이 아니니 내군경께서 가주십사 하는 것이지요.”
손관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송경에는 이미 태위 여포가 진주해있다. 환구로 병력을 보낸다는 것은 송경을 경계한다는 뜻인데, 구태여 송경의 유총을 자극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런 유총을 견제한다는 것은,
“설마……!”
제갈량은 웃음을 지었다.
“천자가 반역을 일으킬 것 같군요.”
“어째서… 아니, 허면 송경에 계신 태위께서는……”
제갈량은 차를 머금었다.
“애석한 죽음에 대해서는 전쟁이 끝난 후 생각하시지요.”
“……”
제갈량은 그에게 병부를 건넸다.
“합비의 중앙군과 여강의 지역방어병력을 모으면 대략 삼만 정도가 됩니다. 적을 오래 막기에 적절하진 않습니다만, 지구전으로 가져간다면 아주 불가능한 병력도 아니지요. 내군경께서는 환구로 가서 적의 진공을 최대한으로 저지해주십시오.”
손관에게는 어려운 말들의 연속이었다.
“송경이 병력을 모두 끌어 모은다 한들 삼만을 넘기는 힘들 것입니다. 수비를 함에 있어서 삼만의 병력을 내게 내주셨는데 어찌 같은 수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 하시는지.”
“적병은 삼만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꾸 질문하려는 손관을 제갈량은 만류했다.
“내군경, 지금은 제 뜻을 따라주십시오. 이 순간만큼은 외람되나 제가 곧 전하이니까요. 환구로 가서 적의 내침을 막아주십시오. 결코 적을 먼저 치지 말고, 시간을 끄는 데 주력해주십시오.”
손관은 몸을 일으켜 제갈량을 향해 군례를 올렸다.
“존명.”
그는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다 말고, 다시 제갈량을 바라봤다.
“정청령, 하나만 물읍시다.”
“말씀하십시오.”
“정청령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습니까.”
제갈량은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안다는 말은 조금 그렇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점쳤다고 해두지요.”
“…알겠습니다.”
내군경 손관은 당장 병력 삼만을 꾸려 환구로 급히 향했다. 제갈량은 굳은 표정으로 차를 마셨다.
제갈량의 계획은 단순히 조조와 마등을 무력화시키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신왕부가 안정적으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천자 유총의 멸망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천자를 무너뜨리는 것은 힘이 부족해서 어렵다기보다는 명분이 부족해서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명분을 얻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천자가 충분히 신왕부를 토벌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렇다면 선제공격을 해올 것이고 신왕부는 여기에 어쩔 수 없이 대응하는 모양새로 명분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명분 따지기를 좋아하는 신왕부의 선비들도 감히 뭐라 운운하지 못할 터.
또한 사마의와 유총을 한꺼번에 제압하면서 천하의 화평을 향해 한걸음 성큼 다가설 수 있게 될 터.
한중.
서촉, 삼파, 한중, 익주삼도독을 거느린 가후는 마침내 출정했다. 량왕부를 정벌한다기에 도독들은 모두 서량을 정벌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가후의 생각은 그들의 예상을 빗나갔다.
“동쪽으로 갑니다. 서성, 상용을 경유하여 방릉을 통해 양양을 거쳐 송경 천자 유총의 강역으로 들어갑니다.”
가후의 말에 세 도독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북진하여 장안의 장합을 압박한 후 서량을 정벌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찌하여 천자의 강역을 노린단 말씀입니까.”
장료의 물음에 가후가 대답했다.
“어차피 장합은 한동안 장안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서량 역시 별개의 병력을 운용할 여력이 없지. 주력이 머물지 않아도 한중은 안전할 것이오. 그러나 내지가 퍽 위험해져서 말이오.”
“내지가 위험하다니요!”
“장안 남쪽에 심어두었던 척후가 보고해왔소. 사마의가 동쪽으로 가는 시늉을 하더니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천자가 사마의와 병마를 합하여 합비로 들어오는 것이 분명하오.”
“그, 그런……!”
“사전에 정청령과 논의가 된 바이올시다. 만일 사마의가 정직하게 동쪽으로 나아가 조조와 합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북진하여 장안의 장합을 압박하고 서량을 토벌하기로 했소. 그러나 사마의가 천자와 합하여 합비로 들어오고자 한다면, 우리는 급히 기동하여 사마의의 뒤를 쫓아 천자를 토벌하기로 말이오.”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신 부분입니까?”
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생각을 나누었소. 그러나 조금이라도 우리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천자와 사마의를 동시에 잡을 수 없으니까. 또한 조조를 상대하려면 대군을 차출하는 것이 불가피하니까. 합비에 예비군을 남겨 내군경으로 하여금 환구에서 적을 틀어막고, 내군경이 적을 제어하는 사이 우리가 송경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적을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밀어 넣기로 했소.”
“허면 여 태위는……”
여포를 오래 모셨던 장료가 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위 여포를 송경으로 보냈던 것은 다분히 기만술의 일환이었다. 여포를 송경에 보내두면 천자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물렁한 판단을 신왕부가 내렸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그러나 가후는 곧이곧대로 장료에게 일러줄 의사가 없었다.
가후가 그의 기색을 잠시 살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