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61
61. 표현
나는 그다지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특별히 자연을 싫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도시만 고집하지도 않았고. 그냥 별 관심이 없었다. 잿빛 도시든 초록빛 자연이든 그냥 지나가는 풍경에 불과했다.
휴도에 온 나의 오감은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활발해졌다. 지율이의 알껍데기 효과를 떠나서 실제로 느끼는 감각들이 그랬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느끼는 시원함, 코로 맡는 상쾌함, 어디에 시선을 두든 아름다운 풍경, 잠이 솔솔 오는 자연의 소리, 질릴 틈이 없는 식생활까지.
잠들어 있던 자연친화적 감각들이 눈을 떴다.
자연친화적이지 않았던 게 아니라, 알아갈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덩굴에 둘러싸여 완벽하게 휴도의 일부가 된 컨테이너는 아름다웠다.
“우와아…! 예쁘다아아아!”
더 이상 컨테이너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
“싹이가 한 거야?”
지율이가 묻자 싹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컨테이너를 둘러보던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벌써 완성된 느낌인데?”
“한참 멀었다. 내가 집을 지어주겠다고 했었지? 이곳이 뿌리이자 기둥이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따로 짓는 게 아니라 여기서 증축을 하자는 거지?”
“그렇다.”
뿌리이자 기둥이라. 싹이다운 표현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움은 좀 필요하다.”
“괜찮은 거 같은데? 그리고 도움이라니, 당연히 같이 해야지. 각자 방도 있으면 좋겠네. 땅도 넓은데 크게 짓자.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싹이는 우리를 슥 둘러보고는 중얼거렸다.
“다섯…….”
그러다 팜독 리더를 보고는 다시 말했다.
“여섯? 아니, 더 넉넉하게 짓는 편이 낫겠지. 상당한 에너지가 들 거다.”
“네 방도 지어야지.”
“내 방…?”
“응.”
싹이는 조금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내게는 따로 그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이 주변에 나와 어우러진 것들은 전부 또 다른 나다. 지금의 내가 너희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착각하는 모양인데, 굳이 공간을 더 만들 필요는 없다. 알다시피 나의 중심이 있는 곳에서 쉬면 되니까.”
“알고 있어.”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싹이는 스스로의 손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지금 형태는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한다.”
“뭐 어때.”
“뭐라고…?”
“네가 무슨 말하는지 다 알고 있어. 꼭 빨라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즐거우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중심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더 있으면 좋은 거고.”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말을 보탰다.
“맞아! 나도 쉬는 곳이 많아! 무룩이랑 침대에서 쉴 때도 있고, 바닥에 앉아 있기도 하고, 여기 의자에 앉아서 쉬기도 해! 다 편하고 좋아!”
“여러 곳…….”
싹이가 생긋 웃었다.
“굉장히 간단하게 말하는구나.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의 중심과 같은 공간을 또 만드는 건.”
“불가능한 건 아닌가 보네.”
내가 말하자 싹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고개까지 살짝 젖히며 웃었다.
“그렇긴 하다. 그래, 안 될 것도 없지.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만 들인다면…… 아마 시행착오도 피할 수 없을 거다.”
“그것도 결국 과정이지.”
인생이라는 게 기차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기차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굽이져 있는데,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고만 생각한다. 반듯하게 걸어왔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보면 굽이져 있고. 앞으로도 굽이질 테지.
살아가며 걷는 길이 굽이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외면할 뿐이다. 혹은 덮어두거나. 굽이짐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면 편해진다. 사실 굽이지고 아니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잠시 굽이지더라도, 비틀거려도, 멀리 빙 돌아가도, 가고 있으면 된다.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느림에는 미학이 있다. 앞이나 위만 보다가 놓치는 것들을 알게 된다. 놓칠 뻔한 더 소중한 것들 잡을 수 있다.
아삭.
싹이는 생각이 많아진 얼굴을 한 채 사과를 베어 물었다. 그러다 곁눈질로 지율이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지율이는 멍하니 싹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먹고 싶어?”
싹이가 사과를 들어 보였고, 지율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먹고 싶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먹는 거 보니까 맛있어 보이기는 해.”
“먹고 싶다는 거지?”
“근데 없어.”
지율이가 비어 있는 양손을 보라는 듯이 들어 보였다.
싹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텃밭으로 다가섰다. 키가 작은 사과나무로 손을 가져가자 순식간에 사과 하나가 맺히더니 빨갛게 익었다. 싹이는 사과를 따서 지율이에게 건넸다.
“여기.”
“고마워!”
지율이는 양손으로 받아든 사과를 곧바로 한 입 먹고는 활짝 웃었다.
“맛있어!”
싹이는 지율이를 보며 미소를 머금고 있다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무룩이와 곰곰이, 삐삐가 나란히 서서 가만히 싹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빛에 담긴 또렷한 메시지.
‘우리는?’
싹이는 사과나무 쪽으로 몸을 틀었다.
“너희도 원하느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귀여운 목소리가 세 번 울렸다.
“냥!”
“곰!”
“삐!”
싹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사과나무로 손을 옮겼다. 순식간에 잘 익은 사과 네 개가 맺혔다.
“먹거라.”
싹이는 무룩이, 곰곰이, 삐삐에게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내게 툭 던졌다.
와작.
나는 사과를 곧장 한 입 크게 베어 물고는 물었다.
“괜찮아?”
“무엇이 말이냐?”
“이것도 에너지 쓰는 거 아니야?”
“그렇다. 너희가 나를 도와줬듯이, 나는 이 사과나무를 도왔다. 그리고 이 사과나무의 결실을 너희에게 줄 수 있었지.”
싹이는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제대로 가는지가 더 중요하겠지. 이 정도 에너지 소모는 아무것도 아니다.”
“싹아!”
지율이의 기운찬 목소리에 싹이가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
“……나도 고맙다.”
지율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왜? 집도 예쁘게 해주고, 사과를 준 것도 다 싹이인데?”
“그냥… 고맙다.”
작은 거라도, 별거 아니라도, 조금 낯간지러울지라도, 고맙다는 마음이 들면 그때그때 표현하는 게 좋다. 표현의 빈도를 줄인다고 해서 무게가 실리지는 않는다.
“고마워.”
내가 웃어 보였고,
“다시 말하지만, 마찬가지로 고맙다.”
싹이도 웃었다.
* * *
살면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휴도에 오고 나서가 처음이었다. 자급자족을 위해 여러 가지를 골랐고, 마법의 텃밭 덕분에 쉬웠다.
만약 평범하게 식물을 키워야 한다면, 내가 고려할 첫 번째 요소는 생명력이다.
오래 살고, 신경 쓰지 않아도 번성할 줄 아는 게 좋다.
물을 자주 줄 필요도 없고, 뿌리를 퍼트려 물도 알아서 찾아 먹고, 잡초와의 경쟁에서도 이기고, 겨울에는 혼자 월동도 할 줄 아는 수준을 원한다.
“걱정하지 마라. 질긴 녀석들이니까.”
싹이는 컨테이너를 감싸고 있는 덩굴들을 보며 말했다.
“혹한이 다가와도 알아서 견디고 다시 따뜻해질 때 일어날 녀석들이다. 줄기를 잘라도 햇빛과 물만 충분하다면 뿌리를 뻗고 새로 자랄 것이다.”
“그래? 엄청 튼튼하구나?”
“그렇다. 꽃과 열매를 맺지는 못하지만, 쾌적한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열매야 텃밭에서 수확이 가능하니까.”
“집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논의하도록 하지. 나는 이만 돌아가서 쉬어야겠다.”
싹이는 지율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또 보자.”
“응! 싹이 잘 가!”
그렇게 싹이가 돌아갔다.
자연친화적으로 변한 컨테이너는 보고만 있어도 상쾌했다. 이제는 임시거처가 아닌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 일러스트 같기도 했고.
휴도와 가장 어울리지 않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가장 어울리는 곳 중 하나가 된 듯했다. 내부 인테리어는 손을 좀 보긴 해야겠지만. 이 부분도 싹이의 도움을 받을 예정이었다.
도움을 마다할 생각은 없다. 고마우면 그에 대해 표현하고, 보답하면 되는 일이다.
“프앙!”
팜독 리더가 경례를 하듯 앞발을 움직였다.
“그래, 수고.”
내가 경례를 하자 지율이도 손날을 세웠다. 손끝이 눈썹 옆으로 향했고, 손날은 빳빳한 게 각이 제대로였다.
“수고!”
“프앙!”
팜독 리더는 그제야 돌아갔고, 나는 곧바로 아침식사 준비를 했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네.”
이른 아침에 낚시를 하고 돌아왔고, 어느새 낮이 가까웠다. 해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따뜻한 미소를 짓는 게 확실히 그랬다.
“배 많이 고프지?”
나의 물음에 지율이는 주먹을 꼭 쥐어 보였다.
“괜찮아! 견딜 수 있어.”
“많이 고프긴 하구나.”
“사과 하나로는 부족해.”
왕대갈우럭과 은문어 둘 다 먹을 생각이었다. 은문어가 조금 작은 편이라 상품성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먹는 게 남는 거기도 하고.
왕대갈우럭은 통구이로 준비하고, 은문어 손질을 시작했다.
“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은문어에게서 제법 커다란 은물주머니가 나왔다.
“최소 300은 받겠네.”
예상치 못한 횡재에 기분이 좋아졌다. 은물주머니를 따로 챙겨둔 뒤, 은문어는 전부 토막을 쳤다.
오늘은 볶음을 할 생각이었다. 원래는 조금 매콤하게 만들지만, 지율이와 함께 먹을 것이기에 안 매운 고춧가루도 따로 준비했다.
양파와 대파를 큼직하게 썰어두고, 달군 팬에 은문어를 넣는다.
치익, 치이익…!
물을 넣지 않아도 은문어가 품고 있던 수분이 빠져나오며 물로 볶는 격이 된다. 사실상 데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겉이 살짝 익은 은문어를 건져내고, 팬에 남아 있는 물을 그대로 사용한다.
은문어에서 나온 물이니 문어의 육수 그 자체, 진국 중의 진국이다.
고춧가루, 고추장, 다진 마늘, 후추, 참기름 그리고 허니포켓을 넣는다. 허니포켓이 없으면 설탕과 올리고당 등으로 대체한다.
양념을 졸이자 매콤달콤한 향이 퍼지며 군침을 자극한다. 이대로 양념에 밥만 비벼서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맛있는 냄새!”
지율이가 다가와 고개를 들이밀었다.
“냄새 좋지?”
“응!”
“조금만 기다려. 금방 맛있게 해줄게.”
양념에 양파와 대파를 넣고 살짝 볶다가 은문어도 넣는다.
아까 볶았어도 은문어는 또다시 수분을 뿜어낸다.
은문어 특유의 고소하고 깊은 맛이 매콤달콤한 양념에 섞여 조화로운 맛을 낸다.
그 사이 왕대갈우럭도 익어가고 있었는데,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일반적인 우럭과는 다르게 손질이 좀 더 많이 필요하다.
가시와 지느러미, 비늘을 제거하고, 내장을 제거하는 것은 같다.
왕대갈우럭이라는 이름답게 머리가 커다란 만큼 살도 많다. 머리를 몸에서 분리시키고 해체해야 한다. 특히 볼살과 턱살은 손으로 두툼하게 잡힐 정도인데, 완전히 다른 식감을 자랑한다.
“먹자아!”
매콤달콤한 은문어볶음과 왕대갈우럭구이 완성.
채소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로메인, 치커리, 양상추로 샐러드도 만들었다.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만 조금 뿌려도 제법 맛있는 샐러드가 된다.
하지만 한식에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아 올리브유 대신 들기름을 뿌렸다.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몸에도 좋고 맛도 훌륭하다. 비싸서 문제지.
“잘 먹겠습니다아아아!”
지율이는 배가 고팠는지 곧장 수저를 들었다.
“많이 먹어.”
나도 꽤 배가 고팠지만, 일단 지율이부터 챙겼다.
“이거 먹어봐.”
맵지 않은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썼지만, 지율이에게는 자극적일 수도 있어서 걱정됐다.
지율이는 밥 한 숟가락에 문어볶음을 올리고 입에 넣더니 눈을 크게 뜨며 배시시 웃었다.
“맛있어!”
“그래? 안 매워?”
“조금 뜨거워.”
“뜨겁다고?”
“응! 입 안이 뜨끈해. 근데 괜찮아. 맛있어!”
매워서 화끈거리는 느낌을 말하는 듯했다. 아직은 조금 더 순하게 만들어야겠다.
“이거 많이 먹어.”
이번에는 왕대갈우럭의 볼살을 먹였다.
오물오물 씹던 지율이가 양손을 뺨으로 가져갔다.
“맛있어!”
“그래? 얼마나 맛있어?”
“어어어엄청! 입 안에서 흩어져! 아빠도 먹어!”
볼살은 결대로 금세 흩어질 만큼 부드러웠다.
“맛있네.”
나는 웃으며 지율이의 밥그릇 위에 턱살을 올려줬다.
“이것도 먹어.”
“우와아.”
지율이는 조금 전보다 열심히 씹고는 눈을 크게 떴다.
“엄청 맛있어!”
“그래?”
“응!”
턱살은 마치 조개관자처럼 쫀득했다.
지율이는 가리지 않고 샐러드도 와구와구 잘 먹었다.
“맛있다냥!”
무룩이에게도 왕대갈우럭의 살점을 크게 한 토막 내줬다.
“고오오옴!”
가리는 게 없는 곰곰이는 당연히 다 잘 먹었다.
아삭아삭아삭아삭.
삐삐는 드레싱을 하지 않은 샐러드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건강하고 즐거운 식사를 마치자 지율이가 벌떡 일어났다.
“주스!”
“주스 먹고 싶어?”
“응!”
“잠깐만 기다려.”
“아니야!”
“응?”
“내가 가지고 올게!”
작은 일이지만 스스로 하려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지율이는 후식으로 주스를 마셨고, 곰곰이와 삐삐는 허니포켓 한 송이를 나눠먹었다.
평소에 나는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챙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식사가 조금 부족하다 싶을 때나 후식을 찾았는데, 그마저도 대부분은 믹스커피였다.
씁쓸함보다는 단맛이 훨씬 강하게 남아 입에 쩍쩍 달라붙는 믹스커피 특유의 맛이 떠올랐다.
그냥 커피도 좋다. 커피 맛을 아예 몰랐을 때는 그냥 쓰다고만 느꼈다. 주니까 먹었다. 정신이나 좀 들라고. 아니면 시럽맛으로 먹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메리카노에도 다양한 맛이 있는 걸 알게 됐다. 구수하기도 하고, 스모키한 향이 진하거나, 산미가 강하고, 은은한 단맛이 있기도 했다.
조만간 강척에 가면 커피를 사 와야겠다.
“앗! 빠아, 저기!”
지율이가 검지를 세워 사선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 왜?”
“고래!”
“고래?”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하자 볼펜으로 점을 하나 찍은 듯이 하늘혹등고래가 보였다.
“하하하하, 저건 어떻게 봤대.”
“쟤는 엄청 작네.”
“너무 멀어서 그렇지.”
“가까이 오면 엄청 클 수도 있나?”
“그럼. 아마 엄청 커다랄 거야. 엄청 멀리 있는데도 보이니까.”
지율이가 양손을 모았다.
“소원 빌어야지.”
“너무 멀리 있어서 소원이 통하려나 모르겠네?”
“커다란 고래니까 소원도 잘 들어줄 거야.”
“하하하, 그래.”
지율이는 잠시 눈을 감고 양손을 모은 채 기도했다. 나는 지율이의 모습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절대 잊지 않도록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으며 되새겼다.
“다 했어.”
다시 눈을 뜬 지율이가 나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무슨 소원 빌었어?”
“비밀이야.”
“에이, 말해줘.”
“소원은 말해주는 거 아니라던데.”
“우리 둘은 괜찮아.”
“우리 둘만?”
“가족들은.”
지율이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무슨 소원 빌었어?”
“아빠 소원.”
“응?”
“아빠 소원 이뤄지게 해달라고 빌었어.”
가슴속이 따뜻하고 묽은 반죽이 된 기분이었다.
“어휴, 우리 딸.”
나는 지율이를 꼭 끌어안았다.
지율이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빠아 냄새 좋아.”
지율이가 더 강하게 얼굴을 들이밀었고, 나는 하하 웃으며 살짝 몸을 뗐다.
“얼굴 납작해질라.”
“안 납작해져!”
그때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울렸다.
‘잠깐만’이라고 말하려는데 지율이가 먼저 고개를 뒤로 빼며 입을 뗐다.
“빠아, 전화!”
“응, 받을게.”
전화를 건 사람은 도라경 밑에서 일하며 현백이의 수행원을 맡고 있는 구정석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김토일 님. 저 구정석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보실 수 있습니까?
먼저 만나자는 요청은 처음이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