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91
청풍표국 최강식객 091화
91화. 진천비무제(4)
“소림일성(少林一星) 홍천(紅川). 걸출한 후기지수지.”
비무대가 멀리 보이는 소주제일루의 상층부 특실에 신성대연을 위해 온 상단의 주요 인사들이 반주를 곁들여 호화로운 음식을 앞에 두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다들 어느 정도의 무공을 익힌 이들이라 안력을 집중하면 비무를 구경할 수 있었기에, 이곳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오래전부터 예약이 되어있었다.
이미 신성들에게 안부 인사는 하고 나왔기에 굳이 굳이 먼지 나는 곳에서 일반인들과 섞여 비무를 구경할 이유가 없었다.
“보통 소림에서 신성을 배출하는 일은 아주 드물거든? 소림의 무예 특성상 꽤 긴 시간의 단련과정이 필요해서, 젊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일은 매우 드물지.”
그들 중에서도 배가 두툼하게 나오고 턱이 접힌 얼굴이 하얀 중년인의 말에 다른 이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래서요, 대인?”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한 기녀가 옆에서 아양을 떨었다.
그는 바로 태호상단의 왕만금.
딸을 먼저 들여보낸 뒤 자신을 따르는 다른 상단주들과 함께 소주제일루로 와 있었다.
극락관으로 가자는 말도 있었으나, 부득불 자신이 우려 여기로 온 것이다.
“음. 근데 말이지 웃긴 게 뭔지 아는가? 그 단련 기간을 성실히 끝낸 소림의 승려는 뻥 뚫린 관도를 내달리듯 쑥쑥 성장한다는 말이지. 그래서 결국엔 천하제일인을 많이 배출한 곳 또한 소림이거든.”
기녀가 입에 넣어주는 나물을 우적거리며 왕만금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불문율을 깨고 아직 이립이 되지 않은 나이에 진천성의 일원이 된 사람이 바로 지금 비무대 위에서 합장을 하고 있는 홍천 스님이야. 그분의 천재성은 실로 소림 전체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기에 충분했지.”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중년인이 끼어들었다.
“저도 들었습니다. 이미 소림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기재라는 말인데, 이미도 소림의 모든 무학을 섭렵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 그런데 그 소림의 홍천도 사대성 안에 못 들었으니 현 후기지수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냐는 말일세.”
“그럼 이번 비무는 당연히 그 홍천 스님이라는 분이 승리하겠네요?”
기녀가 옆에서 동그란 눈망울로 묻자 왕만금이 피식 웃었다.
“후후. 그럼 재미가 없겠지. 저 앞에 있는 공동파의 벽운이 또 보통이 아니거든. 과거 구대문파 시절, 곤륜파가 건재하고, 청성파의 위세가 드높던 시절에는 끽소리도 못 하던 공동파가 현재는 성세를 구가하는 것은 변황대전 당시 공동의 모든 무학을 집대성한 종사의 존재 때문이거든. 바로 공륜진인이라는 분이지.”
꼴깍꼴깍.
앞에 있는 술을 들이마신 왕 대인이 입술을 소매로 닦았다.
“그런데 그 공륜진인의 직계 사손이 바로 벽운이야. 공륜의 모든 절학을 그대로 이었다는 천재지.”
“아이참, 강호엔 왜 그리 천재가 많아요?”
기녀의 말에 왕 대인이 피식 웃었다.
“크큭. 네 말이 맞다. 사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수많은 천재를 꺾어야 하지. 말이 쉬워 장풍을 쏘니, 검기를 날리니 하지만, 실제로 그 단계까지 가는 이는 한 세대에 중원 전체로 따지면 한 줌도 되지 않아. 아무튼 벽운 또한 대단한 인재란 말야.”
“그럼 소주 제일 부자이신 왕 대인께선 이번 비무 어느 쪽에 거셨습니까?”
한 중년인의 말에 왕만금이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진천비무제가 열리면 가장 먼저 벌어지는 것이 바로 도박판이다.
상인들 역시 이 도박판에 참여를 하는데, 소주 제일의 거상 왕만금은 어디에 걸었는지 중인들은 심히 궁금했다.
“후후후. 글쎄. 자네는 어떻게 예상하나?”
질문을 던졌던 맞은편의 사내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왕 대인이니 말씀드리지요. 전 단목 공자에게 걸었습니다.”
“단목 공자?”
“예. 겉으로는 소가주 경합 중이라고 하지만 제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가주의 마음은 이미 단목 공자에게 기울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내려온 이유도 단목 공자의 우승과 함께 소가주에 임명하겠다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왕만금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그동안 알게 모르게 얼마나 지원이 들어갔겠습니까? 아무래도 후기지수들 사이에선 세가의 공자들이 성취가 빠르기도 하고, 지원도 많이 받았으니 가장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이번에 혈루쌍괴를 처단하고, 팽원호를 꺾었다는 무림일성은 어떤가?”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긴 하지만, 금방 팽 공자가 비무에서 진 것도 그렇고… 좀 뻥튀기된 소문이 아닐까요?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나타난 그가 진천비무제에서 우승까지 하리라곤….”
거기까지 말하던 사내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설마 왕 대인께선 무림일성 공자에게…?”
“후후후. 글쎄. 지켜보세.”
살에 눌려 눈동자도 보이지 않는 실눈으로 비무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승부가 났는지 환호성이 울리고 있었다.
수직과 수평. 서 있는 자는 벽운이었고, 누워있는 자는 홍천이었다.
“허어…. 이번 비무제는 이변이 속출하는군요.”
사내의 말에 왕만금은 가만히 수염만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임요성과 화산의 담명이 비무대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비쳤다.
* * *
“…….”
“…….”
둘 다 과묵한 이들이라 비무가 선언되고 나서도 둘은 말이 없었다.
스릉.
담명이 검을 뽑았으나 임요성은 칼손잡이의 머리 부분인 도두(刀頭)에 오른손을 올려둔 채 아무런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검을 뽑지 않소?”
결국 담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검이 아니고 도요.”
“음?”
쭉 뻗은 검집, 아니 도집을 보며 황보혁은 검이리라 생각했다.
강호에서 보통 도를 쓰면 박도나 대도 계열의 폭이 넓은 걸 쓰기 마련인데, 보기에도 약간 짧아 보이는 데다가 폭까지 좁아서 검이 아니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특이하군. 왼손잡이인가?’
임요성의 도집은 특이하게 오른쪽 옆구리에 달려 있었다.
만약 임요성이 왼손잡이였다면 모를까, 오른손잡이인 그가 오른쪽에 도집에 매달려 있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니 담명이 왼손잡이라고 생각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늘 긴장 속에 황제를 호위하는 임요성만의 버릇이었다.
늘 오른손을 도두에 올려두어 언제든 발도를 할 수 있도록 준비했기 때문이다.
즉, 발도를 할 땐 역수로 쥐고 뽑는다는 뜻이다. 물론 위급한 상황에서의 경우고 칼을 뽑고 시작할 때는 다르다.
지금도 임요성은 언제든 흑아를 뽑을 수 있도록 손잡이에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왼손잡이면서 오른손을 도두에 올려두고 있다니!
담명은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며 미간을 좁혔다.
화산 역시 도가 문파로 선도를 닦는 곳이다.
하지만 아무리 무공이 높아 후기지수 최강에 속한다 한들 그 역시 아직 이립에도 이르지 못한 피 끓는 젊은 청년이었다.
사대성 중 하나인 팽원호를 이기며 나름 작년의 치욕을 떨쳐냈다 생각했는데….
오늘 이후 진천십성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선배로서 후배를 따끔하게 가르쳐줘야겠다는 묘한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가겠소.”
슈아악!
암향표를 극성으로 밟으며 도착해 검을 내리그은 자리에는 임요성의 허상만이 있었다.
“이…형환위? 크윽!”
급히 뒤돌아선 곳에는 임요성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저, 저건 이형환위가 아닌가!”
시종일관 담담하던 노준경조차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이형환위(移形換位)! 마치 공간 자체를 이동한 듯 잔상을 남기는 초상승 경신법이었다.
보통은 화경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했지만, 간혹 비전의 경신법이나, 살수들 중에는 화경에 오르지 않더라도 가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그것도 이립도 되지 않은 청년이 구사하다니!
단목인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태사의의 팔걸이를 꽉 쥐는 바람에 팔걸이가 가루가 되어 있었다.
제갈백규는 입 속으로 파리가 들어갔다 나와도 모를 정도로 쩌억 벌리고 있었다.
진천성들 역시 편하게 먹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리는 등 평소 점잔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관중들 역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웅성거렸으나, 가장 놀란 건 바로 앞에 있던 담명이었다.
“이, 이럴 수가….”
“눈빛 속에 나를 업신여기는 모습이 보였소. 비무든 실전이든 상대를 얕보는 것은 가장 금기. 다시 해봅시다.”
“후우.”
담명 역시 걸물은 걸물. 즉각 마음을 다잡았다.
임요성의 눈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고맙소.”
살짝 고개를 숙인 담명이 검을 고쳐잡으며 자세를 낮췄다.
임요성 역시 이번엔 천천히 흑아를 빼 들었으나, 칼이 빠져나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굳이 칼을 뽑을 필요는 없었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는 담명을 존중해준 것이다.
쩡!
“크윽!”
“컥!”
귀를 그대로 때리는 도명(刀鳴)에 관중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실로 대단한 칼의 울부짖음에 그를 바라보는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임요성은 마지막까지 칼을 뽑지 않고 시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바로 인정하고 비무에 임하는 담명을 보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사실 황보혁을 보고는 진천성에 대해 약간의 실망을 한 그였다.
그래서 담명을 시험해 본 것이다. 하지만 담명은 황보혁처럼 끝까지 자신을 실망시키진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강호에 들어선 이상 저들과는 싫든 좋든 동시대를 살아야 할 강자들임과 동시에 한 세력을 이끌어갈 수장이 될 이들이다.
괜찮은 인물이라면 사귐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담명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사아아악!
검으로 반원을 그리는 담명의 눈동자가 무심을 담았다.
화산파는 기존의 도를 닦던 선도의 길을 가던 도가문파(道家門派)에서 파생된 화산검파가 시작이다.
오악검파라 불리며 점점 명성이 높아지자 무공을 추구하는 도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대거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다가 구파일방이라 불리는 강호 최정상의 자리에 군림하게 된다.
변황대전 이후 곤륜이 사라지고 강호팔문이 되긴 했지만, 그 성세는 구파일방 시절보다 거대해졌다.
화산의 무공은 변(變)과 환(幻)을 바탕으로, 각자의 깨달음에 따라 여러 다양한 길을 추구했는데, 담명은 변과 환에 쾌를 가미했다.
화려한 검법을 추가하려면 기본적으로 보법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암향표는 그런 화산검의 위력을 극대화해줄 보법이었다.
자신을 드러내려 안달하지 않는, 꼭꼭 숨어 있는 향기.
그 숨어 있던 향기가 한꺼번에 폭발하듯 비무대를 가득 채웠고, 넋 놓고 보고 있다가는 어느새 목이 잘려버릴 아름다운 검격의 꽃잎들이 임요성을 둘러쌌다.
차자자장!
임요성은 마치 폭풍우의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검격에 따라 꽃잎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꽃잎에 몸이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임요성이 만들어 낸 바람에 꽃잎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둔검인가.’
쾌검을 제압하는 방법은 오히려 그 반대인 둔검이라고 한다.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버린 초고수들의 싸움에선 눈으로 보고 움직이면 늦다.
경험과 직감으로 미리 공격의 방향을 예측해 차단함으로써 자신의 속도에 상대를 맞춰버리는, 그야말로 초고수의 방법.
하지만 임요성이 펼치는 것은 둔검의 방식이 아니었다.
쾌에 쾌를 더한 신속의 경지. 그렇기에 오히려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허허.’
임요성의 도법을 꿰뚫은 노준경이 내심 혀를 찼다.
‘이 대회 더 볼 필요도 없겠군.’
그의 생각을 증명을 하듯 허공에 담명의 검이 떠올랐다가 바닥에 꽂혔다.
착(着)의 묘리로 담명의 검을 자신의 도로 낚아 올린 것이다.
화려한 꽃잎이 임요성을 몰아쳐 갈 때만 해도 중인들은 이제야 그도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화려해서 수수해 보였고, 너무 빨라 느려 보였던 임요성의 칼은 화산의 담명에게는 너무나도 높은 벽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
군중들도 이제는 더 참지 못했다.
“무림일성은 진짜다!”
인정하지 않으려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임요성의 모습은 군중들을 열광에 빠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