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462
Chapter 230화.
태수도 이젠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수가 없었다.
“…….”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게 저들이 바라는 모습일 터였다.
그리고 노인들은 끝끝내 과거에 대해 함구했다.
이곳에 정착해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단 의미일 터였다.
태수는 그걸 확실히 느꼈다.
그것 만큼은 저들의 결정을 존중해야 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나중 일은 또 모른다.
왕 노인의 집에서 이미 결심한 게 있었다.
그건 훗날의 일이다.
지금은 모든 미련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눈발을 헤치며 헬기를 향해 달려갔다.
곧 밭에 내려앉은 헬기가 보였다.
“음?”
태수는 헬기를 보자마자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하얀색으로 도색하고 빨간 십자가를 덧칠해 놓았다.
환자 이송용이란 걸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태수가 놀란 건 헬기의 모양이었다.
프로펠러가 두 개 달려 있는 수송 헬기다.
저건 NGO헬기가 아니라 PKO헬기였다.
그럼?
좀 더 가까이 접근하자 특이하게 뒷문이 열려 있었다.
그렇게 활짝 열린 문의 양옆에 군인들이 기관단총을 들고 서 있었다.
방탄모가 아닌 공군용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태수의 눈썰미는 익숙한 이목구비로 샘 분대장과 라이언 병장임을 한 눈에 알아봤다.
“진짜네.”
날아오면서 무전했던 모양이었다.
헬기 안에 정민수와 김혁권이 올라탄 모습도 보였다.
파봐봐.
“윽.”
프로펠러가 만든 인위적인 강풍이 몰아쳐 왔다.
우려했던 상황이다.
대형 프로펠러가 두 개인 만큼 풍력도 엄청났다.
태수의 시선이 곧바로 마을 쪽으로 향했다.
풀썩, 풀썩.
지붕에 얹은 짚단이 거칠게 나부끼고 있었다.
일부는 벌써 날아가기까지 했다.
돌을 얹어 흙으로 틈만 메운 벽도 흔들거렸다.
동시에 몇 채가 같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집들이 망가질 터였다.
“그건 안 되지.”
타다닥.
태수는 헬기로 향하는 뜀걸음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목장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조심히 가세요.”
“고마웠습니다.”
커다란 로터소리를 비집고 인사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보자 강영훈과 김광현, 이만석 그리고 몇몇 마을사람들이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렇게 불쑥 떠나는데 대한 아쉬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길을 막지 않고 이렇게 활짝 열어주고 있었다.
태수도 시간이 없어 달려가며 인사했다.
휙휙.
두 손을 머리 위로 크게 흔들며 소리쳤다.
“또 오겠습니다.”
“기다릴게요.”
“건강하게 기다리세요.”
인사에 인사를 거듭하는 사이 목장을 지나쳤다.
그들과 순식간에 멀어지는 순간이 아쉬운 건 태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대화를 하면 하루 종일 걸려도 모자랄 이별이었기에 차라리 이게 좋았다.
그렇게 헬기에 더 접근하는 사이였다.
척.
전노식 촌장이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태수의 길을 막지 않고 옆으로 비켜서서 말했다.
“집 걱정 말고 잘 다녀와.”
“네. 잘 다녀오겠습니다.”
태수는 인사말을 건네고 그대로 지나쳐갔다.
그제야 헬기 뒷문이 훤히 보였다.
샘 분대장이 문을 붙들고 안쪽으로 손짓했다.
“닥터 최, 빨리.”
“오케이.”
타다닥.
태수는 모든 미련을 내려놓고 앞만보고 달렸다.
그대로 수송헬기에 올라탔다.
탑승과 동시였다.
푸다다다.
헬기가 바로 수직 상승하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보자 모두 올라탔고 뒷문까지 닫혀 있었다.
얼마나 훈련을 많이 받았는지 날렵함이 놀랍고도 신기할 정도였다.
‘육군인줄 알았는데 공군이었나?’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건 나중에 물을 문제다.
태수는 재빨리 헬기 창문으로 향했다. 이미 정민수와 김혁권이 자리를 잡은 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척.
태수가 나란히 살폈다.
핼기의 고도가 빠르게 높아지며 마을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늘에서 보니 손바닥으로도 가려질 정도로 작은 마을이란 게 실감이 났다.
오랜 시간 머물었던 만큼 갑자기 떠나는 아쉬움도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감상에 젖었던 태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어?”
그건 옆에 있는 정민수와 김혁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그 놈의 정이 뭔지.”
짤막하게 한 소리씩 내뱉는 소리가 로터음에 가려져 자그맣게 들려왔다.
그런 세 사람의 놀란 표정은 곧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아래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하늘로 손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펄펄 내리는 눈도 개의치 않고 있었다.
세 사람도 곧 헬기 창문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손 인사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됐다.
수송헬기의 상승력은 엄청났다.
푸다다다.
귀를 먹먹하게 때리는 로터음의 크기 만큼이나 빠르게 마을을 벗어났다.
세 사람도 창문에서 멀어졌다.
그제야 헬기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어? 와.”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내부가 마치 응급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단단히 고정시켜 놓은 ECG와 인공호흡기. 그리고 커다란 서랍장도 있었다.
둘러보는 사이였다.
샘 분대장과 라이언 병장, 그리고 또 다른 부대원인 안토니 일병이 각각 수건과 헬멧을 건넸다.
헬멧은 그들이 착용한 거와 같은 종류였다.
세 사람은 빠르게 수건으로 축축한 머리카락과 얼굴을 대충 훑고 헬멧을 착용했다.
턱턱.
헬멧을 두들겨 착용했단 신호를 보임과 동시였다.
샘 분대장이 뭐라고 말을 하는데 그 목소리가 헬멧 안에서 들려왔다.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헬멧으로 말하는 겁니까?”
“네. 근거리양방향통신 장치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역시 문명은 다르네요.”
태수가 이상한 감탄을 말했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 정민수와 김혁권은 격하게 동감했다.
“방금 수건도 엄청 부드럽고 뽀송뽀송 했어.”
“현대문명란 건 참 편리한 게 많네요.”
그저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한인 마을에서 생활은 문명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 머물렀다.
오랜만에 접하는 첨단 문물에 감탄하는 게 당연했다.
반면 같이 듣고 있는 샘 분대장의 표정은 여전히 군어 있었다.
항상 미소를 보여주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눈치 챈 세 사람도 같이 입을 다물었다.
“…….”
“…….”
투다다다.
헬기 내부는 로터음만 가득했다.
분위기가 한층 차분하게 가라앉은 후였다.
태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인사말은 아니었다.
당장 인사할 분위기로 적합하지 않았다.
이젠 응급환자에게 집중해야 할 순간이었다.
그 우선순위대로 목적지와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히 어디로 가는 거고, 또 부상자는 몇 명입니까?”
“이동 거리는 짧아서 곧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부상자는 두 명입니다.”
“어떻게 다쳤답니까?”
태수의 이어진 질문에 샘 분대장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정확하지 않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등반인원은 총 3명. 그 중 연락을 해온 건 가이드였습니다.”
“네.”
태수가 머릿속에 담으며 추임새를 넣자 샘 분대장이 이어서 보고했다.
“가이드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커다란 울림이 들려왔고, 자리로 돌아가 보니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럼요?”
“둘러보다 발견했는데 낮은 절벽 아래로 떨어진 거 같다고 합니다.”
그 소리에 태수 미간이 확 좁아졌다.
절벽 아래로 추락.
그 위험성에 대해선 태수가 직접 목격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의 일이라 지금도 가슴이 들썩였다.
“흐음.”
태수의 낮고 깊은 숨소리에 정민수가 힐끔 쳐다봤다.
“왜 그래?”
“아니야. 샘, 그 다음은요?”
태수가 묵직한 시선으로 묻자 샘 분대장의 목소리도 한층 더 낮아졌다.
“가이드가 무전기로 부르자 대답은 했답니다. 그런데 온몸이 아파서 움직이지를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온몸이 아프다, 혹사 그게 끝입니까?”
“아닙니다. 눈 위로 피가 흩뿌려진 걸로 봐서 어느 정도 출혈이 있는 부상이라 추측 된다고 합니다.”
“또 있습니까?”
태수의 물음에 샘 분대장이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고, 가이드는 절벽 아래라서 내려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언제 처음 연락을 받은 겁니까?”
“현 시간을 기준으로……. 2시간 34분 정도 지났습니다.”
샘 분대장이 전자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그때 정민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에는 궁금한 게 있어도 태수를 통해서 말했을 터였다.
그러나 짧지 않은 시간 정민수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오늘은 직접 물었다.
“샘, 잠시만요. 제가 처음 샘하고 무전한 시간하고 안 맞는데요?”
“닥터 정. 그건 저희도 출발하고 연락 받아서 그렇습니다.”
“중간에 헬기로 갈아탔다는 말씀이네요.”
“그 전후로 계속 무전을 보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소리에 질문하던 정민수가 슬쩍 목을 움츠렸다.
“그때 제가 소식을 전하고 혹시 빠진 게 있는지 살피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상황에선 절대 자리를 비우면 안 됩니다. 앞으로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크흐흠. 네. 알겠습니다.”
정민수는 스스로 한 일이 있어 사과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김혁권은 아니었다.
“샘, 잠시만요. 그럼 중간에 헬기로 바꿔 탔다면, 그 차량들은 누가 인솔해서 오는 겁니까?”
“구스피아 상병이 인솔자고, 닥터 조나단과 닥터 월릭이 합류한다고 들었습니다.”
“닥터 조나단하고 닥터 월릭?”
김혁권이 그 이름들을 되뇌며 태수에게 시선을 뒀다.
태수도 너무 익숙한 이름들이라 샘 분대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분들이 움직이신다고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회수 작전 후에 각자 파견지로 이동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겁니까?”
태수의 질문이 이어지자 라이언 병장이 대신 나서서 답했다.
“대외협력부 작전현황판에 총 7군데 의료봉사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동시다발적이라.”
“PKO의 가용한 최대 병력을 분산해 호위작전을 펼친다고 했습니다.”
“그 만큼 전황이 안정됐다는 소리 같습니다.”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된 대도시와 군소도시 위주입니다. 그 외에 지역은 아직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두 분은…….”
태수가 말꼬리를 슬쩍 늘렸다.
그 소리에 샘 분대장이 다시 반응했다.
“우선 마을에 들려 부족해진 의약품을 보충하고 구호식량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감사한 일이네요. 그런데 정확한 위치를……. GPS송신기가 있네요.”
태수가 알아서 판단하자 샘 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걸 토대로 추적해 가고 있습니다.”
“다용도로 쓰이는 게 참 좋은 거 같습니다.”
“크흠.”
샘 분대장이 갑자기 슬쩍 헛기침을 했다.
그 의도를 태수와 두 사람은 바로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