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2
제192화. 각자의 계획
에헤른 왕성 지하.
차시연과 이사벨의 만남을 주선한 현자들은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 것에 흡족하긴커녕, 오히려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무표정으로 있는 산테를 보며 카리타스가 물었다.
“이보게 산테. 정말 차시연을 그 마족과 만나게 해도 되겠는가? 정령 마법이면 우리한테도 매우 까다로워. 알지 않는가? 애초에 정령들은 성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괜찮네. 적어도 차시연이 마왕 이외의 마족에게 죽을 일은 없을 거야.”
“무슨 근거라도 있는 겐가?”
파티엔의 물음에 산테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뭔가 이상하단 생각 안 드나? 100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마왕이란 놈들은 하나같이 싸움에 목을 매고 있어. 왜 그럴까?”
“그야 넘치는 힘을 감당하지 못해서 아니겠어? 말하자면 욕구 해소겠지.”
“만약 그 욕구를 풀지 못하게 된다면?”
카리타스와 파티엔은 잠시 눈동자를 굴려 서로를 보다가, 다시 산테를 보았다.
“그 벨져란 마족이 그랬지? 자기를 만족시켜 달라고. 내가 볼 때 싸움은 저들의 장점이자, 약점이네. 그리고 그 약점을 공략할 열쇠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자들은 인계의 질서를 지키고 싶어 하면서는 정작 앞으로는 나서려 하지 않는,
뒤에서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풀 비열한 계획들을,
“차시연이 쥐고 있을 걸세.”
계속해서 쌓아가는 중이었다.
* * *
부르크 왕국의 수도 에헤른으로부터 상당 거리 떨어진 호수지대.
찻잔 두 개가 있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차시연과 이사벨 두 여인이 마주 보고 있다.
서로의 뒤엔 이 대면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레이든 왕자와 바루타할 3세의 수행단이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 거리에서 각각 대기 중이었다.
둘은 첫 인사말을 나누고, 약 5분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이사벨이 먼저 침묵을 깨고 대화를 재개했다.
“인간들이 왜 당신을 유일한 희망으로 믿고 있는지 알겠네요.”
“무슨 말이죠?”
“당신의 내면에 깃든 잠재 가능성이 무척이나 뛰어나단 뜻이에요. 여태껏 내가 본 인간, 아니 마족 전체를 통틀어서…….”
이사벨의 말엔 조금의 웃음기도 담기지 않았다.
“이대로 뒀다간, 정말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당신들이 당신들 땅에서만 온전히 산다면, 제가 위협이 될 일도 없습니다.”
“누가 들으면 우린 위협하려고 온 줄 알겠네요? 저 뒤에 덜떨어진 왕도 그렇고, 당신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우린 이 불편한 땅을 파괴하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게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100년 전처럼, 그저 싸우고 싶어서 온 것이겠죠. 그 욕망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면, 그 분풀이는 고스란히 레지에타가 감당할 것이고요.”
심기가 다소 불편해진 이사벨은 팔꿈치를 테이블에 얹은 채, 시연의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혹시 그거 알아요? 벨져는 우리 마족 중에서도, 싸움을 가장 싫어하는 마족이에요.”
굳어 있던 시연의 미간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모든 일을 힘으로 처리해도 모자랄 판에, 평화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상향을 추구하면서, 항상 자기만을 희생시키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내가 인정한 이 마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예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거죠?”
“분풀이 같은 허접한 욕망 따위에 굴복한 남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벨져는…….”
흥분했음을 인지한 이사벨은 바로 표정을 바꿨고, 도도하게 차를 음미했다.
한 입 마시다 말고,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여기 인간들은 찻잎 우리는 거부터 다시 배워야겠네요.”
나름 레지에타에서 제일 귀하다는 찻잎으로 우린 차였지만, 이사벨에겐 최악의 맛이었다.
“뭐, 사실 내가 당신과 만나서 딱히 나누고픈 이야기는 없었어요. 그냥 메이 양이 말했던 벨져가 투기를 해소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존재가 어떤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래서 만족하셨나요?”
“가능성은 봤으니, 나쁠 건 없었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 한시라도 더 빨리 강해지세요. 시연 양.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늦어지기 전에….”
이사벨의 말을 듣던 시연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방금 그 남자는 싸움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남자라고 하셨는데, 투기를 해소해야 한다는 건 무슨 말이죠? 싸움을 갈망하는 욕구 같은 건가요?”
“뭐야? 설마 모르는 거예요? 벨져가 당신이랑 왜 싸우려 하는지?”
알 리가 있는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벨져에 관해선 일절 제대로 들은 게 없는데.
두 여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잠시 동안 눈을 끔뻑이며 쳐다만 봤다.
“대체 셋이서 그동안 뭘 한 거야?”
이사벨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 당사자가 있는 마크리아 평원 쪽을 바라봤다.
-쨍그랑!
그때, 이사벨의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잔이 깨진 것에 놀랄 틈도 없이, 그들의 주위로 정체 모를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시연이 벌떡 일어나 주변을 경계했다.
-쿠구궁!
양쪽의 수행단도 놀라긴 마찬가지.
미약한 울림에 불과했던 진동은 어느새 균형을 잡기조차 힘들 정도의 지진으로 변모했다.
정작 이사벨은 앉은 자세를 유지하며 덤덤히 눈동자만 굴렸다.
시연이 따지듯 물었다.
“뭡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죠?”
“말했잖아요. 시간이 별로 없을 거라고.”
이사벨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런 양쪽 수행단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렇게 멍하니 있을 시간 없을 텐데요? 멸족당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이세요.”
-파직!
이사벨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 위 하늘에서 공간 균열이 일어났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광경에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균열은 하나로 끝나지 않고, 빠르게 증가했으며 머지않아 하늘 전체를 잠식했다.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나 싶은 순간,
-후후웅
균열 속에서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었다.
소용돌이 안에선 거대한 빛이 감돌았으며, 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푸르름이 가득했던 하늘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여졌다.
이사벨은 시연을 비롯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인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필사적으로 싸우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 게이트에서 나온 답 없는 종족들이 이 땅을 정말로 파멸시킬 테니까.”
곧 오픈 준비가 완료된 게이트 안에선, 붉은 날개와 거대한 꼬리를 지닌 수많은 용마족들이 식탐에 젖은 침을 뚝뚝 흘리며 나타났다.
* * *
게이트는 이사벨과 시연이 있는 부르크 왕국만이 아닌, 레지에타 대륙에 걸쳐서 나타났다.
그중에는 세나가 있는 나루엔 바다와 루비아, 미켄 남매가 있는 체플리카 산맥도 있었다.
루비아는 게이트로 가득 찬 하늘을 보며 감탄을 질렀다.
“그러고 보니, 저 용마족들은 100년 전에도 인계에 와서, 마족들이랑 같이 싸우진 않았다고 했지? 왜 그랬을까?”
미켄이 답했다.
“들리는 소문으론 그때 싸우려곤 했는데, 어떤 신성한 기운이 그들의 투욕을 꺾었다고 하네요?”
“투욕을 꺾어? 저 답 없는 종족들의 마왕 말고 고개를 숙일 존재가 있었다는 거야?”
“뭐 지나가는 순혈 드래곤이라도 있었나 보죠. 우리도 그때 리고 섬에서 봤지 않습니까?”
침을 팍팍 튀기며 벨져 일행을 막아서려는 용마족 일당은 불현듯 나타난 수호에 의해 한 방에 정리됐었다.
“그래도 이번엔 드래곤이 있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것 같진 않네? 쟤네 눈이 완전 맛이 갔어.”
“욕망을 먹어 치우는 게 저희 일 아닙니까? 기쁜 마음으로 해야죠.”
미소를 짓고 있는 미켄의 뒤로도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안에선 수십 명의 몽마족들이 남여 짝을 이루며 다정하게 나왔다.
입술을 어루만지며 만족스러운 듯 눈웃음을 지은 루비아는 몽마족들을 둘러보며 요염하게 말했다.
“자, 다들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와~!”
몽마족들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마족들에게 날아갔다.
“누님은 안 가십니까?”
정작 루비아는 움직이려 하지 않자, 미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난 딱히 관심이 없어서. 용마족의 정기를 어따 쓴다고? 우리 그이의 정기라면 모를까~!”
언제부턴가 벨져를 그이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은 이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 미켄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나루엔 앞바다.
세나는 항구 앞에 다리를 내밀고 앉아, 하늘 위로 생성되는 게이트를 덤덤히 바라봤다.
세나의 뒤엔 같이 보드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벌벌 떤 채, 세나의 몸을 껴안고 있었다.
“세, 세나 언니! 우리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세나는 그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안심시켜주었다.
게이트 안에선 용마족들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용마족 외에 다른 비행 마수들을 포함해, 심지어 바다 한가운데에서 생성된 게이트에선 해룡과 크라켄 등의 거대 바다 마수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세나는 무심한 표정을 이어가며, 머릿속에서 계산을 펼쳤다.
“어차피 바다는 카리브디스가 처리해줄 거고, 난 하늘에 있는 얘들만 맡으면 되나?”
“지상에 나타난 마수들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세나의 주위엔 어느새 나타난 제임스와 시종들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기 중이었다.
“재밌겠네…….”
흥미가 샘솟은 세나의 입으로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내 그녀의 발밑을 시작으로 나루엔 일대에 거대한 디버프 존이 형성되었다.
* * *
체플리카 산맥과 나루엔 바다에 이어,
게이트는 벨져가 있는 마크리아 평원에도 생성되었다.
“드디어 왔네.”
벨져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런 벨져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섰다.
“이게 당신이 원하던 일이었습니까?”
벨져는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대답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인 쪽에서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교만의 종주 씨?”
벨져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친 다일의 눈초리가 가늘게 좁혀졌다.
“용마족들에게 마계의 투기를 삼키게 해서 모조리 레지에타로 유도하고, 그렇게 폭주한 용마족들을 당신과 인간들이 상대하면서 그 투기를 전부 소멸시키겠단 계획……. 당신의 퍼밀리어에게서 처음 전해 들었을 땐, 정말 미쳤나 싶었습니다.”
“정확히 어느 부분이?”
“마족인 당신이 왜 인간들을 지키려 하죠?”
“그걸 왜 네가 지적하는지 모르겠네? 넌 그냥 내 뒤통수를 언제 칠지 간만 보면 되는 거 아니야?”
다일은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너 스스로도 날 제거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라고 생각해서 온 거겠지. 그래도 용케 용마족들을 꼬셔서 데려왔네? 그 추진력만큼은 칭찬할게.”
“추진력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죽길 바라던 마족은 저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파지직!
그때 벨져의 머리 위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이제껏 나타났던 게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심상치 않은 기류,
곧 게이트 너머에서 브레스가 쏟아지며, 누군가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아! 이 냄새, 매우 익숙하구나! 그놈이 여기 있는 것이야!”
포효에 이어 평원으로 고속낙하한 익숙한 용마족.
현 용마족의 대표이자, 식탐의 종주 그룸 굴라였다.
“당신을 향한 두려움을 없애주겠다는 말에 일 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마계에 있는 투기의 절반 이상을 혼자 흡수했습니다.”
“많이도 처먹었네…….”
포효를 이어가던 그룸은 벨져의 기척을 느끼고선 바로 몸을 돌렸다.
“여기 있었구나 벨져! 오늘이야말로 네놈을 먹어 치우고 내가 마왕이 될 것이다!”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에 벨져는 귀를 틀어막았다.
“조용히 있었을 때가 좋았는데….”
불평해봐야 소용없는 일.
벨져는 혀를 끌끌 대며 아크베리아를 뽑았다.
그다음엔 근처에 있는 수호에게 감응을 보냈다.
“수호야. 결계 잘 처져있지?”
“어. 너는 이제 이쪽 신경 끄고. 다른 곳 지키러 가.”
이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인 주제에 뒤처리를 넘기는 건 벨져에게 맞지 않았다.
목표로 했던 벨져를 보고 투기가 두 배로 상승한 그룸의 마혈석에서 거대한 빛이 일었다.
“오늘만큼 날뛰고 싶은 대로 날뛰어라. 앞으론 그럴 일도 없을 테니까.”
마력을 전승한 벨져의 검에서도 그룸의 빛 못지않은 강력한 빛이 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