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3)
53화. 아타락시아의 가주(家主) (2)
“1억…… 1억?”
“제정신인 건가. 저기에 1억을 쓴다고?”
“말도 안 돼.”
흥미로워 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미쳐 버린 액수에 경악하고 있었다.
이번 경매의 메인인 ‘어룡의 심장’이나 다른 미공개 보물들이라면 몰라도.
고작 체스판 따위에 쓰기엔 너무나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크윽!”
캐드릭이 깊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캐드릭은 진혁의 잔고를 파악했을 때만 해도 승리를 확신했었다.
남은 건 저 잡동사니를 갖고 진혁이 갖고 있는 정보와 교환하는 것뿐.
그래. 그렇게 흘러가야 됐다.
그런데 생각에도 없던 꼬맹이가 발목을 붙잡을 줄이야.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단 말인가?’
평범할 리는 없다.
100만이나 1000만이 아닌, 단숨에 1억으로 가격을 올려 버린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든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이미 7000만 달러나 쏟아 부어 쓰레기를 잔뜩 구입했는데, 이제 와서 멈춘다면 그 모든 것들이 돈지랄이 될 뿐이었으니까.
절대.
절대로…… 그렇게 되게 할 수는 없다.
“1억 1000!”
“1억 5000.”
“컥?”
이런 미친.
한 번에 4000만 달러를 올린다고?
무슨 경매를 저딴 식으로 하는 거냐.
아예 압살해 버리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지는 가격 점핑이다.
캐드릭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콧대가 짓뭉개진 탓이리라.
“1, 1억 6000….”
“2억.”
고심해서 따라 붙으면, 단숨에 거리를 벌린다.
그것도 따라기 버거울 만큼 말이다.
“스, 스승님! 더 이상은…….”
“닥쳐라. 고작 저딴 놈한테 진다면, 우리 꼴이 뭐가 된단 말이냐?”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다.
임무 실패는 물론, 협회의 이름에 똥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오냐. 좋다! 2억 1000!”
“3억.”
“3억 1천!”
“5억.”
“5, 5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개소리도 정도껏 해라! 게임 머니도 아니고 너에게 5억이란 돈이 있다는 걸 믿으란 것이냐!”
결국, 참다못한 캐드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슴이 연신 들썩였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건 완전히 팝콘 각이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혁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삼켰다.
사실 엘리스가 나서지 않아도 경매에서 원하는 걸 따낼 자신이 있었다.
‘아깝긴 하지만, 회랑에서 얻은 멀린의 지팡이 파편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았지.’
무려, 성유물 중 하나.
멀린의 지팡이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의 팬티를 전부 벗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래도 역시, 돈 싸움은 내 돈 말고 남의 돈으로 하는 게 제 맛이다.
이걸 위해 엘리스를 마인 놈들과 접촉하도록 내버려 뒀다.
엘리스라면 상대가 마인이고 나발이고 간에 할 말을 다 할 테고.
캐드릭 역시 상대의 도발에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둘 사이에 불꽃이 튄다면 자연스럽게 지금의 대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마인 협회가 능력도 있고 돈도 많은 건 알고 있지만…….
글쎄.
과연 시련의 탑의 상층을 지배하던 밤의 귀족 중 하나이자 아타락시아 가문의 가주보다 많을까?
진혁이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바로 그때 진행자가 끼어들었다.
“크흠! 큼! 노신사분의 말처럼, 혹시 잔고 증명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결코 숙녀분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경매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부탁드립니다.”
말이 5억 달러지, 이름이 알려진 기업의 임원들조차 평생을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액수였다.
헌데 기껏해야 중학생밖에 안 돼 보이는 외모의 소녀가 당당하게 내뱉어 대니 믿기 힘들 수밖에.
“증명?”
“예.”
“좋아.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엘리스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우우웅!
갑자기 엘리스의 어깨 위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붉은빛으로 요동치는 운무(雲霧).
“아공간…… 인벤토리?”
그렇다. 바로 만능 저장고라 불리는 아공간 인벤토리다.
“저 소녀. 플레이어였나?”
“이 정도 크기면 꽤나 상위급 같은데?”
“이거, 희귀한 걸 또 보는구만.”
손님들도 뜻밖의 광경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잠시 뒤, 엘리스가 공간 저 너머로부터 무언가를 꺼냈다.
수많은 보석들로 치장된, 화려하기 짝이 없는 왕관이었다.
“이번 경매에선 달러인지 뭔지 뿐 아니라 귀금속도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습니다만…….”
진행자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왕관을 뜯어봤다.
아무래도 진품 여부가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일단, 저희 쪽에서 감정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이런 일을 대비해 감정 능력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를 섭외해 두긴 했다.
감정사의 손끝이 희미하게 빛났다.
스킬을 발동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왕관을 살피던 감정사의 동공이 갑자기 급속도로 팽창했다.
“이, 이럴 수가…….”
격하게 흔들리는 목소리.
심지어 수전증에 걸린 것처럼 손도 떨렸다.
“왜? 역시, 가품인가?”
진행자가 다급히 물었다.
“아뇨. 진……품 맞습니다.”
“다행이군. 그래서 자네 평가로는 이 왕관은 어느 정도지? 정말로 5억 달러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게. 답변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감정사가 곤란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답변하기 힘들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이 왕관에 사용된 세공 기술은 현대 기술로 흉내 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닙니다.”
현대 기술로 흉내 낼 수 없다고?
그 말은 설마?
“이게 탑 안에 있는…?”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왕관에 박혀 있는 이, 일곱 개의 날개를 지닌 독수리. 바로 펠슈타인 왕국을 상징하는 영물입니다.”
긍정의 뜻이 담긴 한 마디.
그리고 그 한 마디가 일으킨 파장은 원형 극장 전체에 미쳤다.
“탑에 있던 거라고?”
“저게?”
“아니, 그것보다 펠슈타인 왕국이라면 시련의 탑에서도 손꼽히는 미공개 유적 아니야?”
탑에 관한 정보들이 돈이 된다는 게 알려진 뒤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관련 정보를 빠삭하게 긁어모은 상태였다.
적어도 그들의 권력과 돈을 이용할 수 있는 한에 한에선 모조리 말이다.
“왕가를 상징하는 보물이 있어야만 진입할 수 있다는 유적. 들어본 적 있어. 예전에 [시련의 탑]을 플레이했던 고고학자들이 관련 문서들을 찾았었지.”
잊혀진 왕국, 펠슈타인.
신의 저주로 인해 왕국 전체가 모래 속으로 사라졌으며, 그와 함께 수많은 보물 또한 매장된 곳이다.
탑의 저층에 있는데다 로또라 불리는 유적이었기에, 수많은 유저들이 기를 쓰고 찾으려 했던 장소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왕국에 대한 단서가 여기서 튀어나올 줄이야.
“가, 가치는? 그렇다면 가치는 어느 정도란 말이야?”
진행자가 반쯤 이성을 잃은 얼굴로 다그쳤다.
여유 있고 느긋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손님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반말까지 사용했다.
“감히 추정해보자면, 30억 달러는 너끈히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헉?”
“30, 30억 달러?”
“이런 미친. 왕국으로 향하는 지도도 없이 왕관만으로도 그 액수라고?”
“세상에나…….”
현실 감각을 아득히 초월한 감평 결과.
이걸로 체스판의 주인은 정해졌다.
“이이익!”
캐드릭의 얼굴은 아예 흙빛으로 변해 버렸다.
대체 저 꼬맹이가 누구기에 이토록 무지막지한 보물을 갖고 있단 말이냐.
만약 감평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마인 협회라고 하더라도 금전적으로 상대가 되질 않았다.
이곳에 가지고 온 돈이라고 해 봐야 7억 달러에 불과했으니까.
‘완전히 생각을 잘못했다.’
치명적인 오판.
상대를 낮잡아 보던 버릇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저 소녀보다 위험한 건 저 소녀조차 부하처럼 다루고 있는 강진혁이란 인물이다.’
캐드릭이 대견스럽다는 듯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진혁을 바라봤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가면을 쓴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성가신 적이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다.
***
“추, 축하드립니다! 그럼 ‘최초의 체스판’은 왕관으로 입찰해 주신 숙녀분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가 큰 소리로 엘리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드르륵!
검은 양복을 입은 직원이 유리 케이스 안에 밀봉된 체스판을 가지고 왔다.
“나 말고 이쪽한테 줘.”
“알겠습니다.”
대신 체스판을 건네받은 진혁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미안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예의상 하는 표정 관리였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이런 서비스 정도는 해 줘야지.
“나야 고맙긴 한데, 무리한 거 아니야? 괜히 미안해지게.”
크!
방금 표정.
거울은 안 봤지만, 100점 만점에 95점 정도였을 거다.
앞니로 입술을 살짝 깨물고 13.785도 각도로 숙인 고개에서 절실한 감정이 전해졌음을 확신했다.
“풀 컬렉션이 망가진 건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저 왕국을 상징하는 보물은 여러 개 있기도 하고, 그런 것보다 내 계약자한테 함부로 말하는 놈들이 웃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거든.”
“…….”
이 녀석.
기특한 말도 할 줄 아는구나.
‘겉으론 별거 아닌 척해도 날 위해서 아끼던 소장품을 내놨다는 거잖아.’
솔직히 말해 살짝 감동했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랄까.
앞으로 엘리스에 관한 처우를 아주 조금은 개선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 안에 쿠션이라도 좀 넣어주던가 해야겠군. 버릇이 너무 나빠지진 않게 5일장에서 파는 걸로다가.
그리고 진혁이 흐뭇하게 웃고 있는 사이.
캐드릭은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두 눈엔 어떻게든 난장판이 돼 버린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일념만이 가득했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직 최후의 카드가 남아 있었다.
캐드릭의 손이 알렉스의 어깨 위에 얹혀졌다.
“나는 보스 공략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만 가 봐야 한다.”
진혁과 접촉하기 위해 무리해서 이곳에 참석했지만,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순 없었다.
그러니.
“너는 경매가 끝나는 즉시. 강진혁을 납치해라.”
“제가…… 말입니까?”
“그래,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곳엔 쓸 만한 시체들을 많이 만들 수 있지 않느냐?”
아무리 상대가 S급 플레이어라도 조건이 갖춰진 네크로맨서를 상대할 순 없다.
대인전에서 백날 날뛰어 봐야 수많은 언데드 병사를 이끄는 흑마술 앞엔 무력할 뿐이었으니까.
거기에 탑이 나타나기 전까지 외과 의사였던 알렉스는 인체를 다루는 특유의 센스까지 갖추고 있었다.
물론, 각 나라에서 힘깨나 쓰는 권력자들을 언데드로 만들었다는 게 알려졌다간 타격이 크겠지만.
그거야 살아서 증언을 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고.
죽은 자가 말이 없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여자 쪽은 어떻게 할까요?”
“제거해.”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알렉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일전의 수모를 갚아 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
약 3시간 뒤, 경매에 나온 마지막 물품이 낙찰되었다.
성공적인 경매였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누가 뭐래도 175회차는 최대 입찰액이 나온 것으로 경매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테니까.
“긴 시간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가실 때는 오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를 통해……. 으아악?”
진행자가 고개를 깊이 숙이려던 바로 그 순간.
쿠쿠쿠쿠쿠!
원형 극장 전체에 거대한 파동이 일어났다.
콰앙!
쾅!
콰아앙!
천장에 금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고. 기둥들이 무너져 내렸다.
“끄아아악!”
“사, 사람 살려!”
“이게 무슨 난리야!”
“피해. 일단 피하라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사실, 인과관계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건 살아야 한다는 것뿐이었으니까.
가야 한다.
앞으로.
조금이라도. 1초라도 더 빨리!
모두들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에 이끌려 필사적으로 발을 옮겼다.
하지만.
그들이 간 곳은 탈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옥에 가까웠지.
서걱!
번쩍이는 검광과 함께 핏줄기가 흩뿌려졌다.
“컥? 커억……?”
가장 앞서가던 남자가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목에 바람구멍이 났으니 그럴 수밖에.
“어딜 그리 급히 가시려고 그럴까? 내 재료가 돼 줘야 할 소중한 제물들이 말이야.”
알렉스가 입구에 선 채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 옆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끔찍한 형상의 몬스터들이 있었다.
“키에에에!”
“키이익!”
다른 비상 출구는 반파된 기둥들로 인해 모두 막힌 상황.
이로써 원형 극장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 됐다.
결코 나갈 수 없는 감옥이.
그런데 바로 그때.
“꽤나 마음에든 파티였는데 말이지…….”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진혁이 알렉스 앞에 나타났다.
“넌… 장난이 너무 과했어.”
선을 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